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마다 일상의 사살

침묵의 서스펜스 <썬다운>

by 오묘미

60세가 지나가던 때, 아버지는 홀연히 집을 나가셨다. 어머니의 손까지 뿌리치고 가셨다. 제주도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휴대폰 너머 어머니의 울음 참는 목소리를 통해 그 사실을 듣게 됐다. 별일 아닌 양 최대한 걱정을 배제하였어도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짐작할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은 아버지의 가출을. 중년 남성에게 찾아온 갱년기는 사춘기 열병보다 날카롭게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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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그라데이션이 중년 남성을 해변의 모래사장 밑으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우연히 본 <썬다운>의 포스터는 성큼 다가온 가을에 적절한 영화가 등장했다는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개봉일은 8월 31일. 그때까지 기다렸다가는 기분이 싹 가라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포털사이트에는 관객 수가 카운트되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썬다운>은 몇 개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식 개봉 전 <썬다운>을 보게 됐고 최근 들어 개봉한 영화 중 단연 명작을 봤다는 생각이 오래 지속됐다.


아버지는 충청도에서 혼자 사는 옛친구의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평소에 부지런하고 모범적이었던 아버지의 돌발행동을 남은 가족은 일탈이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단톡방에 재차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계속 아버지와 연락을 취했다. 아버지는 본인도 모르게 찾아온 증상을 혼자 극복해보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람을 쐐고 오시게 시간을 주자고 하셨다.

타들어 가는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제주도에 갇혀버렸으니. 창밖에 홀로 솟은 오름 뒤로 붉게 떨어지는 태양이 보였다. 가족이라는 정신적 신체를 절단하고 떠난 가장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그런 아버지의 낯선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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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팀 로스)은 시종일관 침묵한다. ‘왜 그랬냐’는 여동생의 물음에도, 모든 재산상속을 포기하겠냐는 변호사의 질문에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것을 끊어내려는 의지가 닐의 심장박동까지 제어한다. 끝내 닐은 원하던 대로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내고 낯선 땅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도착한다. 닐의 병은 피부 껍질과 함께 과거의 삶을 떼어낸다. 일상에 불쑥 찾아오는 총성과 죽음. 동시에 소리 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닐의 슬리퍼 소리가 표면에 남은 삶에 대한 욕망을 주기적으로 일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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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은 저물어가는 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떠오르는 해다. 탄생과 죽음은 들숨과 날숨처럼 둘이 아닌 하나로 봐야 하는 현상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한 달에도 수백 번. 반복되는 희망과 좌절 또한 둘이 아닌 하나이다. 파도는 가장 높은 곳에 힘있게 도달해 낮은 곳으로 떨어져 부서짐을 반복한다. 일몰 아래 파묻힌 중년의 남성은 죽음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도달해 보지 못한 정점에 다가설 수 있다는 황홀한 감정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도처마다 사살되는 타지의 일상이 그를 완벽히 잡아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틀 뒤, 여동생은 돌아온 아버지와 고모네 식구들 모두 모여 쭈꾸미를 먹었다고 말했다. 왜 하필 쭈꾸미였을까. 제주도에서 돌아가기 전날 밤, 여러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오직 편안히 잠을 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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