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들은 호황을 물어븐 것이여

수천 수만 명의 생계와 미래를 빼앗은 것은, 유례없는 호황이었다.

by Ohms

회사는 세계 최고를 자부하며 높은 위용을 자랑했고, 직원들은 자신감에 넘쳤다. 유례없는 호황을 등에 업고 수 조원 대의 대규모 공사들을 연이어 수주하는 쾌거를 달성했고, 명실상부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몸집을 불려나갔다. 사무실과 공장은 늦은 새벽까지 불을 밝혔고, 그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이 맞다. 하지만, 모두가 노를 젓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돌이켜보면 이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높은 파고 속에서 허우적대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입사했을 당시 회사는 24시간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클라이언트들로부터 대규모 플랜트 설비 발주 문의가 끊이질 않았고, 적게는 수 천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의 입찰을 동시에 3-4개 진행하는 것 정도는 너무나 당연했다. 한 클라이언트의 문의를 접수하고 답변을 내보내면 다음 문의가 기다리고 있었고, 고객사, 협력사의 공장 방문 요청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입찰 준비 후반에 접어들수록 모든 유관 부서들과의 미팅, 그리고 각종 documenting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의 연속과 반복이었다.


하나를 쳐내는 동안 3개가 쌓였고, 3개를 쳐내는 동안 또 새로운 10개의 일이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다행히도 모든 일에는 마감일이 있었고, 하루 하루를 마감일만 바라보며 쉼 없이 일 할 뿐이었다. 사무실도, 공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차고 넘치는 일감을 확보한 상태였고, 사무실의 인력도, 공장의 근로자들도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지만 회사는 멈추거나 뒤돌아 볼 낌새조차 없었다. 엄청난 속도, 질주의 맛에 취해 브레이크가 고장났음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외려 가속 페달을 더욱 힘껏 밟았다.


곳곳에서 문제가 속출했다. 쳐내는 일의 양은 쌓이는 일의 양을 쫓아가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무실에, 공장에 일이 쌓일수록 모두가 더 열심히, 더 죽도록 앞만 보고 달렸다. 수주잔고가 늘면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더 넓은 땅이 필요했고, 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수십억을 투자해서 서둘러 부지를 확보하고 지반을 다졌으며, 수십 개의 관계사들, 수천 명의 비숙련 근로자들을 공사장에 급파하며 늘어나는 일감을 쳐내기에 급급했다. 회사의 몸집은 급속도로 불어났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다.


매출액, 직원수, 수주잔고 등 명목적인 숫자들이 치솟을수록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내실을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호황이라는 미명 아래 경쟁사들 간의 피터지는 출혈전쟁이 펼쳐졌다. 산업으로 보면 전체 수주액은 늘고 있는 듯 보였지만 공사 규모 대비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수많은 직원들을 고용하며 회사의 규모가 커지는 듯 보였지만 난이도 높은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숙련 근로자, 비숙련 근로자들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각 부문의 관리자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투입되는 노동력은 갈수록 늘었지만 생산성은 갈수록 저하됐다.


세계 최고라는 칭호는 너무나 달콤했다. 계속 더 높은 곳만 바라보고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제가 속출해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x축, y축의 몇 사분면에 위치한 줄도 모른 채 눈 앞의 이익만을 좇아 한 없이 달렸으며,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문제들은 미봉책으로 대강 넘기면 그만이었다. 봉지는 커졌지, 내용물은 줄고 질소만 가득한 과자봉지와 다를 바 없었다. 적체되며 쌓이고 쌓였던 문제는 한 번에 터져나와 모든 것들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모든 문제들이 거대한 실타래처럼 엉켜 붙어 있었고,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수십 년의 역사로 이뤄낸 기적은 순식 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규모 적자와 부실이 발표되었지만 임원들은 시장을 진정시키고 달래느라 정신 없었고, 직원들은 어김없이 입금되는 급여를 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혹시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이렇다 할만한 행동의 변화는 없었고, 마치 다른 회사의 일인양 다른 사람의 일인양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눈덩이처럼 커진 부실은 삽시간에 회사 중심부를 강타하며 직원들의 복지와 급여, 생계, 심지어는 미래까지 한 순간에 앗아가버렸다.


초반 시장 진입에 성공한 중소기업들 중 상당수가 사업을 확장하고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접한 적이 있다. 제대로 된 준비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그 규모와 변화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관리에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대기업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거대한 조직이었기에 조직 구석 구석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이상 징후와 위기들이 더더욱 눈에 띄지 않고, 공유되지 않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이었던 해운업이 무너져 내렸고,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던 조선 산업은 퇴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도요타의 몰락을 틈타 세계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판했던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률과 세계시장 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지금의 회사에 근무하며 달콤함의 무서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호황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회사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아닌 회사의 내실을 제대로 다질 수 있는 기회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이상의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다.



Ohms

이전 01화대기업에 입사하면,  멋진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