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는 안 그랬다' 과거에 갇힌 대한민국

내 연월차도 내 것인듯 내 것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기적의 논리

by Ohms

관습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머리 속에 깊이 뿌리 내 암묵적 약속 같은 것이다. 보통 관습은 사람들 머리 속 구석구석까지 깊숙이 뿌리내려 뽑히기는 커녕 쉽사리 흔들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사회에서 명시적으로 정한 법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관행과 질서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명시된 약속 조차 우습게 찍어 내리기도 한다. 관습에 반하는 합당한 권리는 소리내어 주장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소리내어 주장하는 순간 체제에 반항하는 자 내지는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본보기로 회자되는 구설수의 무서움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는 관습은, 유독 한국사회에서 시대를 초월하고, 후대에 답습되며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고 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야근한다.'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입사원 시절부터 수도 없이 많은 날들을 야근으로 밤을 지샜다. 무더운 여름 8월에 입사를 했고, 8월에는 일부 교대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2주 동안 쉴 수 있는 집중휴가제라는 꿀 같은 제도가 있었다. 물론, 그림의 떡이었다. 회사의 지침도 업무에 필요한 소수 인력만 남기고 교대로 휴가를 떠날 것을 '권장'했지만 어르신들은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텅텅빈 공장과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과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과거부터 늘 그랬듯이.


좋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열려 있는 사람이고, 충분히 높으신 분들을 이해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각종 편리함과 즐거움, 엣지있는 삶을 함께 누릴 수 있는 Smart Phone을 두고도, 굳이 2G 휴대폰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만의 생각과 기준이 있을 수 있기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각자가 무게를 두는 삶의 기준이나 가치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만의 가치와 기준을 동일하게 따를 것을 강요한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아니 대체 스마트폰은 왜들 쓰는건지 모르겠네?!"

'죄송한데요. 너님만 2G 쓰십니다..'


휴가를 떠나지 않는 팀장은 은근히, 하지만 상당히 노골적으로 휴가를 자진납세할 것을 강요했다. "나는 집중휴가를 쉬어 본 적이 없어.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쉴 수가 있나. 갈 수 있는 사람은 가든가." 라고 말을 던지며 말 끝을 높은 톤으로 비틀어 끌어 올린다. 누가 들어도 '가 볼테면 가보든가' 라는 뉘앙스다. 신입의 패기를 한껏 발휘해서 손을 들어볼까도 싶었지만 왠지 휴가를 다녀오면 내 자리, 내 컴퓨터가어져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신입이라 책상에는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눈 깜짝할 사이면 자리는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는 그저 주변의 눈치만 살살 보며 동태를 살핀다. 차장 직급 이상의 아재들에게 휴가는 청바지를 입고 1시간 늦게 출근하는 기간 정도의 개념으로 굳어져 버리고, 과장은 중간 관리자의 입장이라 나서지 못하고,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한 대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끙끙 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런데! 옆 부서에 근무 중인 1년 선배가 사우들의 잔다르크가 되어 봉기를 시도한다. 휴가 기간에 맞춰 두 달 전부터 150만원짜리 유럽행 티켓을 끊고, 두 달 간 전방위 홍보를 펼치며 순조롭게 유럽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만 같은 위용을 뽐냈다. 그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전대미문의 사례가 되어 다른 직원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되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행기 출발 이틀 전, 갑작스레 중요 클라이언트한국 방문 메일이 접수됐고, 그 선배는 울며 겨자 먹기로 티켓을 취소해야 했다. 결제 당시 20불과 맞바꿨던 non-refundable 옵션은 선배에게 150만원의 매몰비용을 선사했고, 선배는 멘탈이 나간 채로 청바지를 입 사무실에서 바캉스를 즐겨야했다. "지금행가서 되겠나"라는 말을 하는 이도 너무태연했고, 받아들이는 이도 너무나 태연했다. 아니, 받아들이는 이는 무기력하게 태연했다. 난 결심했다. 휴가가 주어져도 해외여행은 절대 가지 않으리.




괜찮아. 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법이 보장해주는 나만의 프리패스!! 연차, 월차가 남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는 세상물정 모르는 흙수저가 나중에 커서 부산 앞바다에 요트를 띄우고 선상 파티를 열겠다는 포부와 다를 바 없었다. 내 거인듯 내 거 아닌, 네 거 같은 연월차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별에 별 핑계나 구실을 만들어 "월차 좀 써도 될까요?"라고 물어도, "불허한다!" 한 마디면, 모든 연월차는 추풍낙엽처럼 맥을 못추고 반려 당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쉬고 싶어도, 내가 내 권리를 사용하려해도 논리도, 맥락도 없는 철옹성 같은 반려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들의 논리는 대략 이러하다. "난 지금껏 월차를 써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네가 월차를 써?)", "돈으로 받아. 월차 안 쓰면 돈으로 주잖아. (그런데, 네가 월차를 써?)", "지금 다른 사람들 바빠서 정신 없는 거 안 보여? (그런데, 네가 월차를 써?)".


어쨌거나 '우리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묻고 싶다. '나도 개고생했으니, 너도 개고생해봐라'라는 옛날 군대의 내리갈굼과 다를 바 무엇이란 말인가. 딱딱하고 경직된 문화, 무분별한 복종과 폭력이 난무하던 과거의 군대도 상전벽해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 기업은 답보 상태에 머물며 악습, 폐습을 답습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근래 들어 자꾸 논어를 들먹여 미안하지만 '온고지신'이라는 단어를 당장에라도 없애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묻고 싶다. 그렇게 과거의 것이 좋다면, 조선 시대 선비들처럼 머리를 틀고, 갓을 걸치고, 짚신을 신고 다니시지. 대체, 왜, 'KAKAO TALK' 단체 톡방을 만들어서 밤 11시에 업무 지시를 하는 것인지 말이다.


물론,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업무가 있고, 반드시 처리해야 할 업무라면, 휴가를 미루거나 주말에 출근을 하거나 기꺼운 마음으로 야근도 할 수 있다. 무조건, '나는 죽어도 이 날 쉬어야겠다.'라는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가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라는 작은 희망을 바랄 뿐이다. 심지어, 어르신들은 직원들이 월차를 쓰면 일할 사람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막상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한시적으로나마 대체한다. 정 안되면, 전화라도 해서 어찌어찌 다 큰 무리없이 해결 되더이다. 게다가, 휴가 반려로 인해 발생되는 스트레스와 생산성 저하보다 휴가를 가기 위해 모든 일을 시간 내에 더 꼼꼼하게, 더 열심히 처리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성 향상이 더욱 크다고 감히 장담한다.



가족들, 연인,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어도 여전히 우리는 바쁘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밤낮없이 휴가와 연월차를 반납하고 일하는 연말 동안 글로벌 컴퍼니의 클라이언트들은 적게는 2주에서 길게는 3주가 넘는 시간 동안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떠난다. 메일을 보내면 몇 분 내로 'I am out of office during next three weeks ~' 라는 내용의 자동응답메일이 날아온다. 전화를 걸어도 휴가 중이니 끝나고 얘기하자고 한다. 우리에게 갑질을 하고, 세계의 산업/경제를 움직이는 이들이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서 일하고, 정해진 연월차를 자유롭게 모두 소진하며 여가를 즐기고, 최고의 성과를 내며 슈퍼甲의 지위를 이어가고 있다. 휴가를 떠나서도 내 책상이 온전할까 노심초사하는 한국사회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글로벌 컴퍼니, 한국의 기업들만 놓고 보아도 근로시간/근무일수와 생산성의 상관관계는 '정'이 아닌 '역'의 관계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 빠르게 적응하고, 글로벌 맹주들과 겨뤄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창의성을 요구하면서, '우리 때는 안 그랬다'라는 구시대적 논리로 찍어 누르려는 우를 범하는 모순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면, 지금 유지하고 있는 슈퍼乙, 슈퍼丙의 지위조차 위태로워져 점점 쇠퇴하고 도태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O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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