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남편

내공이 있다는 것은…

남편13

by 오달빛

당근!


키워드 알림이 울렸다. 묵직한 이층 침대를 가져가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사 와서 새로 생긴 아이들 방에 이 층 침대를 놓아주고 싶던 나는 그 침대가 딱 마음에 들어 남편에게 얼른 전달했다. 남편은 특유의 조심성으로 ‘일단 꺼리기’를 시전했다. 나는 무료 나눔이라 누가 금방이라도 집어갈 거 같아서 마음이 급해졌지만, 침착하게 남편의 카톡에 응답하는 동시에! 용달을 알아보았다. 당근에 올라온 사진을 보냈더니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17만 원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동 비용이 17만 원?”

남편이 물었다.

“처음에 연락한 분은 안 된다고 하셔서 다른 분께 연락했는데, 내리고 올리고 하는데 두 사람이 해야 한대. 그래서 비싸대.”

“침대가 다 분리된 상태로 이동하는 거야? 음, 그럼 그냥 내가 해도 되는데. 차는 빌릴 수 있거든.”


나는 남편의 말에 당근 판매자에게 분해되어 있는지 물었다. 처음부터 분해된 상태로 받았고, 작은 집에 비해 침대가 너무 거대해서 설치도 못해본 채 재당근하는 거라 했다. 하지만 혼자 옮길 수 있는 무게는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남편은 사이즈를 물어보라고 했다.

‘하아, 그냥 얼른 빨리 당장 용달해서 집으로 옮기면 좋을 텐데….’


남편은 내 속도 모르고 한 마디 더 했다.

“용달업체에는 분리된 사진을 보냈어? 분리된 사진으로 보내야 정확한 견적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사이즈 답 받으면 엘리베이터 사이즈도 한번 봐야 해.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나중에 추가금이 나오는 경우가 잦아.”


하, 진짜.

나는 눈앞에 간식을 두고 기다려야 하는 강아지가 이런 마음일까 생각했다. 머릿속에 침대 침대 침대 침대 침대………하는지 그 와중에 버스까지 거꾸로 탔다.



판매자에게 사이즈를 묻는 글을 보냈으나 10분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나는 못 기다리고 용달하시는 분께 여쭸다. 이런 침대는 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분해되어 있다고 하니 설치비까지 25만 원을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침대로 사다리 타는 건 한 번도 안 해봤다고 올라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셨다. 침대 만드는 곳에서 그렇게 안 만든다고, 침대 살 때마다 사다리차 불러야 하면 누가 침대 사느냐고 했다. 나는 희열을 느꼈다.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여보, 용달 아저씨가 다 분해하면 충분하대. 그리고 아저씨가 그 침대 제품 안대.”

“우리 건물이 옛날 건물이라서 물은 거야. 이사 오기 전 아파트면 그 이야기 안 해, 여보.”

“내가 아파트 주소도 말했어.”

“… 알았어. 고생했어. 알아서 하겠지, 그 사람들이.”

“응, 침대로 사다리차 타는 건 한 번도 못 봤다고 했어.”

나는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남편이 숨을 한번 내쉬고 또 이야기했다.

“여보. 용달하는 분 우리 아파트 지하도 안 와봤을 거고 정확한 사이즈도 몰라. 용달하는 분들께서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확인하고 이야기할 수가 없어. 그래서 우리가 미리 알려줘야 나중에 문제가 없어. 다 된다고 그랬다가 인건비다 뭐다 하면서 나중에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회사 물건들 크고 거의 용달 보내는데 그걸로 갈등도 많이 해.”

“녜, 녜.”

잠시 후 남편의 톡이 왔다.

“아무튼 여보가 하고 싶다니 업체랑 계약하자. 그럼.”

오예, 당근이지!



당근!

드디어 판매자에게 사이즈를 받았다. 나는 남편과 용달업체에 전달했고 시간을 조율했다. 바로 다음날 오후 한 시에 물건을 주고받기로 결정. 용달업체에서 침대를 내릴 곳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그런데 판매자가 당일인 다음날까지도 답이 없는 것이었다. 소액이지만 용달 업체에 계약금을 부친 상황이기도 했고, 아이들도 기대하고 있었기에 뭔가 불길했다.


다음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당근 채팅방을 보고 있었다. 13:00에 짐을 싣기로 되어 있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집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한 소리하면 미안해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별말 없었다. 일단 용달 업체에 당근 프로필 아래에 있는 00구 00동까지만 주소를 일러두었다. 그래도 약속 시간을 아니까 그 전에는 연락 주겠지 하면서.


12:50

확인을 이제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집주소를 일러주는 답이 왔다. 행운이라 해야 하나… 용달업체에서 침대를 받으러 30분쯤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조금 불길했다. 우리는 14:00에 준이 초등학교에서 ‘여는 잔치’(OT 같은 것)가 있었기 때문이다. 13:40에는 출발해야 했다.


13:30

용달업체가 침대를 싣고 오고 있다고 전화가 왔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매트리스가 하나 없더라고요.”

“네?”

금시초문인 나는 당황했다. 판매자에게 그런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고, 그렇다면 침대를 실을 때 나에게 물어볼 수 있지 않았나?

“저 몰랐어요. 매트리스 없는 줄 알았다면 좀 고민했을 거 같은데…”

“아, 그 사람은 받는 사람도 알고 있다고 하던데요.”


왐마. 이게 무슨 말이지? 받는 사람은 나인데 내가 들은 바가 없는데…


나는 당근 판매자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약속 시간 전후로는 전화 버튼이 뜨는 걸 이번에 알았다.

“저, 매트리스가 없나요?”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아… 이야기 안 했구나.”

“아, 네….”


나는 지금 와서 이 모든 일을 취소할 수가 없었다. 매트리스 하나야 알아보고 맞추면 되는데, 뭐랄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에게 화가 났다. 판매자는 나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내가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탓이었다. 남편이라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거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울상을 지은 채 남편을 바라봤다. 눈썹을 추켜올리며 얼굴로 왜 그러냐 묻는 남편.

“여보, 시간도 막 이렇게 늦으면서 매트리스가 없대. 왜 그걸 지금 말하는 거야?”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쓸었다.

“용달업체도 짐을 받을 때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잖아.”

“그럼 일이 거기서 취소되잖아. 업체도 그렇게 하는 거지.”

“와… 진짜? 그렇긴 한데 속상해.”

남편이 나를 안더니 등을 툭툭 두드렸다.



13:45

오매불망 내가 그렇게도 그리던 침대가 도착했다. 두 분은 유연하고도 빠르게 침대를 조립했다. 서랍은 이쪽으로 저쪽으로 사인을 주고받고는 척척 설치를 마치셨다. 두 분이 돌아가고 나니 13:55 우리는 급히 학교로 출발했다.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았지만 나는 남편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하루 종일 마음이 울렁거렸다.


귀가 후 집에 있던 작고 도톰한 이불을 아래층에 깔았더니 크기가 맞지 않았지만 그럴싸했다.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엄청 좋아하니 덩달아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남편도 튼튼하고 수납공간도 많다고 괜찮다고 했다.






남편이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고는

당근 판매자와 자신이 대화하고

용달 업체와도 자신이 계약했다면

나는 이렇게 처절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거 같다.

그냥 남편의 ‘불안’에 내가 너무 부자유스러워 답답하다고만 생각했을 거 같다.


남편이

‘내가 뭐랬어?’

‘그러니까 잘 살폈어야지?’

했다면 깨달음보다는 기분 나쁜 ‘사기당한 경험’으로 울분을 남기고 끝났을 거 같다.


다시 한번 느꼈다. 실제 경험만큼 찐한 깨달음은 없다는 것.


나의 삽질을 기다리고 지켜봐 준 사람만이 나에게 이런 값지고도 아픈 깨달음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머리로 이해한 것과는 다르다.

또 하나, 그렇게 나의 삽질을 기다려주는 사람의 말은 이전과 그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도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공이 높은 사람은 상대의 이불킥을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인 거 같다.

다음에 꼭 남편이 이불킥할 기회 있으면 안 알려주고 조용히 있어야지 생각해 본다.

복수 아니고 좋은 마음!

진짜다! 내공을 키우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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