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이영원하기를 May 27. 2022

아이를 떠나보낸지 일주일이 되었다.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7

아이의 연명치료가 중단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의식이 없었던 아이,

뇌사와 식물인간 사이 그 어디쯤이었던 아이.

그래서 처음부터 부모에게 결정권이 없었던 아이.

태어나 4년을 줄곧 누워, 인공호흡기에 의지한채

콧줄 하나로 먹는 것조차 버거워 수없이 게워내고,

갈수록 영양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몸은 약해져

골절 뿐 아니라 뼈 곳곳에 변형의 위협이 찾아오고,

고통은 곧 호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날이

잦아졌다.


나의 네살 짜리 아기는 임종기 판정을 받았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남편을 보낸 아내는 과부,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는 이름이 없다.

나는 이제 누구 엄마, 누구 보호자님도 아닌

이름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름이 없어서일까.

나의 삶도 아무 방향없이 흘러가고 있다.

아무때나 일어나고, 배고플 때 밥을 먹고,

다시 눕고 싶으면 눕고, 좀 걸어야겠다 싶으면 걷다가,

지치면 눕는다.  

하루가 원래 이토록 길었던가.


24시간 아이 옆에 붙어 꼼짝을 못하면서

만4년을 잠 한번 제대로 자보질 못했는데,

정작 아무것도 할 일 없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흘러가는대로 살고 있자니

이제 내가 정말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구나 싶다.

나처럼 아이를 간병하다 아이를 잃게 되는 엄마들은

직업을 잃는 기분이다,

라고 표현한다.

감히 그거에 비할 바가 되겠는가 싶었지만,

막상 내가 이 처지가 되어 보니 알 것 같다.

아무 쓸모 없고, 아무 할 일 없고,

아무 기여할 데가 없는 인간.

그게 내가 되어버린 기분인 것이다.


20대의 나는 아나운서 준비생이었다.

누구 못지 않게 수없이 많은 실패를 맛봤다.

일년에 두 세번 있을까 말까한 큰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혹시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그 사이사이 수도 없이 많은 오디션에 참여한다.

나름 승률이 좋은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는 없는 법.

탈락의 좌절감도 정말 많이 맛봤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

무릎을 꿇는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수많은 명언들이 나의 다이어리에 적혀있다.

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강하게 더 강하게 성장해왔다.


하지만 아이를 잃는 것은, 자식을 잃는 것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좌절이다.

어떠한 명언으로도,

자기 반성과 공부로도 극복되지 않는 상실이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일어서야 할 지 모르겠다.


쓰레기봉투를 사러 마트를 가는데

햇볕이 너무 쨍하게 나를 비추면

나는 내가 너무 부끄럽다.

자식은 죽었는데 쓰레기봉투 따위나 사러가고 있는 내가 부끄럽고 죄스럽다.

밥을 먹다가 목구멍에 밥덩이가 넘어가는 순간

내가 지금 이걸 왜 먹고 있나 싶다.

샤워를 마치고 개운하게 나왔다가도

나는 그 개운함이 미안해서

다시 더많은 땀한바가지를 뒤집어써야 할 것만 같다.


아이와 함께했던 동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려뒀었다.

우리의 일상을 보는데 모든 게 꿈만 같았다.

그 모든 일이 마치 내가 겪었던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 같아,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가 아주 긴 꿈을 꾼 걸까.


아이를 떠나보낸지 일주일이 되었다.

나는 지금 무얼 해야하는 것일가.

울어야할까. 극복하려고 발버둥쳐야할까.

나는 그저 멍하니있다.

지금이 꿈같이 느껴지기도하고,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이 꿈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나의 아이는 어디쯤 가있을까.


아이를 떠나보낸지 일주일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