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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장 뤽 고다르와 <미치광이 피에로>

by 오묘미

도서 구매 사이트에서 저렴해서 구입했던 <미치광이 피에로>(Pierrot Le Fou, 1965) DVD는 20대 중반이었던 내게 신문물을 발견한 기분을 선사했다. 영화는 물렁물렁한 장난감을 손 위에서 다루듯 스토리, 캐릭터, 플롯을 유연하고 자유롭게 활용한다. 멜로, 서스펜스, 뮤지컬, 미스터리, 액션, 전쟁 등 수많은 장르가 적나라하게 섞인다. 또 정치적 이슈를 묘사한다. 모든 나열이 마지막 스퀀스로 모이고 끝에는 홀로 남은 캐릭터의 자살로 해체에 이른다. 1965년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만든 <미치광이 피에로>의 한 컷은 제71회 칸영화제 공식 포스터로도 만들어졌다.





장 뤽 고다르의 영향은 후대 감독의 수많은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거장 감독 반열에 오른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서 인물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 완벽히 같지는 않지만 장 뤽 고다르가 주로 사용했던 문법으로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픽션의 영상 매체에서는)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어두운 영화관 좌석에 몸을 푹 담가놓고 다른 인간의 삶을 훔쳐보는 허용된 관음의 현장에서 한순간 배우가 관객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을 한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인간에게 빠져들다가도 순간, 캐릭터가 배우라는 걸을 다시 깨닫고, 영화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픽션으로 판명된다. 배우 주변에 위치한 카메라가 구글맵에 찍히듯 훤히 드러난다. 누군가는 한창 노동에 집중할 시간에 돈을 지불하고 훔쳐보는 행위로 쾌락을 즐기려는 나의 욕망이 발각된다. 영화 속 캐릭터의 이런 도발은 장 뤽 고다르의 영화언어였지만, 유희에 가까웠던 영화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뒤집는 사건이었다. 영화는 인생과 철학이 담긴 이야기로 세계를 탐구하는 예술행위로 재발명된다.





장 뤽 고다르는 영화를 무기로 세상을 향해 격렬하게 질주했지만 아주 모호한 인생을 산 감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대우를 받고도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았던 혁명가였다. 함께 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영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때, 끝없이 탐구했던 인생을 장 뤽 고다르는 어떻게 정의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영화가 아닌 기사로 접한 엔딩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지지부진하던 삶과 죽음에 관한 선택의 권리에 총부리를 겨눈다. 극장에 불이 켜져도 해석할 여지가 있는 영화에는 여운이 있다.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은 숙명적이다. 세상은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Jean Luc Godard

1930.12.3~202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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