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 두 개의 경험.

리얼리티와 속임수는 구분할 수 없는 것

by 오묘미

우디 앨런은 1년에 한 편 혹은 두 편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감독의 영화들은 좋거나, 너무 좋으며 그렇지 않으면 미치도록 좋다. 이런 감독이 있다는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감독의 팬이라면 너무 고마워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우디 앨런과 같은 감독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 좋은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그는 취향을 떠나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영화 대부분이 청소년관람불가다. 아니 그의 삶 조차도 청소년관람불가다.


대부분의 영화는 허구를 놓고 끊임없이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속임수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사실과 우연들의 연속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것이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정말 이상한 현상이고 가장 영화적이다. 사실 그것은 내 본연의 모습이다. 그것을 하고 있는 나는 저것이 내 허물이라고 생각하면 불쾌하면서도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내며 거부한다.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영화와 관객이 형성되는 가장 영화적인 순간들이 넘친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지금을 살아가지만 어쩌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성찰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기차처럼 연결되어 미래가 지나간 흔적에 현재가 도착하고 현재가 지나간 자리에 과거가 스쳐 가는 것이 아닐까. 두 개로 나눈 구성은 시간이 영화로 어떻게 시각화되고 변형할 수 있을지를 알아내기 위해, 알게 하려고 밖으로 내몬 다음 관찰하게 하는 것 같다.


1부를 보는 동안 그것은 현재이고, 2부를 보게 되면 2부가 현재이지만, 1부와 똑같은 2부가 흐르면 흐를수록 1부는 2부의 과거이자 이미 설정된 미래가 된다. 미래는 이미 틀을 정해 놓았지만, 사람의 다른 행동과 감정과 우연들은 모든 것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옥희의 영화>에서 진구가 벤치에 놓인 서울우유를 보고 이게 왜 지금 거기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듯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는 한 가지가 열 가지를 바꾸고 이야기가 새로운 결말로 가게 되는 신기한 현상을 보게 된다. 1부에서 사랑에 실패한 함춘수가 지금의 변화로 2부에서 윤희정의 마음을 얻게 되니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한겨울에 술을 마시게 되면 여지없이 몹시 추운 길거리를 헤매게 된다. 내부에 켜진 난로 때문에 후덥지근해서 점퍼를 벗었는데 취해서 밖으로 나와 만나는 새벽바람은 몸을 얼려버린다. 이 계절에서 춘수와 희정이 살아가고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마치 내가 그랬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만남의 환희, 관계의 실패와 실수의 반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움츠러드는 신체의 초라함 혹은 혹독한 자연 속에 생존해 있다는 존재감. 나의 그때는 맞는 것이었을까? 그때가 지금 나의 어떤 부분을 만들어줬고 개선시켜줬을까? 안 보이는 곳에서 진화는 했을까? 그때가 있음에도 지금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봄이 오면 또 새로운 줄 알고 시작할 테고 결국 또 그때처럼 반복할 텐데.

*가을이 가기 전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그의 삶을 나란히 두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인생의 연관성에 대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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