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샘] 나의 진정한 동반자

몸의 지혜

by 오달빛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통제와 개입이라는 인식의 틀을 뒤집는다. 발췌한 8장에서는 스스로를 ‘조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찰하면서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당장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먼저 살피고, 억지로 뭘 하려 하지 않는 ‘무위’를 몸으로 익히라 한다.

무위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

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억지로 고치려 들지 않고, 학의 다리가 길면 그냥 긴가보다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 통제와 개입 전에 먼저 알아차리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 있지 않나?

하루 종일 잔뜩 긴장한 줄도 모르다가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야 어깻죽지가 결린다고 알게 될 때,

노트 필기를 하며 다른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가 팔 자세를 바꾸면서야 몹시 저리는 팔을 알게 될 때,

제기차기할 때 어정쩡하게 허공을 맴도는 손동작에 웃음이 날 때

급하게 몸을 씻다가 새끼손가락이 겨드랑이에 걸려 삐끗하며 다칠 때

저녁때 손목이 시큰거려서 왜 그런가 가만히 하루를 되짚어보니 행주를 짤 때 손목을 비튼 채 힘을 너무 많이 줬기 때문임을 알아차릴 때…

이런 자잘한 경험들은 몸을 내 맘대로 조작하기 전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먼저 관찰하고 도와주지 못했던 것임을 알려준다. 내 몸 어디에 힘이 들어가 있고 어디가 불편한지 알아야, 그다음에 조금씩 움직여서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도착지가 있다면 출발점이 어딘지 명확히 알아야 방향과 소요 시간을 알게 되는 거다. 책의 이야기 대로라면 똑바로 서고 싶다고 몸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아, 지금 왼쪽 어깨가 조금 더 내려가 있구나. 양쪽을 비슷하게 해 보자" 하고 살피는 거다.

몸을 알아차리기 위해 내가 평소에 자주 쓰는 방법들이 있다. 첫 번째는 왼쪽과 오른쪽을 계속 번갈아 느껴보며 균형을 맞춰보는 거다. 가만히 서서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을 느껴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꽤 다르다. 그걸 똑같이 맞추려다 보면 오금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 움직임이 왼쪽 뺨까지 연결되는 느낌도 든다. 그러다 보면 내 몸에 꽤 깊이 빠져드는 나를 발견한다.

두 번째는 내 움직임을 0.5배속으로 느리게 상상해 보는 거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슬로모션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볼 때면 찰나의 순간에도 내 몸이 어디쯤 있는지 알아차리기 좋다. 움직이기 전에 동선을 그려볼 때도 있다. 이때도 역시 처언천히.

마지막으로는 내 몸 밖으로 쑥 빠져나가 허공에서 나를 내려다본다고 상상하는 게 있다. 지금이라면 침대에서 다리를 구부리고 턱 아래에 베개를 받친 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내가 보일 거다. 내 등 위로 빠져나간 내가 내 앞으로 훌쩍 넘어가서 나를 보고, 다시 오른쪽 위에서, 발아래에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면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침대에 엎드려 있는 내 몸이 그려진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공간이 바뀔 때마다 문 앞에서 "하나, 둘, 셋" 하고 숫자를 센다.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기 전, 나에게 채비할 시간을 주는 거다. 나는 그 장면이 참 좋아서 교실 문을 열기 전에 써먹어 보았다. 문 앞에 서서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지금부터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마음을 다잡는 거다. 연극으로 치면 새로운 무대 세트가 필요한 셈이다. 그렇게 아주 잠깐 멈춰서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수업하러 들어가는 길이 훨씬 편안해졌다. 상황 속으로 다짜고짜 몸을 밀어 넣는 게 아니라, 그렇게 먼저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본다.

몸 역시 자주 멈춤과 여유가 필요할까? 우리 몸은 우리가 말로 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릴 적 경험들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한다. 감정이라는 것도 결국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란 이야기를 요즘은 흔하게 듣는다. 그래서 몸의 지혜를 믿고, 몸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몸에 대해 이야기하면 내가 사랑하는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내 몸에게) 숱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줘서 정말 고맙다. 넌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어.(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책이다) 참으로 네가 안쓰럽단다. 넌 뭐 하나 거저 얻지 못하면서도 날 위해 온 힘을 다하는구나. 네가 필요한 공기조차 얻지 못하는데도. 그런 너를 도우려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하지만 충분치 않다는 걸 알아. 아니, 턱없이 모자라지. 그런데도 넌 날마다 네가 가진 걸 모두 걸고서 힘껏 싸우는구나. 넌 내 영웅이야. 또 다른 동작이 불가능해지더라도 다시는 너한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너에게 귀를 기울일게. 네가 줄 수 있고 또 주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거야. 지금까진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약속이 있어. 네가 더 버틸 수 없을 땐 네가 원하는 대로 할 거라고 엄숙히 맹세할게. 그때가 오면 다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게. 믿고 받아들이며 편히 쉴게. 우리가 누렸던 놀랍도록 멋진 삶에서 기쁨을 얻고, 아주 의연한 목소리로 너에게 속삭일게. “너와는 이렇게 끝나겠지만 난 앞으로도 계속 갈 거야. “

이 책을 읽은 다음 날 나는 발을 씻다가 눈물이 났다. 가만히 보니 발바닥은 생각보다 내 몸을 이고 지기에는 면적이 작았고, 그날따라 핏줄과 자잘한 상처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원하는 곳에 데려다준 발바닥이 너무 고마웠다.

양치질을 할 때도 좁디좁은 입안에서 혀가 칫솔이 지나가게 이리저리 비켜주는 게 또 고마웠다. 말도 참 많이 하고 먹기도 엄청 먹는 나를 위해 한 번도 거부하지 않고 원하는 걸 다 해주었다. 가끔 씹히기도 많이 씹혔는데…

생각과 느낌만 아는 것은 나를 반만 아는 것이다. 내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데에서 더 나아가 내 몸을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내 몸이 지혜를 갖고 알아서 할 것임을 믿는 것, 두 가지가 나 스스로와 더 깊이 만나는 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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