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밑에 숨겨진 비극이 보이기 시작할 때
<투 러버스>는 두 개의 사랑이 아닌 두 개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의 이치로는 두 개의 희망을 동시에 가질 수 없기에, 꼭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복불복 게임이다. 하나는 성공이고 하나는 실패. 무엇이 인생을 희극으로 인도하고, 비극으로 치닫게 만들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 따르는 숙명이다.
(맞춤음악: Madredeus - O Espírito da Paz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jqkB4mJvb0E )
레너드(호아킨 피닉스)는 약혼녀와 이별한 뒤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다. 물에 빠진 레너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사춘기 소년을 대하듯 하는 부모님의 걱정이 부담이다. 그러던 중, 비슷한 시기에 우연히 두 명의 여자 산드라(비네사 쇼)와 미셸(기네스 팰트로)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레너드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는 산드라보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미셸에게 더욱 매혹된다. 미셸은 레너드를 단지 친구로만 생각하지만, 레너드는 미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아주 진한 늦가을을 관통할수록 레너드의 사랑과 선택의 고민은 더욱 고통스럽고 처절해진다. 레너드는 상처투성이로 싸늘하게 죽은 자신의 상태를 까맣게 잊고 다시 새까맣게 불타오른다. 결국 두 개의 상황을 끊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던 레너드는 가족과 사업을 포기하고 미셸이라는 미지수의 희망을 선택한다. 결국, 예상했던 비극적인 상황으로 흘러가고 레너드는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다른 영화였다면 이 정도로 인간이 추락하면 그만 놔줄 법도 하지만 감독은 추락한 레너드를 다시 끌어올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는다.
2008년 영화 <투 러버스>는 얼핏 보면 작은 규모로 제작된 느낌이 들지만 호아킨 피닉스, 기네스 팰트로, 비네사 쇼 등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멜로 드라마다. 영화 전체에는 늦가을과 겨울의 우울하고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 레너드는 가을의 모든 숙명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인간이다. 레너드 역의 호아킨 피닉스는 한 남자가 두 명의 여자를 두고 벌이는 위험한 불장난을 거부감 없이 연기해낸다. 쓰레기 같은 남자 레너드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로 순수해 보이는 착각을 일으킨다. 아들 레너드를 끊임없이 걱정하고 감시하는 어머니 역의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미셸과 함께 야반도주를 시도하려는 아들과 나누는 몇 마디 되지 않는 짧은 대사에서 그동안 아들의 상처를 지켜봤던 어머니의 마음을 건조하지만 입체적으로 표현해낸다. 마치 시멘트로 굳어진 레너드의 가슴을 바늘 끝으로 긁어내는 듯하다. 시멘트를 긁어낸 부위에서 먼지처럼 작은 알갱이들이 떨어진다. 두 사랑보다 단 하나의 뾰족한 사랑이 더욱 깊이 박힌다.
행복을 위한 선택은 위험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하지만 왜 인간은 비극의 구렁텅이로 손을 넣어 자신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일까. 아주 비극적인 사람도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수많은 희망과 위로의 손길로 둘러싸여 있는데. 비극을 벗어나는 것은 아주 작은 용기가 필요할 뿐인데. 욕망을 거부하면서도, 욕망에 끌려다니는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인간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단지 자기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표현하려고 위험을 무릎서는 것. 모두가 결국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희망과 희망뿐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신작 <애드 아스트라>가 9월 19일에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