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면 충분해
"인터뷰 고마워 오빠. 근데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남들은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잠깐 동안 나눈 대화 속에서 나온 말이다. 최근 한 달 사이 2번의 인터뷰를 했는데 두 명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실무 얘기를 하며 보탰던 말들이 나를 제법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으로 비치게 만든 모양이다. 좋게 봐준 건 고맙지만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의 후배는 직업탐방을 위해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제 2학년이지만 벌써 스타트업 마케터란 목표를 갖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있던 창업 홍보단체에도 들어왔다고 한다. 후배는 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말을 건네어도 눈을 반짝이며 받아들였다. 인터뷰를 녹음하면서 혹시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손을 바삐 움직였다.
다른 후배는 인터뷰를 마치고 밤 11시에 늦은 귀가를 했다. 다음날 내가 출근하면서 연락을 하니 영상편집을 마쳤단 연락이 있었다. 새벽 4시 조금 넘은 시간이 찍혀 있었다. 답장을 보내니 벌써 수업을 듣고 있단 톡이 왔다. 막 학기라 3학점만 남았는데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18학점을 듣고 있다고 한다. 목요일이면 글을 쓰는 모임에서 함께 하고 있는데, 어제는 시험으로 며칠 밤을 새우고도 모임에 참석했다.
후배들의 비교대상이었던 나의 대학시절은 어땠었나. '졸업할 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지냈다. 대외활동은 하나도 해본 적이 없다. 비로소 4학년이 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내게 과연 후배들보다 나은 점이 있었을까? 오히려 후배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내게 자극이 된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날 보며 초조함을 느끼다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마케터가 있다. 배달의민족 마케터 '김규림'님이다. 처음 볼 때부터 규림님만의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느낌에 마음이 끌렸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목요일마다 글을 쓴다는 점이 귀감이 됐고, 더욱 잘 표현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멋있었다. 2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벌써 '도쿄규림일기'부터 '뉴욕규림일기'까지 3권의 책을 냈다.(장인성 이사님의 '마케터의_일' 그림 작가 시기도 하다) 나와 같은 마케터이며 나이도 비슷하기에 주변에서 들리는 성공한 CEO들의 이야기보다 내게 더 큰 영감과 울림을 주었다. 새로운 경험을 즐기며 자신만의 개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가 멋있다. 그리고 부럽다.
'과연 나는 28살에 무얼 하고 있을까?'
어느새 난 규림님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생각은 일순간에 부풀어 올랐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 나갔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뭐지? 왜 기록하지 않고 살았을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난 도대체 여태까지 뭘 하며 산거야...?' 훨씬 앞서 나가는 규림님과 대비되는 내 모습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난 왜 이렇게 부족할까. 거듭 자책하고 채찍질했다. 초조한 마음을 추스르는데만 무려 1주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매일 하는 일은 대단해 보이는 것을 이뤄내기 위해 꾸준히 해야만 하는 일, 쭉 뻗은 직선 속 점 같은 일이 많습니다.' -브랜드마케터들의 이야기, 이승희 외 3명 저
내가 느낀 초조함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 남과 나를 비교하는 태도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발을 들인 지 1년 차 초년생이 욕심을 부린 탓이다. 몇 년의 세월 차는 무시한 채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냐며 자책하는 꼴 아니겠는가. 김규림 님도 처음이 있었고 흘러간 세월 속에서 점차 나다움을 쌓았다. 대단해 보이는 일을 위해 일상에서 쌓아 온 꾸준함을 눈여겨봐야 했다. 나다움을 쌓는 노력을 하기도 전에 눈 앞의 결과만을 놓고 비교했던 게 문제였다.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앞서 말했던 후배들을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고 해보자. 처음엔 간단한 안부를 묻는다. 잠시 후 "요즘 어떤 일 하고 있어? 일은 할만해? 연봉은 얼마 정도야?"를 물어본다. 친구의 대답에 따라 그날 밤 수면의 질이 달라진다.
한국은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익숙한 사회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으면 기뻐하고, 못하면 질투하고 자책한다. 한때 유행했던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도 비교에서 생긴 게 아니던가. 하나 중요한 건 남과 비교해서 얻은 행복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단 점이다. 나보다 더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남을 기준으로 둔 비교는 반복적으로 상대적 박탈감 만을 느끼게 한다. 자신을 불행으로 집어넣는 외길에서 끝나지 않는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비교하는 태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비교 대상을 남이 아닌 자신으로 정하면 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아졌는가.
어제의 나보다 더 보람차게 일하는가.
그래서 난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한가.
그저 내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있는지에 초점을 두면 충분하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행복해졌다면 썩 괜찮은 하루를 보낸 게 아니겠는가? 남들이 정해놓은 틀에 자신이 들어맞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경제적 지위나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내가 세운 기준 안에서 판단하면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최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가슴 벅차게 일하고, 놀고, 깊게 사랑하는 모든 순간마저 조금씩 죽어간다. 한 번뿐인 인생이다. 남들과 비교하며 불행을 느끼며 살기엔 너무나 시간들이 아깝지 않은가.
내가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단 이야기가 아니다. 나만의 속도로 살고 싶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내 방법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적는다.
처음 김규림 마케터님을 알게 됐을 때 나 자신의 색이나 향을 떠올려봤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혹시 무색무취는 바로 날 두고 생긴 말이 아니었을까? 고민 끝에 이는 '경험'이 적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난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었다. 음식도, 노래도, 취미도. 가끔 친구들과 게임하는 걸 즐기는 게 다였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여행도 내겐 귀찮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글을 적다 보니 좋아하는 게 없다는 건 경험이 적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됐다. 취향은 경험이 쌓여서 형성된다. 좋고 싫다는 생각을 거듭하면서 취향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생긴 취향들은 모여서 내 개성이 된다.
하지만 경험이 중요하다고 해도 막상 뭘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때 모방이 꽤 좋은 방법이다. 나 같은 경우는 규림님이 진행하는 '목요일의 글쓰기'를 먼저 따라 했다. 예전에 글 쓰는데 관심이 있었고 죽기 전에 꼭 책을 내겠단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나를 점차 다른 경험으로 연결시켜주었다. 생전 안 가보던 전시회를 가게 만들었고, 책을 읽게 했으며, 혼자 여행을 나서게 만들었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일단 모방으로 시작해보자. 자연스럽게 그 경험이 다른 경험을 해보도록 도와준다.
처음엔 모방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신 만의 방법도 찾게 된다. 내가 있는 '목요일의 글쓰기' 모임은 규림님이 있는 모임과 달리 매주 모두가 모인다. 생각했던 것보다 글이 아닌 대화를 통해 얻는 영감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여태까진 각자가 쓰고 싶은 내용을 썼지만 앞으론 같은 주제로 글을 써 책을 내보기로 했다. 더 재밌게 글을 쓰기 위해서 함께 정한 방법이다.
투명한 색연필로만 칠하다 이제야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여러 색상으로 칠하기 시작한 기분이다. 며칠 뒤 떠나는 여행에선 규림일기처럼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처음엔 따라 하기 위해 그릴 테지만 이 또한 그리다 보면 나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할 거라 믿는다.
남이 아닌 나에 기준을 두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보자. 뒤쳐진 것도 이른 것도 아닌 딱 적당한 나만의 속도로. 주변을 보며 초조해할 필요 없다. 그저 어제보다 내가 행복하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거면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