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ll. There is no exit.
어느덧 입사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3개월이나 지났다고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내 시계는 너무 더디도 고통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입사 초반까지만 해도 정장과 셔츠의 색깔, 넥타이의 패턴까지 신경 쓰며 수트 간지를 한껏 뽐내고 다녔지만 지금은 수트고 나발이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잠이 되어 버렸다. 평일과 주말의 구분은 단지 출근 시간의 차이 밖에 없었다. 주말은 단지 평일보다 2~3시간 정도 늦게 출근할 수 있는 날에 불과했다. 달력에 파란색, 빨간색으로 색칠된 날들도 해외영업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시간은 흘러갔고, 나의 체력과 정신력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이미 고갈되어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지만 쥐어 짜내는 기분이랄까. 아이러닉하게도 내 건강과 체력이 고갈되어 갈수록 통장의 잔고는 쌓여간다. (지금은 다 어디로 가셨는지..?)
아침 8시,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한다. 같은 부서에서 생기있는 눈빛을 갖고 출근하는 이들은 찾아 볼 수 없다. 반 즘 맛이 간 상태로 그냥 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출근 하자마자 밤새 쌓여 있는 일들을 보면 졸 틈 조차도 없다. 분명 어제도 자정을 넘어 새벽에 퇴근을 했건만.. 그 몇 시간 사이에 이렇게 메일이 쌓여 있다는 사실이 매일 아침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속한 파트에서 담당하는 수많은 프로젝트들 중 한창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4개에 달했다. 파트 단위로 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지만 플랜트 업계가 호황을 맞는 시기인지라 파트 마다 4~5개 이상의 프로젝트 담당은 기본이었다. 메일함에 도착한 프로젝트 관련 메일들을 확인한다. 주문주로부터 온 메일도 있고, 협력사들로부터 온 메일들, 그리고 내부 유관부서들로부터 도착한 메일들도 있다. 주문주 미팅 요청, 자료 제출 요청, 유관 부서의 자료 요청 메일, 게다가 임원진의 보고 자료 작성 요청까지 차례로 확인하면서 프린트를 시작한다. (우리는 업무 관련 이메일들을 일일이 프린트해서 보고한다..)
분명 중요한 메일들만 추리고 뽑았는데도 뽑아야 할 메일이 10건이 넘어간다. 어떤 메일은 너무 길다. 주문주가 불만이 잔뜩인지 미주알 고주알 할 얘기 안 할 얘기 잔뜩 갈겨서 메일을 던졌다. 첨부파일까지 출력하자면 아침 출근 후 30분은 이메일만 뽑다가 시간이 다 지나간다. 출력한 이메일들을 프로젝트 별로, 중요도가 높은 이메일 순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정리된 메일들을 사수에서 그냥 전달할 수가 없다. 이메일의 대략적인 내용들을 파악한 뒤에 설명을 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메일 뽑고 정리하는 것만도 멘붕이었지만, 이제는 차츰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일이 힘들수록 회의감과 반항심만 커져갔다. 내가 이러려고 고생하면서 여기에 온 것인가, 내가 이 일을 왜 해야만 하는가, 이 일의 끝은 대체 어디인가. 숱한 고민과 번뇌가 머리 속을 지배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았던터라 머리 속을 지배했던 회의적인 생각들은 금세 사라져 버리곤 한다. 이걸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한다면, 오늘도 자정을 넘겨 택시를 타고 귀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밤 11시에라도 퇴근을 하고자 한다면 부지런히 쌓여 있는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열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많은 양의 일을 빠른 속도로 처리해도 귀가하는 시간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주어진 일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을 위한 일을 하다가 너무 늦은 시간이 되면 잠시 눈을 붙이러 집에 들를 뿐이었다. 포로수용소에 끌려가 본 적은 없어 조심스럽지만, 분명 포로가 되어 밤낮으로 일을 하는 기분이 이러할 것이 분명하다. 자의로 휴가를 쓸 수도 없고, 하루정도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일을 끝없이 처리하는 막막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This is the Hell.
O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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