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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Sep 02. 2022

부치지 못하는 편지 3

22년 9월 2일

연우 안녕?

오늘도 하늘이 참 예쁘구나!

우리 연우가 저 위에서 즐겁게 놀고 있으려나. 

매일 이 시간이면 우리 집 창가에선 

건너편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어놀고 있는

언니 오빠들 소리가 들리곤 해.

우리 옛날 집에서도 들었잖아.

아침 열시에는 

저마다 엄마 손을 잡고 킥보드 위에서 

더 놀고 싶다고 어리광부리는 어린이집 등원하는 아이들소리, 

오후 세시부터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엄마나 할머니를 만나며 반가워하는 아이들 소리가 들리곤 했었지. 

그땐 그 소리들이 얼마나 야속했던지.

그들에게 당연한 것들이 

왜 우리에게만 허락되지 않을까. 

딱 너도 이맘때 나이면 어린이집에 갔을 텐데. 

마치 우리의 행복을 누가 뺏어버린 것처럼

서럽고 또 서러웠었지. 

처음 새집에 이사 왔을 때도 그랬어. 

아침 여덟 시만 되면 저마다 가방 하나씩 메고 

우르르 교문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모습이

너무 얄미웠었다. 

내 앞에 고요하게 누워있는 네 모습과 너무 비교돼서. 

너는 앞으로 평생 갖지 못할 시간을 

저 아이들만 누리는 거니까. 

너무 유치하지?

그렇지만 네가 남들처럼 지내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 없어.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너로도 충분했단다. 

근육이 강직되어서 감지 못하고, 깜빡이지도 못하는 네 눈은

정말 깊고 예뻤어. 

그 눈 속에 

엄마야, 엄마

라고 말하며 내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서 혼자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이 너무 우습다. 

보는 사람마다 어쩜 아기 코가 이렇게 높냐고

깜짝 놀라게 했던 오똑한 너의 코는 정말 예술이었지. 

근육이 힘을 잃어 늘 벌리고 있는 그 입은

앙증맞고 사랑스러워 손끝으로 한 번씩 네 입술을 

톡, 건드려보기도 했었어. 

너는 나에게 너무 완벽했어. 

남들 같지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 충분히 사랑스러웠단다. 

다만 남들이 너무 당연하게 누리는 그것들을 

네가 못한다는 것이 내 맘을 아프게 했을 뿐이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엄마는 요즘 아침마다 코코와 산책을 나가고 있어. 

사실은 그냥 이불속에 누워서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바깥에 나가서 햇빛을 느끼는 것도 

내겐 너무 사치 같거든.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옷을 주워 입고

아빠가 출근하는 시간에 따라나서곤 해. 

오늘은 주차장에서 나오는 아빠 차를 배웅하려고 

코코를 좀 보채서 부지런히 걸었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아빠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줬고, 

마침 창밖으로 팔을 걸치고 있던 아빠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줬어. 

내 옆에 있는 게 코코가 아니라 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 휑하고 사라지던 아빠 차를 보는데

엄마 마음속에도 쌩하니 바람이 불더라. 

정확히 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어. 

그냥,

엄마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또다시 들어서 

조금 서러웠던 것 같아. 

너도 떠나고 아빠도 다시 회사를 나가고.

너와 함께했던 이 집에 엄마 혼자 남았다는 게 

아직도 적응이 안돼. 

어쩌면 나도 지금 여기 모든 것들을 남겨두고

모퉁이를 돌아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날이 너무 좋으니 이렇게 어두운 엄마 맘이 

유난히 더 초라하게 느껴지더라. 


이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면 

또다시 네가 없는 집이란 사실도

내겐 너무 가혹해. 

딱 이렇게 날씨 좋을 때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너를 잠깐씩 혼자 두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나가야 할 때마다

정말 초조했었지. 

코코가 힘들어하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 산책을 나가지 않았을 거야. 

햇볕을 너무 좋아하는 코코가 안쓰러워

맥박으로 네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매일 집을 나서던 그날들을 

나는 아직 생생히 기억해. 

내가 없는 사이 네가 떠나버리면 나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그거 아니?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우면서도 

10분, 15분 남짓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그 시간이

솔직히 엄마는 아주 조금 좋았단다. 

이런 말을 네게 해도 될지 모르겠어. 

어떤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하염없이 밖에 머물고 싶기도, 

또 어떤 날은 그대로 모두를 떠나 멀리 가버리고 싶기도.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내 맘을 알아챌 때면 

뒤따라 밀려오는 죄책감에 더욱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

그리곤 어느 날처럼 침대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네 뺨을

더 정성스레 만져줬지. 

나만 이 어둡고 긴 터널을 걷고 있구나,  

지친 마음에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은 삶이었는데

언제나 나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도 너였단다. 

네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내 삶도 그리 나쁜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네가 없구나. 

네가 잘 있을까. 

인공호흡기가 빠진 건 아닐까. 

가래나 침이 올라와 다 흘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젠 더 이상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직도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면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초조해지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단다. 

네가 없는 삶이 어려워. 엄마에겐.

시간이 지나면 그림움도 옅어진다는데 정말일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아주 오랫동안 너를 깊게 그리워하고 싶어. 

오랫동안 너를 진하게 기억하고 싶어. 

세상에는 많은 죽음이 있고

자식을 잃은 사람도 많겠지. 

나만 이런 게 아닐 거야. 

오늘처럼 자꾸 눈물이 나는 날에는 이렇게 스스로 위로해본다. 

그래도 어쩐지 너를 잃고, 너를 그리워하고, 

너를 생각하며 아파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뿐인 것 같아서,

아무도 이런 마음 모르겠지 싶어서,

왜 우리만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억울해서 

너무 속상하네. 

엄마 아무래도 가을 타나 봐! 그치?

얼른 털어내도록 노력할게. 연우가 도와줘! 

언제나 그렇듯,

많이 사랑해 아가. 보고 싶다 우리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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