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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May 28. 2022

더 격렬하게 혼자이고 싶다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11

짜증 내는 일이 잦아졌다.


늦게 일어나면 늦게 일어나서,

잠을 못자면 못자서,

배가 불러서,

그러다 배가 갑자기 너무 고프니까,

말은 왜이렇게 못알아 듣는건지,

드라마 보는데 질문을 계속하면 어떻게 들으라는 건지,

별의별 이유로 남편에게 자꾸 짜증이 난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그 온기가 너무 그리우면서,

따뜻한 누군가의 품이 이토록 절실하면서,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짜증이 나다보니,

이미 아이도 없이 혼자이면서,

더 격렬하게 혼자이고 싶다.


남편은 자녀상으로 휴가를 내고도,

병가 휴가를 더 냈다.

회사에서 사람들을 마주하고,

으레 그랬듯 했던 얘기 또하고, 들었던 얘기 또 듣고,

괜찮아도 어쩐지 조금은 안괜찮은 게 맞는 것 같으면서,

그렇다고 안괜찮은 내색을 하면 모두가 불편해질 것 같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어내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긴 휴가의 이유 중 하나는 분명 나였다.

아픈 아이를 낳고 첫해 육아휴직,

아이의 임종기를 함께하기 위한 돌봄휴직,

아이를 떠나 보내고 연차휴가를 탈탈 털어쓴 뒤,

석달의 병가까지.

장기 휴가를 세 번이나 낸 것은 남편이 뻔뻔한 직장인이어서가 아니라,

소중한 딸과의 시간이 너무 갖고 싶어서.

그리고 내가 혼자 감당할 것들을 나눠주기 위해서 였음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자꾸 남편에게 짜증을 낼까.


아이를 잃은 부모는 많지만 이유는 다 다르기 때문에,

또 아픈 아이가 세상을 떠나도 그 과정은 너무 달라서,

세상 내 슬픔을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도,

나와 딱 비슷하게 느낄 사람도 이 지구에 남편 하나 뿐인데,

나는 그냥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계속 화를 내고 있다.


당신도 딸을 잃었지.


예전처럼 유튜브를 틀어놓는 것도 아니고,  

그냥, 

침묵 속에서 묵묵히 설겆이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다가,

세상 고단한 얼굴로 먼저 잠든 남편을 볼 때면,

가끔 새벽에 혼자 잠들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면서,

내가 먼저 잠든 줄 알고 남몰래 훌쩍거릴 때,


그래, 당신도 딸을 잃었지.


잊어버리지 않아야하는데,

내 슬픔 때문에

당신이 슬플 겨를을 안주는 짓을 하지 않아야할텐데,

내 눈치보느라

당신 슬픔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묻어두면 안될텐데,

내일부터는 정말로 짜증부리지 말아야지,

마음먹고 또 마음먹는다.

내일은 성공할 수 있을까.


" Don't waste your time telling the people who love you that most that they don't count.

They are the only ones that count. "

널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쳐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야.  

그 사람들보다 더 쳐줘야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니.

                                                                 - 영화 '시니어 이어'-


남편과 최근에 가장 재밌게 본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이 영화일 것이다.

내게  '멋지다 훌륭하다,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 가까워서, 엄마니까, 남편이니까, 친구니까 하는 소리겠지.

그 진심을 믿어주지 않았다. 딱 내가 그랬다.

나는 늘 부족하고,

잘모르지만 그래도 남들의 평가는 너무 중요하니까,

가장 옆에 있는 사람의 칭찬이나

그들이 나를 아끼는 마음은 쳐주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감사히,

그리고 기쁘게 받았어야 했을 그 마음들을

늘 너무 쉽게 흘려버렸다.


아이가 떠나면 남편과 같이 살 수 있을까.

남편의 얼굴을 보면 아이가 생각나서,  

볼 때마다 슬픈 사람과 사는 건 너무 힘드니까,

우리의 결혼생활도 끝나지 않을까, 속으로 매일 두려웠다.


막상 아이가 떠나고나니 남편의 얼굴을 굳이 보지 않아도,

아이의 얼굴은 시도때도 없이 떠오르고,

웃고있을 때도 동시에 마음 한구석은 늘 슬프다.

결국 우리의 끝은 아이의 죽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겠구나.

내마음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가짜 어른인 나는,

이 슬픔을 제일 잘 알고,  

그래서 지금 이순간 누구보다 나를 걱정하고 있을 남편조차 외면하고,  짜증이란 흉기로 상처내면서 밀어내고 있다.


나눈다는 말을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감정은

슬픔일 것이다.

나의 슬픔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남편의 슬픔도 나눌 필요가 있으므로,  

이제 짜증을 멈추고,

내 감정을 받아들이고 더나은 방법으로 표현할 줄 아는,

진짜 어른으로 좀 자라나야겠다.

계속 이러다간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일생 중 마츠코처럼  

남은 평생 내내 정말 격렬하게 혼자일지도.


내일부터는 짜증부리지 않을게.

(노력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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