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인가 현자인가
입사 첫날이었다. 20대에서 40대까지 여러 명의 입사자 앞에서 회사의 부장들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작은 회의장에서 격식 없이 둘러앉은 자리였다. 부장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덕담을 건넸다. 회사의 긍정적인 장래를 어필했다. 회사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방법을 설명하는 부장도 있었다. 긴장 속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입사자들이 일할 근무지에 파견된 실제 담당 부장의 말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담당자는 미소를 띠고 근무지의 참혹한 환경을 묘사했고, 회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다른 부장들은 다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썼다.
그 담당 부장의 말처럼 근무지는 처참했다. 현장에서 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현실을 정확히 짚어줬고, 큰 꿈을 품고 왔다면 지금 그만두라고 했던 말처럼 집에 돌아와 빠른 퇴사가 답인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 처참한 근무지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되어갔고, 인간은 그곳에서 적응했다. 근무 1년이 넘어가는 시기, 그 담당 부장의 소식을 듣게 됐다. 담당 부장은 그 근무지를 꽉 잡고 있었다. 근무지의 관계자들은 회사보다 그를 더 믿고 있었는데 최근 퇴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부장은 자신의 회사를 차려 근무지 입찰에 참여해 회사와 경쟁자가 됐다는 것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이 매일 짓던 표정처럼 말이다.
회사와 직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서로가 원하는 것과 해줄 수 있는 것이 항상 부족하고 다르다. 그러나 1년이 지나 돌아보며, 담당 부장의 결정과 목적지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입사 첫날 담당 부장의 악담을 듣고 속으로 비난했으나 모든 사람의 말은 진지하게 들어봐야 했다. 그리고 침묵하는 수행자가 아닌 이상 사람이 입 밖으로 내는 소리는 메아리 같으나 자신을 향한 본심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계약서에 퇴사 후 몇 년 동안 같은 직종으로 이직 금지 조항을 적어넣을 수밖에 없는 회사의 입장이 이해가 가면서도, 배신자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담당 부장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아직 남아있는 자로서 눈이 번쩍 뜨이니 머리가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