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밥 먹여주냐? 존중은 먹여줄지도…
무엇이 협력에서 ‘협’을 놓치게 하는가?
협력에서 ‘협’을 놓치다?
‘협력’은 흔하고 익숙한 단어인데 이 제목을 읽고 나니, 내가 쉽게 이 단어를 둘로 쪼개어 나눠가졌구나 했다. 협력을 시작할 때 상대에게 ‘협’을 주고, 나는 ‘력’을 가지면서. 그러니 자녀가 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면 ‘도통 협력을 안 해준다’는 마음이 들었고, 남편이 내 뜻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협력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듯하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
관계의 두 기둥은 사랑과 존중이라고 한다. 다른 이와 탄탄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과 존중 어느 하나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이해했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사랑이 밥 먹여주냐? “
하던 어른들의 옛말이
”존중도 없으면서 사랑한다고 결혼하냐?“
라는 말로 들린다.
세계적인 부부 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는 이혼을 예측하는 가장 무시무시(?) 징후로 ‘무시와 경멸’을 꼽았는데 이 역시 존중 빠진 사랑은 한쪽 기둥 무너진 집처럼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 아닐까?
존중은 어떻게 하는 걸까?
그렇다면 존중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 존중받았다고 느끼고, 언제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지?
그렇게 찾아가다 보니 나에게 ‘존중’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먼저 단정하지 않는 것으로 다가온다.
“알지, 알지. 네 마음 알지.”
이렇게 서둘러 결론 내리면 뭔가 찜찜하다. 내 마음 잘 이해했나 궁금하고 괜히 얘기했다 싶다.
“그래, 네가 충분히 너를 설명할 수 있게 다 말할 때까지, 내가 안다고 말하지 않을게.”
와 같은 태도로 곁에 있어주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 거 같다.
이렇게 보니 나에게 존중은 상대의 마음을 빠르게 이해해 주는 능력이 아니라, 이해를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기 언어로 자신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남겨두고 기다려주는 마음. 나는 그게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멜 로빈스의 ‘렛뎀’ 이론이 말하듯, 관계 속 평온을 지키는 방법은 ‘냅둬유’다. 그 냅두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사람을 살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겠지.
이렇게 생각해 보면, 협력에서 ‘협’과 ‘력’을 함께 가진다는 것은
사랑과 존중이라는 두 기둥을 함께 세우는 일이다.
사랑이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게. 너의 행복과 건강을 진심으로 바랄게.” 하면서 곁에 있다면
존중은 “나는 네가 너로서, 너를 살기를 원해.” 하면서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것 아닐까?
작고 소중한 시간을 쌓아가라.
어제 들은 조벽 교수님의 강연에서 특별하고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작고 소소한 루틴으로 관계를 돌보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이벤트 정신 낭비, 시간 낭비, 돈 낭비이고 다음날 또 싸운다고 하시며.
[조벽 교수님의 부부 사이 루틴을 소개하고 싶다.]
아침에는 먼저 일어난 사람이 발 마사지해 주기(20초)
헤어질 때는 현관에서 헤어지되 6초간 스킨십(6초 이상 머물러야 호르몬이 분비된단다)
아무 이유 없이 일방향 카톡 문자를 한다. (I`m thinking of you. 나 당신 존재 알아차리고 있어)
귀가하면 집에 먼저 있던 사람이 현관까지 마중 나온다.(진짜 삼식이 강아지가 사랑받는 이유다)
함께 밥 먹을 때는 밥에 반찬 하나 얹어준다.
저녁에는 아침에 마사지 받은 사람이 해준다.(공평하게)
어느 날 갑자기 마사지를 강하게 한다? 불편한 게 있으면 갈등은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있는 공동체(가정, 학교, 직장)도 모두 이런 사소하고 긍정적인 루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지나 노력이 아니어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은 나를 상상도 못 했던 곳에 데려다주는 경험을 했다. 늘 해왔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도 집에 돌아오면 꽉 안고 궁뎅이를 팡팡팡 쳐주고 머리 몇 번 쓰다듬어주는 일을 매일 신경 써서 알람 맞춰두고 하고 싶다. 맑은샘 사람들과도 만나면 할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