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은 남의 돈 다 해먹고, 죄책감 하나 못 느끼는 그들이 건너야 한다
내 과거를, 현재를, 그리고 미래까지 송두리째 탈탈 털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돌이켜본다. 죄가 있다면 겉으로는 건실해 보이고, 유망해 보이는 회사를 선택했고,개인생활, 주말, 건강까지 모두 헌납하며 마시라는 술 열심히 마시고, 하라는 야근 빡세게 했다는 것 뿐이다. 스스로를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회사였지만 세계가 걱정하는 처치곤란 애물단지가 되었고, 세월의 짬밥을 먹으며 연차와 경험을 쌓았지만 연봉은 줄어들고 회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대우는 차갑고 싸늘하게 돌변했다. 하루 아침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폭삭 망한 회사의 좀비가 되었다. 목이 터져라 회사와 내 인생의 장밋빛 미래를 부르짖으며 야근과 술을 강요하던 그 분들께서는 종적을 감춘지 오래다.
입사 당시만 해도 회사는 수십 년의 역사와 경험을 자랑하며 전대미문의 호황을 등에 업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누렸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위원,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까지 오색빛깔 다양한 직급을 만들어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나눠 가졌고, 회사 로고가 박힌 카드로 온갖 호사를 누리며, 자차보다는 회사차를, 지상교통보다는 항공기를, Economy 보다는 품격있는 Business를 애용하며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정 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처럼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해야 한다며 영웅담을 설파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고 했던가. 그 모습은 마치 사치스럽고 시끌벅적하기 그지 없이 파티와 연회를 즐기던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의 모습 같았다. 조 단위 매출, 수천 억 대의 영업이익을 자랑하던 회사가 적자기업으로 추락하는 데까지는 불과 반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연식불명, 출처불명의 케케묵은 부실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회사의 재무제표는 반기만에 핏빛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자기자본은 바닥을 드러냈고, 잠식 상태에 돌입했으며, 가려져 있던 천문학적 수준의 부채가 적나라게 모습을 드러냈다. 명품 옷과 외제차만 보고 부자인 줄 알았더니만 카드 돌려막기와 리볼빙으로 시한폭탄을 돌리고 있는 추악한 카푸어의 모습이었다.
전세기를 타며 세계를 누비고, 최고급 호텔에서 도시의 경관을 즐기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데 앞장섰던 그들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직원들에게 뼈를 깎는 쇄신과 자구노력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도가니는 온전한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직원들 도가니의 아나바다를 요구했다. 직원들의 복지는 축소되었고, 그림의 떡이었던 휴가와 유급 연월차가 의무사용으로 바뀌며, 직원들은 원치 않는 긴 휴가를 떠나야했다. 5년차 직원의 급여가 신입사원 시절보다 낮아졌고, 회사 회생을 위해 말라 비틀어진 꼬딱지 만한 월급 일부를 회사에 환원하겠다고 서약해야했다.
파산 위기에 처한 포드-GM을 구하기 위해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던 CEO 앨런 멀랠리, 매달 100억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던 상황에서도 구조조정 없이 일반사원 5%, 관리직 10%, 임원 50%의 임금삭감을 선포하며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일본전선 사장, 고위임원들의 결의와 의지는 흔적 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무분별한 충성과 헌신을 강요하고, 직원들에게는 '가족아이가!!'를 외치던 그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는 '나도 월급 10% 반납에 동의했으니 너희들도 얼른 동참해서 회사를 살려야 한다.'라며, 직원들의 울화를 돋울 뿐이었다. 끔찍이 아끼는 것처럼 보였던 직원들이 구조조정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굳게 입을 닫고, 뒷짐을 진 채 지긋이 먼 산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내 밥그릇...
회사를 불바다로 만들고, 평생에 없을 종국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을 선사한 이들은 찬란한 모습으로 회사를 떠났다. 노심초사 회사의 존립을 걱정하는 직원들에게 '여러분, 가만히 계세요! 이 곳이 가장 안전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매불망 선량한 직원들이 회사의 대응을 기다리는 사이 그들은 헐레벌떡 구명조끼를 걸치고 밥그릇을 챙겨 떠났다. 수천 명의 직원들을 거리로 내몬 H해운사의 C회장은 97억원의 퇴직금과 관계사 주식을 챙겼고,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오명을 씌우고, 빨간 딱지를 붙인 D사의 임원들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포기하고, 두둑히 퇴직금을 챙겨 자회사, 손자회사, 관계사의 요직으로 거취를 옮겼다. 회사의 발전, 회사의 미래를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부르짖던 이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밥그릇을 챙겨 달아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영정상화와 허리띠 졸라 매기, 반복되는 구조조정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직원들의 몫이었다. 똥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다더니만.. 아직 애는 커녕 결혼도 안했는데 좋은 대학 나와서 남 똥이나 치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대기업의 힘 없는 직원들은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삶의 터전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강탈당했다. 죄가 있다면, 불평, 불만일랑 품 속에 깊이 묻어 둔 채 자존심 다 버리고, 집에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묵묵히 몸 바쳐 일한 죄 밖에 없다. 죄목도, 그에 대한 형벌도 너무 가혹하다. 반면, 경제사범들을 종신형에 취하는 서양과는 달리 법치국가 한국은 그들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오랜 기간 배가 터질듯이 해먹고 ㄸ을 싸지른 뒤 덜미를 잡혔다치면, 잘못을 인정하는 척, 뉘우치는 척하며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금세 밖으로 나와 또 다시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삶을 담보로 배불리 먹고 살 방법을 찾기를 반복한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우랴. 다시 또 걸리면 솜방망이로 한 대 더 맞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더이상 힘없고, 빽없이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고통받아서는 안된다. 똥은 싼 놈이 치워야 하고, 대가도 혜택과 기쁨도 애써 고생한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 망연자실 삶의 터전과 미래를 강탈 당한 이들이 손가락질 당해서는 안된다. 대길이 행님을 불러 잘못을 저지르고 홀연히 사라진 죄인들을 잡아 포박하고 평생에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마빡에 찍어야 한다. 대길이형~!!
오부장 : 22년을 이 회사를 위해서 또 내 가족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한테 견딜 수 없는 치욕과 내 가족에 대한 미안함 밖에 없습니다. 이 회사가 나한테는 인생이나 마찬가지인데. 내 삶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겁니다. 내가 마무리를 잘못한 겁니다.
김과장 :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잘못 살았는데 뭘! 부장님, 삥땅 쳐 봤어요? 해먹어 봤어요? 남의 눈탱이 치고 남의 돈 가지고 장난쳐 봤냐고. 그런데 뭘 잘못 살아. 잘만 살았구만! 남의 돈 다 해먹고 죄책감 하나 못 느끼는 그런 새끼들도 아주 잘 살고 있는데 어?! 부장님이 왜 요단강 건너려고 그러는데 왜! 거기 올라가 뒈져야 할 것들은 바로 그딴 ㅅㄲ들이라고. 그 딴 ㅅㄲ들!!!
대한민국의 경제의 기적을 일으키고,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만든 주역들은 그들이 아닌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 월급쟁이들이다. 진짜 호사와 부귀영화를 누릴 사람들은 바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죄 지은 사람이 응당한 죄 값을 치르고, 열심히 일한 평범한 직장인들이 대우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적어도 그들이 회사를 망친 주범이라고, 그들은 망한 회사를 다니는 좀비라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길 바란다. 무조건적인 충성과 헌신을 미끼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임원들 대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리더십을 잃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며 직원들을 이끌고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멋진 리더들과 일하기를 바란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염원하고 꿈꾸는 곳, 이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김과장 같은 의인의 등장이 더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Oh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