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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Jan 10. 2019

'밥 먹었니'에 담긴 뜻


저녁 약속에 늦어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던 때의 일이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어린이집 등원차가 오더니 한 아이가 내렸다. 아이는 아직 부모님이 오시지 않았는지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상가 앞으로 발걸음을 돌려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아버지는 연거푸 미안하다고 말하시며 아이의 손을 잡으셨다. 그때 미안해하시는 아버지한테 아이가 한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냐 아냐, 괜찮아! 근데 아빠 밥은 먹구 왔어?"

아이가 어떤 뜻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아이가 자신의 서운함을 말하기보다 오히려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니... 택시 안에서도 한참 동안이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20살의 나

아이의 말을 듣고 충격받은 이유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견스럽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20살 무렵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살의 나는 술자리를 엄청 좋아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아했지만 동기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게 너무 좋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에 실컷 놀면서 학업을 챙겨야만 했고 당연히 귀가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집까지의 거리도 편도가 2시간 정도였기에 12시를 넘어 집에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집에 도착하면 술에 취한 탓인지, 하루의 피곤함이 몰려 온 탓인지 금방 잠에 빠지곤 했다. 이따금 잠에 들려고 할 때, 문을 살며시 열며 나타난 어머니가 하시던 말이 있다.


"아들, 저녁은 먹고 왔어?"


평소에는 그렇다고 답하며 엄마도 얼른 가서 주무시라고 답을 했다. 허나 몸이 몹시 피곤할 때면 이런 물음을 받는 게 싫었다. 뻔한 질문에 항상 같은 답을 해야 하는 게 귀찮게 느껴졌고 한 번은 당연한 말을 묻지 말라고 했던 적도 있다. 상가 앞에서 아이의 말을 들을 때 이런 철없던 내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와 내 모습이 대조되고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몹시 부끄러웠다.



'밥 먹었니?'에 담긴 뜻

밥은 먹었는지
무슨 일은 없는지
밥을 먹을 만큼의 여유는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시간이 흐르니 밥은 먹었냐고 묻는 말이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 자체가 궁금할 때도 있지만 안에 담긴 뜻이 더 많다는 걸 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손주, 자식들을 볼 때마다 밥은 먹었냐고 물으셨다. 먹었다고 답하면 그럼 됐다 말하면서도 잠시 후에 뭔가를 주섬주섬 들고 오셨다. 과일, 한과, 전 등 항상 종류는 달랐지만 맛있는 음식이었다. 음식을 건네주시곤 먹는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셨다.


음식을 먹는 우리를 보며 할머니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밥은 잘 먹었니', '요즘 무슨 일은 없고?', '오늘 하루는 어땠니', '그래, 강아지 고생 많았다'같은 말이 들리는 듯 느껴졌다. 별다른 말 없이도 항상 많은 말을 해주셨다. 


회사를 다니며 자취를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됐다. 요즘은 아버지가 밥은 먹었냐며 물어보신다. 항상 어머니께서 물으셨는데 부지불식 간에 아버지의 그런 물음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애정을 표현하는 게 서투신 아버지인데 내가 이렇게 느끼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하셨을까. 아무런 큰일 없이 지내고 있는지, 밥을 먹을 만큼의 여유는 갖고 사는지,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을까. 어머니가 늦은 시간 차려주시던 고봉밥에 담긴 마음은 얼마나 컸을까.


이제는 밥 먹었냐는 질문이 참 기분 좋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상냥하신 어머니가 똑같이 내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잘 지내고 있는지, 여유는 가지며 사는지 궁금한 마음과 오늘도 수고했단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됐기에.


여러분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저녁, 밥은 잘 먹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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