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레게 하는 김치 한 포기

누군가의 기쁨을 기다리는 시간

by 오달빛



나를 설레게 하는 건 뭐지?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내가 쓸 글의 주제를 떠올렸다. 봄날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옛노래? 읽고 싶던 책의 첫 장? 이렇다 와닿는 것이 없어서 저녁에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운전석에 앉았다.

“앗, 김치!”

옆자리에 가방을 놓다가 냉장고에 두고 온 김치가 생각났다.

이틀 전 동료 선생님께 드리려고 꽁꽁 싸둔 묵은 김치. 늘 김치를 사 드신다는 그분은 누군가 직접 담근 김치를 맛보기 어렵다 하셨다. 나는 양가 어른들께 김치를 부족함 없이 조달받는 ‘김치 금수저’다. 그러니 기꺼이 김치를 좀 나눠드리기로 혼자 마음먹은 거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는 분이니 행여나 냄새가 날까 싶어 비닐에 랩, 지퍼백까지 동원해 야무지게 동여매 둔 참이었다. 옆으로 메는 중간 크기 가방에 들어가야 하니 나는 김치를 딱 한 포기만 쌌다. 기억난 것에 감사하며 나는 김치를 갖고 내려와 내 옆좌석에 태웠다.


고요한 차 안, 내 눈이 자꾸 김치에 갔다. ‘그 선생님이 이 김치를 받으면 기쁘실까?’ ‘이걸로 볶음밥을 하시려나, 찌개를 하시려나?’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느낌 탓인 것도 같은데, 잘 가져가실 수 있을까?’ 그분께 내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을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어, 나 지금 설레고 있는 것 같아.






돌이켜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대학 시절, 친한 언니가 그토록 먹어보고 싶다던 쿠키가 있었다. 먼 동네에 마침 갈 일이 있어 들러 어렵사리 구했고, 언니를 만나러 가던 날. 나도 모르게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마치 악보의 크레센도처럼, 처음에는 걷다가 점점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달리다시피 하는 나를 발견했다. 언니의 눈이 동그래질 그 순간을 상상하니 내 발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던 기억. 언니의 기쁨이 그토록 나를 설레게 했던 거다.


둘째 아이가 어릴 적 어린이집에서 새참을 얻으면, 꼭 먹다가 남겨서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고맙고도 짠해서 그때는 “너 다 먹지, 왜 남겨왔어?” 했지만, 이제는 느껴진다. 우리 둘째도 분명 설렜을 것이다. 엄마나 아빠, 형아 입에 쏙 넣어줬을 때 활짝 웃을 얼굴을 기대하며, 그 작은 한 입을 들고 오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고 보니 ‘주는 기쁨’이라는 말이 교과서에서 빠져나와 내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누군가 기뻐할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내 눈길이 자꾸 가고, 발걸음이 빨라지고,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


나는 누군가의 기쁨을 상상하며 기꺼이 마음을 내어줄 때, 그 다정한 기다림에 설레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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