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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Sep 14. 2018

글쓰기가 좋아진 이유

지금이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것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였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여행이 하나 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친구와 함께 즉흥적으로 떠난 자전거 여행이다. 이 여행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다녀온 여행이 적은 까닭도 있지만, 항상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행동하는 내가 출발 바로 전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23살의 나는(제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세상 모든 게 패기 하나면 다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내일 출발하자고 결정부터 짓고 부산스럽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찾아 가방에 챙겼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본 적도 없었지만 '기껏해야 쓰러지기밖에 더하겠어'생각하며 목적지도 부산으로 잡았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난 서울에서 부산까지 떠나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인생은 즉흥이지!

패기 빼면 시체(2015, 복학러)


 그 이후는 잘 모르겠다. 첫날에 비를 맞고 달리며 한 20번 정도 후회했고, 여행 내내 허벅지는 비명을 질렀으며, 그럼에도 눈에 담기는 풍경들은 참 예뻤고, 김해 앞에서 만난 태풍에 자전거가 박살 났다는 정도? 아 여행의 마지막, 대교 위에서 있었던 참홈 님과의 만남은 그를 무시하면 숨도 못 쉰다는 깨달음도 몸소 기억하게 해주었다. (참홈은 태풍 이름이다)


그리고 자전거 수리비 30만 원과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여름을 보냈다는 증거, '까만 반달'모양의 훈장이 목 뒤에 생겼다.



잘 기억나질 않는다.


사진이라도 찾아봐야 '아 그때 그랬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절대 잊을 수 없을 듯한 여행이었는데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단 거다. 위 내용들도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당시의 사진과 카톡대화를 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카카오톡이 없었다면 아마 거의 기억해내질 못했을 거다. 그 아름답던 경관들도, 힘들었던 대교 위에 경험도 생생히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기억은 희미해지며 나중엔 강렬했던 인상만이 남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없다지만, 내가 느끼는 나란 인간의 기억력이란 참 보잘것없다.






글쓰기는 여러 가지를 준다.


1. 기억을 돌려준다.

먼저 기록은 기억을 돌려준다는 큰 장점이 있다. 앞서 자전거 여행을 이야기한 이유는 아무리 강렬한 경험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잊혀진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글쓰기는 생각과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도와준다. 지금 본 구름과 산, 그리고 저 새가 내게 어떤 느낌을 줬는지. 불어오는 바람과 향기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록해두지 않으면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둔 글을 훗날 다시 들춰내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돌아온다. 작은 기억 조각들이 모이면서 서로 연결되고, 연결된 조각들이 꽤나 많은 기억을 돌려주게 된다.



2. 제2의 경험, 제3의 경험을 준다.

가끔 어렴풋이 느껴지긴 하지 뭔지는 모를, 정체불명의 느낌도 글을 적으며 정리하다 보면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미처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글을 적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경험을 적음으로써 제2의 경험을 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적힌 소중한 경험들은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도 있다. 가끔은 분명 내가 쓴 글인데 '어, 이거 내가 쓴 글 맞나?'생각이 들기도 하고, 읽다 보니 그때의 감정이 톡 하고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면 글을 보는 지금의 상황과 느낌, 달라진 경험들이 과거의 내 기록과 연결되면서 또 다른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나의 경험이 글을 씀으로써 제2의 경험, 제3의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는 거다.



3. 더 경험하고 싶게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글쓰기가 좋아진 중요한 이유는 그때 느꼈던 감정은 그때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 감정을 떠올리며 흉내 내보아도 그때와 같은 감정은 다시 경험할 수 없다.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물감처럼 당시의 상황, 생각, 느낌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나타난 그 감정. 그건 오직 그때라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겐 지금 이때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고, 그래서 지금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쓸 수 없다. 물론 나중에 돌아보면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나 미숙하기에, 잘 모르기 때문에 적을 수 있는 글도 있지 않은가.(지금 이 글처)


어떤 방법을 써도 똑같은 그림은 그려낼 수 없다.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경험, 지금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는 생각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게 만들어 준다. 내가 보고 느낀 것만이 내게 실재하는 세계이고 글쓰기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벚꽃을 못 보면 내년 4월에 보면 되는 게 아니라 매년 다른 벚꽃을 보며 꽃내음을 느껴보고 싶어 졌다. 12월이면 무서워서 안 타던 보드를 타러 가고 싶고, 이젠 여행도 훌쩍 떠나서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림도 그리고 싶다. 어렵게만 느끼던 사진도 잘 찍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러면서 느낀 감정들을 글로 담아내고 싶다.






이외에도 글쓰기가 좋은 이유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제 막 쓰기 시작했지만 적다 보면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 책도 읽게 되고,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다. 글을 적기 위해서 조금 더 다듬어서 정리를 해두게 되고 다음 글은 어떤 걸 쓸지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면서 관심 가는 것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취향이라고 할 게 딱히 없던 내가 이제는 취향을 찾아가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브랜드가 브랜드다움을 만들 듯이 나도 나다움을 만들어 가는 기분이다.


기억을 돌려준다
글쓰는 과정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게 만들어준다
잘 쓰고 싶어 책을 읽게 된다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다
정리하는 방법이 다듬어진다
주변을 관찰하게 된다
새로운 취향이 생겨나게 된다


앞에서 말한 글쓰기가 좋은 이유를 정리해보면 위와 같다. 보다시피 글을 써서 얻는 이점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다보니 글쓰는 게 점점 더 좋아지고, 매주 주변 지인들과 모여서 글을 작성하는 목요일이 기대된다. 덕분에 요즘 하루하루가 아주 설렘의 연속이다.










그리고 얼마 전, 지금이기에 가치있는 것들을 찾아가라고 내가 자신에게 준 선물 하나.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쓰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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