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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May 27. 2022

아이가 사라진 삶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10

남편과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아이의 간병을 시작하고 나서

외식은 손에 꼽을만큼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아직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낯선 느낌이 여전하다.

맛있다, 이렇게 먹으니 편하다 말하면서도,

좋다

말하면 왠지 안될 것 같다.

나쁘지 않은 이 느낌이 찾아오는 동시에

너에대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 모든 편안함이

네가 없어서 느끼는 것이므로.


아무때나 필요한 걸 사러 나가고,

때론 훌쩍 둘이 밖으로 나간다.

분리배출할 쓰레기가 많을 때도

더이상 아빠 혼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같이 이사갈 집을 보러 다닐 수도 있다.


아이가 내 삶에서 사라지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하게 된다.

아이를 잃으면 많은 것들을 잃어야 맞는데,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너와 우린

원래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오히려 이제와 할 수 있는 게 참 많아진다.

나는 그게 전혀 기쁘지 않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슬프다.

아이는 이런 나를 보면 어떨까. 혹 서운하진 않을까.

내가 밉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아니면 혹 나처럼 아이도 지금 어디에선가 자유로울까.


아이가 사라진 삶은 그전보다 훨씬 분주하지만,  

어딘지모르게 늘 가슴 한구석에 깊은 구멍이 있는 것 같이 허전하고 시리다.

그 구멍을 제대로 바라보면 빨려 들어갈 것 같고,

더이상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아서,  

나는 차마 그것을 바라볼 용기도 없다.

울지 못하고, 슬퍼하지 못하고

그냥 아이가 사라진 삶을 흘려보내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 큰 의미가 있던 누군가가

너무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게,

한번 사라지면,

이토록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게 무섭다.

오로지 내 기억만이 남아있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최대한 오래, 가장 길게 나의 아이를 기억하는 것.

우리가 보낸 시간 위에 

시간이라는 먼지가 앉지 않도록

늘 새것처럼 닦고 또 닦아가며 기억하는 것.


너는 마음껏 자유로우렴.

나는 매순간 너를 기억할거야.

언제까지고 우리를 떠올릴거야.

영원히 나의 소중한 아이, 너를 그리워할거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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