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헤어질 결심>과 영화관의 미래
영화 한 편을 짧은 시간에 걸쳐 두 번 보는 경우는 드물다. 두 번째가 되면 첫 만남보다는 설렘과 흥미가 떨어진다. 그러나 똑같은 영화를 두 번 보게 되었을 때 처음 봤던 것과는 다른 요소들이 보인다. 조금의 용기와 시간을 투자한다면 영화의 진정한 묘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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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박찬욱 감독의 팬으로서 <헤어질 결심>의 개봉이 무척 반가웠다. 반가움의 이유는 단지 감독의 출현뿐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감상이라는 명사를 붙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몇 안 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개봉 첫날밤 영화관에서 <헤어질 결심>을 감상했다. 감독이 평소에 즐겨 사용했던 스릴러 장르를 기반으로 했기에 멜로 장르를 딱히 즐기지 않아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박찬욱답지 않다’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복잡한 경찰 수사의 흐름을 힘겹게 따라가다 놓치고를 반복하고 결말에 도착하니 단순히 사랑으로 모든 의문에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관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헤어질 결심>이 준 아쉬웠던 첫인상과 달리 여운이 몰려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영화 속에 흘렀던 말러 교향곡을 검색해 들었다.
“한 번 더 보고 싶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던 친구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다만 그러지 못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두 번 보기란 쉽지 않은 세상이 됐다. 영화를 감상하러 떠나는 길은 내 몸에 걸칠 반영구적인 옷을 구입하거나 맛있는 음식으로 식욕을 채울 수 있는 거리와 다르다. 영화를 오락거리나 데이트 코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영화 외에도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유흥문화가 넓고 쉽게 퍼져있다. 그 와중에 영화표 값은 너무 비싸다. 손바닥 위 핸드폰을 외면하고 상가 꼭대기 층까지 찾아가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영화관 방문에 ‘굳이’라는 부사가 따른다. ‘굳이 왜 그 먼 영화관까지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영화를 봐야 하지?’라는 완벽한 문장이 만들어진다. 말꼬리에 ‘영화에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라는 뜻이 붙는다.
지난번 <헤어질 결심> 감상평을 나눴던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적은 선택지 속에 차라리 그 영화를 볼 바엔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겸사겸사 연희동에 (무려) 새로 생긴 영화관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지하 1층에 있는 작은 영화관이었다. 좌석은 적었지만 넓고 깨끗했다. 또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환경을 갖춘 상영관이었다. 핫한 동네에 카페나 음식점이 아닌 영화관을 만들었다는 건 도대체 얼마나 큰 용기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방문해보니 한편으로는 이것도 괜찮게 접근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질 결심>을 두 번째 보니 수많은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고, 수많은 디테일을 첫 번 째 관람했을 때처럼 놓쳤다. 첫 관람에서는 해준의 시점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서래의 시점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모호했던 대사들이 귀에서 종종 읽혔다. 이야기 흐름과는 관계없을 법한 제작진이 쳐 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영화의 묘미는 이런 데에 있지 않을까. 감독이 이면에 숨겨둔 퀴즈를 풀어가는 재미 말이다. 보고 또 보고 싶은 여지가 존재하는 영화 말이다.
극장을 나오니 어두웠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 신축 건물은 젊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2층에 인기 있는 카페가 있었던 점도 원인이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영화가 뱉어낸 것들을 토할 정도로 가득 머금고 영화관 출구를 나와 북적이는 인파 속에 참전하는 것은 영화보기의 희열 중 하나다.
새로 생긴 영화관에 비하면 대부분의 영화관은 낡았고 좌석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난다. 스크린과 음향 시설은 언제 점검을 하긴 했을까 집에서 TV로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로비 구석에서 혼자 떠드는 오락기 소리까지 들리면 세기말적이다. 코로나가 출몰한 이후로 다시 일상을 되찾기까지 2년이 넘는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세상과 사람은 꽤나 많이 변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 영화관과 그 생태계는 구시대적인 상황을 유지 중임을 부인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갖고 싶었던 <헤어질 결심> 포스터는 두 번째 관람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개봉 초반에 일부 상영관에서 배포했다고 말한다.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니 재관람 횟수에 따라 한정수량으로 사인 포스터를 나눠줬던 것 같다. (마케팅 팀은 <헤어질 결심>이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포스터를 비싸게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어떤 음악 관계자분은 ‘이제 영화도 마니아의 전유물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흘렸다. 영화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일까?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작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도시 곳곳에 퍼진 시설 좋은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