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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Oct 03. 2018

과탑의 목차보기 공부법

공부법에서 독서법까지


시험공부를 할 때 나만의 습관이 있었다. 포스트잇에 목차를 쭉 적고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붙였다. 목차가 내 머릿속에 자리 잡기 전까진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 '아, 책의 내용이 이렇게 전개되는구나!' 생각이 정리된 후에야 비로소 공부를 시작했다. 한 번은 집중이 안 돼서 1시간 동안 목차만 보고 있던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야 너 아까 오지 않았어? 왜 아직도 목차만 보고 있냐. 벌써 다 보고 다시 보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열심히 보고는 있는데 오늘 집중이 잘 안 되네."

한 시간은 빠르면 1 챕터 분량을 달달 외울 시간이다. 친구 말을 들으니 흘러간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목차를 외우지 않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 30분쯤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다시 목차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대학생 시절엔 나의 독특한 습관 정도로 생각했다. 다소 병적이었고 이점은 적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목차보기 공부법'이 꽤나 의미 있는 공부법이라고 자부한다.

자부하는 이유! 목차보기 공부법의 결과

작년에 학교 후배를 만나고 나서부터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후배가 "오빠 만의 공부법이 뭐야?"라고 물었다. 당혹스러웠다. '나만의 공부법이 있었나?' 조금 특이한 습관이 있었을 뿐 특별한 공부 비결 같은 건 없었다. 한참 고민하다 목차보기 공부법이라고 답했다. 우선 말을 내뱉고 왜 좋은지 이유를 떠올리며 설명했다. 그런데 말하다 보니 생각보다 좋은 공부법이지 않은가!








1. 저자(출제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시험문제는 패턴이 존재한다.

챕터 별 문제 수: 챕터 별로 같은 비율/강의 시간에 비례/...
문제 순서: 챕터 1부터 순서대로/3 챕터씩 묶음/...
문제 유형: OX/빈칸채우기/객관식/단답식/장문형/복합형/...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라


대학입시 준비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 만큼 본질을 꿰뚫는 말이 없다. 문제에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긴다. '내가 3번의 강의 시간에 걸쳐 얘기한 부분이니까 꼭 넣어야지!'라든지 '마케팅을 듣고 가는데 4P 정도는 알아야지!'와 같은. 이런 의도에 대한 힌트는 강의를 듣기 전부터 찾을 수 있다. 강의의 교재와 커리큘럼이다. 교수님이 교재를 선정할 땐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책을 고르신다. 커리큘럼에선 책의 어떤 부분을 직접 가르칠지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출제의도를 예측해볼 수 있다. 그것도 강의가 시작하기 전에!



중간고사 문제를 적어두자


목차보기 공부법의 강점은 기말고사 때 더 잘 나타난다. 중간고사 때까지는 지인이 없는 한 일단 부딪혀봐야 교수님의 출제 패턴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말고사 때는 중간고사라는 전례가 있다. 문제의 유형과 챕터 별 문제 수 등 교수님의 출제 패턴을 알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중간고사 때 출제된 패턴을 30분 정도만 정리하면 된다. '아니, 시험이 끝났으면 술을 마셔야지. 재수 없게 무슨 공부 타령이야!'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백번 동감한다. 항상 시험의 끝과 동시에 술집으로 향했으니까. 이럴 땐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로 문제 키워드만 적어두고 시간 날 때 정리해주면 된다. 독강이 아니라면 친구들과 2~3분 만에 적어놓을 수도 있다.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쉽게 가능한 방법이다.


같이 옷을 사러 가도 한번 쭉 둘러보고 딱딱 필요한 걸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참을 아무 옷도 고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이미 어떤 스타일과 색상의 옷을 살지 머릿속에 생각해둔 경우고 후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경우다. 공부같은 원리다. 조금의 시간을 들여 정리해두면 어떤 스타일과 색상을 찾아야 할지 알게 된다. 기록하지 않은 사람과 효율 면에서 차이가 생긴다. 시험기간의 1시간은 다른 때보다 더 귀하다. 당장 조금의 시간을 투자하면 기말 때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으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저녁을 먹으며 적어둔 '국제경영론'의 중간고사 문제

출제 패턴을 알았다면 거기에 맞춰 준비한다. 만약 챕터 별로 3문제 씩 나온다면 챕터마다 주요 내용 4개만 추린다. 중요한 내용이 많다면 조금 더 선택해도 좋다. 책 전체에서 핵심을 찾는 건 힘들지만 챕터 안에서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걸 찾기는 쉽다. A가 중요한지 B가 중요한지 생각해보고 선택하면 된다. 핵심을 추려냈다면 이것들을 중점적으로 외운다. 외운 뒤에 시간이 나면 다른 부분도 한 번씩 본다.

시험은 선택과 집중이다. 선택과 집중을 과목에 적용하는 사람이 많다. (가) 강의는 공부하고 (나) 강의는 포기한다. 목차보기 공부법은 목차와 출제 패턴을 활용해 선택의 기준을 과목이 아닌 내용에 두는 방법이다. 기왕 하는 공부, 모든 과목을 다 챙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여유가 있을 땐 교수님의 문제를 추측해본다. 교수님을 공략한다는(?) 느낌으로 문제를 만들다 보면 나름 재미도 있다. 잠시 동안 출제자가 되어보는 거다. 추리소설의 결말을 추리하는 것 같이 '자, 교수님 문제는 이거 아닌가요? 아니라면 어디 한번 반전을 보여주시죠!'생각하며 신을 낸다. 물론, 항상 반전은 넘쳐났다. 허나 족집게처럼 문제를 잘 짚었을 때 차오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다.



2. 생각을 정리하도록 돕는다.


목차는 체계다. 목차를 외워두면 한 챕터를 다 공부했을 때 '내가 지금 본 내용들이 챕터 1에 해당하는구나.'하며 기억이 정리된다. 다른 챕터의 내용과 헷갈리지 않는다. 이게 왜 중요하냐? 시험을 볼 때 "이거 이 내용인 줄 알았는데 다른 거였어ㅜㅜ"같은 불상사가 사라진다. 문제를 풀다 헷갈릴 때 내가 챕터에 저장해둔 기억들을 꺼내면 된다. 출제 패턴까지 안다면 이런 것도 가능해진다. '지금은 7번 문제니까 챕터 3이 나올 차례다. 이 챕터에서 중요한 내용은 (a)였으니 이거에 대해서 묻겠네?' 먼저 추측을 하고 문제를 본다. 목차보기 공부법을 거듭할수록 추측이 들어맞는 경우가 점차 늘어난다.



공감 100, 근데 소고기는 그냥 JMT..._<대학일기>

생각의 체계적인 정리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중요해진다. 시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반이 잘 다져져 있어야 한다. 교수님께선 소고기를 일일이 구워주시지 않는다. 소는 목등심, 꽃등심, 채끝, 안심, 우둔, 갈비, 양지, 설도, 사태, 앞다리, 사골 등 다양한 부위가 있지만 '소'를 통째로 먹으라고 주신다. 당황스럽지만 어디가 어떤 부위인지 몰라도 당장 먹을 순 있다. 그래서 먹고 본다. 과연 어떤 두 부위는 함께 먹었더니 맛도 기가 막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연의 일치였던 그 소고기 조합을 다시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야, 이 맛이 아니었는데...' 전에 느낀 맛. 그 맛이 안 난다. 부위를 모르니 그저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책의 구성을 보지 않고 내용만 외워서 시험을 잘 볼 수 있다. 머리에 남은 어렴풋한 기억들로 몇 차례 더 선방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나타난다. 처음부터 소고기 부위를 분류하고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음, 갈비는 이런 맛이고 사태는 이런 맛이구나?'하고 기억을 저장한다. 부위를 모르는 자는 '오 이거 맛있는데? 양고기 맛 같아.'처럼 기억한다. 문제에서 갈비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고 치자. 후자는 '아 이거 맛있던 건데 양고기 같은 그거 이름이 뭐였지?'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이 맛에 대한 설명이면 갈비네!'생각하며 갈비를 적는다.


많이 보는 것보다 기준을 두고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팔 굽혀 펴기를 할 때도 많은 횟수를 하는 것보다 한 번을 해도 정확한 자세로 하는 게 중요하듯이. 특히 전공에 관한 지식이라면 지금 배우는 강의의 내용이 다른 강의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잘 정리된 기억은 당장 이번 학기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도움이 된다.



3. 몸은 공부하지 않아도 머리는 공부한다.

머리가 알아서 하는 공부법

머리가 알아서 공부한다니 ㄱㅇㄷ!!_<대학일기>

얼마 전 <너의 이름은.>을 보고 풀지 못했던 의문이 갑자기 풀린 적이 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정말 불현듯 떠올랐기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답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한참을 고민해도 못 풀던 의문이 이렇게 풀렸다는 게 신기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흔한 일례로 "아, 걔 이름 뭐였지. 걔 있잖아. 안경 쓰고 키 큰데 마른 애." 친구랑 이야기할 때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 걔 이름 자까다!"하고 떠오른다. 근데 이런 현상이 뇌과학적으로도 일리 있는 말이라면? 신기하지 않은가. 심지어 공부법과도 연관이 있다니!



자이가르닉 효과


'자이가르닉 효과'란 끝마치지 못하거나 완성되지 못한 일은 마음속에서 계속 떠오른다는 이론이다. 일을 완수하기 전에 방해를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잘 기억하며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무의식 속에서 떠올린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그때 내가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도 자이가르닉 효과에 해당한다.


책의 목차를 보고 기억하는 행위도 자이가르닉 효과를 다. 목차만 외운 상태에선 '왜 목차의 제목이 이거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게 된다. 시험공부나 수업을 통해 각 챕터를 공부하는 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뇌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해답을 찾으려 한단 사실이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거나 볼 때 뇌의 궁금증이 풀리며 더 잘 기억하게 된다. 같은 시간 해도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하물며 목차만 외워놓으면 밥을 먹으러 가도 내 머리는 공부하고 있다니 최고 아닌가? 밥 먹으러 갈 때 친구가 핀잔을 주면 당당하게 대꾸할 수 있다.


"야 너랑 다르게 내 머린 지금도 공부 중이거든?"(친구의 반응은 장담 못한다)








목차보기 독서법


목차보기 공부법은 대학생 시절의 공부법을 넘어서 지금도 즐겨 쓰는 방법이다. 사실 이제 공부법보단 책을 더 잘 보기 위한 방법에 가깝다. 그래서 '목차보기 독서법'이라고 부른다. 난 독서를 할 때 에버노트에 기록하는데 여기에도 '목차'를 꼭 넣는다.


어떤 책이든 목차를 유심히 보려 하는 편이다. 책 하나를 편찬하는데 들어가는 수고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글 하나를 적어도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하물며 그 집약체인 책은 어떻겠는가. 그 많은 노력을 단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한 게 목차이다. 그렇기에 지금 책의 절반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며 차분히 목차를 본다.


'브랜드마케터들의 이야기' 독서노트 일부


목차엔 작가의 생각과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 담겨있다. 퍼블리를 통해 편찬된 '브랜드마케터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쉽게 읽히며 내용도 훌륭한 아주 좋은 책이다) 저자 4명이 모두 책에 등장해서 책 구성이 일반 책들과 조금 다르다. Part.1부터 Part.17까지 저자 4명의 이야기가 4번에 걸쳐 순서대로 나타난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각 저자들이 내용을 채우고 이를 묶는 걸 반복한 형태다. 나는 이 목차를 보고 4 Part씩 묶어 1~4부로 나누고 내용을 포괄하는 문장을 써두었다.


[1부] 마케터가 된 계기, 마케터 OOO (Part.1~Part.4)
[2부] 브랜드와 브랜드 마케터 (Part.5~Part.8)
[3부] 브랜드 마케터의 실무 (Part.9~Part.12)
[4부] 영감을 얻는 방법과 개인의 취향 (Part.13~Part.16)


1부에선 저자들이 마케터를 하게 된 계기부터 현재의 회사까지 연결되는 이야기다. 2부는 브랜드 명과 브랜드 비전이 각 챕터의 제목이며 소속된 회사의 브랜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3부는 회사 별로 조금씩 다른 실무에 대해 어깨너머로 경험해볼 수 있게 해주며, 4부는 마케터들의 영감 획득 방법과 취향을 보여준다. 여기에 INTRO부분까지 훑어보면 '저자가 젊은 실무자들을 위해 책을 썼구나', '전체적인 흐름은 어떻게 흘러가겠구나.'를 예상할 수 있다. 그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런 목차보기 독서법은 책을 그냥 '읽는' 행위가 아니라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행위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었다면 응당 깨닫는 게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이 있어야 남는 게 있다. 목차를 보는 건 첫째로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왜 썼는지 뒤에 담긴 의도를 추측하게 한다. 둘째로 각 꼭지의 내용을 예측 만든다. 꼭지들은 전체보다 구체적인 울림을 담고 있다. 셋째로 책을 읽은 뒤 내 생각과 책 내용을 비교하게 한다. 비슷한 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찰나지만 나도 책의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한다. 책의 주제 저자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느끼는 게 생겨난다. 남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이 생겼기 때문에 책 내용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데도 목차를 활용할 수 있다. '브랜드마케터들의 이야기'는 500P가 조금 안 된다. 여백이 많기도 하지만 내용에 흥미가 있었기에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목차에서 흥미를 못 느낀다면 책을 완독 하기가 어렵다. 책의 두께가 아니라 나의 관심이 관건이다. 1,000P라도 흥미만 있다면 하루 만에 읽을 수 있지만, 마음이 가지 않으면 100P 짜리 책도 책장 안에만 두게 된다.




'목차보기 공부법' 그리고 '목차보기 독서법'


어쩌면 누구나 하고 있는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차피 볼 목차라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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