남편 14
나: 여보, 18도 밑으로는 추워. 민이 어린이집은 흙밭에 앉아서 놀기 때문에 서늘하다고.
남편: 여보, 애들이 가만히 있어야 그렇지. 준이는 조금만 돌아다녀도 땀 나. 땀나면 더 추워.
나: 아니, 그래도 그건 너무 얇지 않아? 내가 어제 여보 말 믿고 옷 얇게 입고 나갔다가 얼마나 추웠는데. 더우면 벗으면 되는데 추우면 답 없어.
남편: 여보. 해가 나면 벗은 옷은 다 짐이야!
내가 꺼내 둔 두꺼운 옷은 도로 옷장 속에 감금되고, 춘삼월에나 입을 법한 티셔츠가 홀랑 아이들을 감싼다.
내가 속으로 '하아 진짜 춥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음이 절실한 한 남자가 여기 있구나.' 하며 구시렁거리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이 덧붙인다.
남편: 나도 군대에서 꽁꽁 어는 느낌도 받아봤어. 그래도 여보 이 패딩은 아니야.
녜녜. 군필자님.
아니 자기가 그렇다고 애들도 그르나?
추운 게 맞는데, 내가 애들 데리러 가봐서 아는데, 아이들도 나에게 분명히 춥다고 했는데...
생각이 이쪽으로 흐르자 남편의 '고집'이라는 생각에 이르고
남편의 고집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광경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신혼 초
우리는 12월에 결혼했다.
침대 위는 보일러를 트는 것과 상관없이 바닥이 차다. 나는 전기장판을 깔고, 무게로 따뜻함을 더하는 원앙금을 뛰집어쓰고도 으슬으슬 덮쳐오는 한기에 손발을 비벼댔다. 그런데 자다가 깨어 옆에 없는 남편을 찾아보니, 이불을 다 차내고 바닥으로 내려가 어느새 보일러까지 끄고 자고 있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꼭꼭 닫힌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미세한 찬바람을 생명풍으로 삼아 거기에 코를 박고 자고 있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얼마나 추울까 하고 발을 만져보았는데.... 발이 내 전기장판보다 뜨끈뜨끈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이다. 너무도.
"왜 저래?"가 아니라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들.
저 사람은 열이 많으니까 더울 때 고통을 알고
나는 추위를 많이 타니까 추울 때 고통을 알지.
그러니 나는 따뜻하게 입으면 되고, 남편은 시원하게 입으면 되지.
아이들은 어떤 사람인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입으라 하면 되고.
고등학생 시절 중국에 갈 기회가 있었다. 아는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간 것인데 그때 저녁 식사 후 차 마시는 자리에 한 외국인과 함께 하게 되었다. 중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이틀인가 그 집에 홈스테이를 하는 유학생이라고 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소파에 함께 앉아 있는데 나의 반대쪽 저 끝으로 가서 앉아 있을 때부터 뭔가 기분이 찝찝하기는 했다. 호스트가 귤을 내주어서 큰 쟁반에 담긴 귤을 그 외국인과 둘이 먹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깐 귤껍질이 자기 귤껍질에 닿자 화들짝 놀라며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이었다. 반복해서 자기 귤껍질을 자기 쪽으로 모으고, 내 귤껍질은 내쪽으로 밀어내니, 내가 큰 실수라도 한 듯싶어 멋쩍었다. 그날 저녁에 외국인의 표정을 혼자 생각하면서 어떤 모멸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좀 활발하고 영어에도 유창해서 이유를 물어볼 수 있었다면 제일 좋았을 거 같은데 그때 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중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온 사람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을 거 같아 지금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뭐,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기억 속에서 내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슬픈 경험으로 남아 있었다.
아주 작은 일이라 해도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차별의 시작인 거 같다.
너와 내가 다른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혐오의 시작인 거 같고.
추운 게 싫은 사람과 더운 게 싫은 사람.
남편과 내가 집에서부터 서로를 인정하며 살 때 차별과 혐오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우리 가정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하지만...
차에 두꺼운 점퍼를 가져가서 몰래 갈아입힌 건 모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