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이야기] 남편 향한 원망과 사랑이 만들어낸 '북엇국'
'아침 밥상'이라고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요즘은 '브런치'가 대세라는 말을 할 수도 있고 토스트나 우유, 아메리카노 같은 간단한 음식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아침 밥상'이라는 말 자체가 구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한창 바쁘고 피곤한 아침에 밥상을 받는다니요.
하지만 우리들의 아침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술 마신 다음날 훌훌 마셨던 북엇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콩나물국, 된장국 등도 좋지만 특유의 시원한 맛이 속을 달래주던, 자극적인 맛이 아닌 맑은 빛깔이 돋보인 북엇국의 맛을 잊기는 어렵죠.
북어는 사시사철 바쁘기도 합니다. 연말연시 여기저기 술자리가 생기고 그 핑계로 마시고 또 마시고... 어디 연말연시뿐인가요. 어느 시기가 됐든 술잔을 기울이기 좋아하는 분들에게 술자리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죠. 그나저나 다음날 아침 그나마 집에서 북엇국 국물이라도 맛본다면 모르겠지만... 잔소리만 듣고 쓰린 속 부여잡고 출근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직장인들을 상대로 새벽부터 영업하는 북엇국 집이 많아졌습니다. 아침 일찍 혹은 점심에 한 그릇 먹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래저래 추운 날씨 때문에, 연말 끊임없는 술자리 때문에 북엇국이 다시 각광받을 시기가 오기는 왔습니다.
술 마신 다음날, 북어는 대체 뭔 죄랍니까?
요즘은 마트에서 찢어놓은 북어를 포장해 팔기 때문에 나아졌지만 이전만 하더라도 북엇국을 끓이려면 반드시 통북어를 방망이로 두드리는 작업을 거쳐야 했습니다. '두드린다'는 표현은 사실 약하죠. 어감은 이상하지만 '팬다'는 표현이 이 상황에선 적절할 것 같습니다.
밤늦은 시간 아내는 남편을 기다립니다.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실시간 통화가 가능하지만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밤이 가고 새벽이 오도록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웬 노랫소리가 들려오네요. 아이고, 또 한 잔 하고 왔습니다.
그냥 얌전히 와서 자리에 누우면 밉지나 않죠.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않나(그것도 자기가 아는 부분만 반복해서 부릅니다), 잔소리를 하지 않나, 시비를 걸지 않나(문제가 크죠!), 그래도 '못나도 내 남편'이라고 아내는 남편을 자리에 눕힙니다. 어느새 소란을 피우던 남편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잠에 빠져듭니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한 아내는 선잠을 잔 뒤 다시 부엌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방망이로 통북어를 '패기' 시작합니다. 유난히 힘이 들어갑니다. 자기가 힘든 것도 모르고 철부지처럼 매일 술만 마시는 남편에 대한 원망 때문이죠.
마치 북어가 남편인양 남편에 대한 불만을 북어를 패는 것으로 풉니다. 북어는 뭔 죄랍니까? 왜 남편이 술 먹고 난리 칠 때마다 맞아야 하는 건지요? 그래도 아내는 역시 '못나도 내 남편'이라며 북어를 찢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참 남자들도 너무했죠. 이런 모습을 보고 한다는 말이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한다'라니요. 그 말은 한동안 '가장의 권위'를 표현하는 말로 불려졌습니다. 여자의 고생을 모르고 그저 북어처럼 '패야하는 존재'로 여겼다가 가정을 망치고 자식을 망친 사례가 얼마나 많았나요?
북엇국에는 아내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집밥'을 보면 어머니의 눈물이 생각난다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렇죠. 그 맛있는 식사를 차리기 위해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요? 특히나 남존여비가 너무나 뚜렷했던 옛날엔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북어와 두부, 계란 등을 넣어 시원하게 끓여낸 것이 북엇국입니다. 하지만 북엇국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 대한 원망과 함께 '그래도 내 남편'이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괴로운 일로 술을 마시는 남편을 사랑하며 끓여내는 음식, 술 때문에 속상하게 했지만 그래도 용서해준다는 의미로 끓여내는 음식. 그것이 바로 북엇국의 참맛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시 음식은 사랑인가 봅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임동현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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