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작가 Sep 21. 2018

<너의 이름은.>

너를 오롯이 기억하기 위해 마주하는 감정


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중에서
너의 '이름'은.


이름이 갖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이름이란 모든 관계의 시작이다. 이름조차 모르는 대상은 내게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지만 이름을 알게 된 존재는 나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갖고 어떤 존재에 첫걸음을 다가설 때, 가장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바로 이름을 묻는 것이다. 그 대상의 이름을 물음으로써 수많은 존재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존재를 구별해내 의미를 부여하는 거다. 이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존재를 내게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어떤 존재가 내게로 와 '꽃'이 되어줄 수 있는 방법이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는 이런 이름으로 형성되는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이 드러난다. 그래서 내겐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도 긴 여운을 남긴다. 서로 간의 관계에서 물리적인 관점의 연결과 끊어짐, 그리고 정신적인 관점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준다.



단절과 '무스비'


3년이란 시간의 차이가 있어  미츠하가 타키보다 3살 연상이다.
시간: 3년 전, 3년 후
공간: '이토모리' 시골, '도쿄' 도시
죽음: 죽은 자, 살아있는 자

<너의 이름은.>에서 타키와 미츠하는 현실이라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이다. 우선 두 사람이 사는 배경 공간은 시골과 도시로 설정되어 있어 물리적으로 굉장히 멀다. 물론 이는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느 한쪽이, 혹은 양쪽에서 서로에게 더 다가가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미츠하와 타키의 시간은 3년이나 어긋나 있단 것이 숨겨진 장치들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달력 2013&2016, 아이폰5&6 등) 후반부엔 타키가 3년의 시간차를 인지하게 되고, 미츠하는 이미 죽은 인물임이 밝혀지며 서로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단 믿음이 있었음에도 현실은 안타까울 만큼이나 단절되어 있었단 걸 보여준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누군가와 만나게 된다는 것은 그와 동시에 헤어짐이 다는 뜻이다. 이 둘은 동시에 일어나진 않아도 동시에 존재한다.  <너의 이름은.>에선 상영 내내 이어짐(무스비)에 대한 강렬한 바람을 내비친다. 꿈을 통해서 비현실적인 연결이 이뤄지고 나중에는 상대방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고자 먼 길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이어짐에 대한 외침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진심으로 이어지고자 하는 갈망 때문에 멀어지고, 끊어지고 단절되어있는 현실이 더욱 부각된다. 이어짐에 대한 열망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단절된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망각과 '기억'


영화에서 더욱 눈여겨보게 되는 부분은 기억에 관한 부분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죽게 되는 순간이 언제일까?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총알이 심장을 관통했을 때?
아니 부칠의 병에 걸렸을 때?
아냐 맹독 버섯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한 구절이다. 지나가는 만화의 한 장면으로 넘기기에는 삶에 대한 통찰과 묵직한 울림이 있는 대사이다. 물리적인 어떤 단절보다 가장 큰 단절은 바로 망각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이 자신에게 실재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망각이란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재가 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모든 이에게 망각된 존재는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던 자와 마찬가지가 된다.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이름을 묻고, 핸드폰을 통해 기록을 남기며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접어들며 서로 기억하려 애쓰는 그들을 맞이하는 건 '망각'이다. "소중한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말하며 간절히 기억하려 함에도 망각은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도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점점 잊혀지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우리에게도 그런 일들이 하나 둘씩은 있다.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는 미츠하와 타키의 모습처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질만한 일들이.

하지만 대상을 기억할 방법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상과의 관계를 단순히 '이름을 아는' 단계를 넘어서면 가능해진다.


미츠하에게 이름이 아닌 '좋아해(스키다)'라고 적어준 타키


힌트는 영화 속에서 나온다. 타키와 미츠하는 이토모리 호수에서 서로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각자의 이름을 적어주자고 한다.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있는 둘은 '황혼기'에 잠깐 만날 수 있었을 뿐이었고 타키만이 미츠하에게 자신의 이름을 적어줄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타키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좋아해(스키다)'를 적어주었다.


왜일까? 나는 그것이 상대방을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감정'

기억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은 대상의 이름을 '아는 것'을 넘어 본인이 '직접 느 것'이다. 타키의 '좋아해(스키다)'란 감정은 이성적인 판단 이전에 느끼게 되는 미츠하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이다. 어떤 존재를 보며 내가 느끼는 강렬한 내면의 그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곧바로 느껴지는 감성, 선호, 취향, 인상 등의 감정적 요소들에 이성적 요소들을 덧붙여지면서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대상의 이름은 잊혀질 수 있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 감정을 기반으로 쌓은 기억은 상대방의 이름을 기반으로 쌓인 기억보다 오래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키는 '스키다(좋아해)'라고 적은 것이라 생각한다.


'의지'

그래서 감정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이성적 요소에 해당하는 의지이다. 의지를 통해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판단하고 비판고 질해본다. 때로는 감정을 논리적으로 풀어보기도 한다. 다른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한 방법은 서로의 이름을 계속해서 묻는 것뿐이고, 그럴 수 있는 힘은 내 감정에 대해 마주하는 의지에서 나온다. 기억은 감정에서 비롯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잊지 않으려는 자의 의지인 거다.


오래 기억하기 위해선 내게 이름'만'을 가진 존재를 넘어서야 한다.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지만 이름이 대단한 이유는 대상에 대한 나의 관심과 감정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오롯이 느낀 나의 '감정'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이성을 붙여나가야 한다. 대상의 이름과 그에 대한 감정에 이성을 덧붙여 켜켜이 쌓여가는 새로운 기억들이 필요하다. 더 이상 그에 대한 감정을 마주하길 포기하는 순간 서서히 망각하게 된다. 특히 서로가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면 계속해서 그에게 느꼈던 내 감정에 질문하자. 그 감정에 대해 더욱 파헤쳐보자.


그럼으로써 그는 나에게 꽃이 되
나의 내면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상대방을 잊지 않
오래도록 기억하는 방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가 좋아진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