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해서는 안 되겠지
나는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직책 높은 분들을 구경(?)할 수 있는 근무지에서 일한다. 구경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그분들과 직접적인 대화도 나누지 않고,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단지 멀찍이서 바라만 보기 때문이다. 그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셨길래 저렇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른한 오후, 또 다른 분야의 직책 높은 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남들보다 더 촘촘히 채우며 살아왔기에 저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운이 따라줬겠지.'
마흔 가까이 달려와보니 메모장에 적어둔 인물이 되기에는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느낀다. 어중간한 노력으로는 소망하는 인생을 살기 어렵다. 또한 소량의 운 정도로는 인생이 눈꼽만큼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이 역류해 알 수 없는 곳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인생이란 네비에 '죽음'을 찍어 놓은 바다 위 돛단배 정도이지 않을까. 정처 없는 여정에서 남들은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둘 때, 저들은 목표를 향해 쉼없이 노를 저었던 것이리라. 내 인생 구멍 뻥뻥 뚫린 낭비된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래가지고 나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중학생 때 기억이 난다. 청소 시간에 빗자루질을 성실히 하던 나를 담임선생님이 따로 부르시더니 자신의 중지에 박힌 커다란 굳은살을 보여주며, 이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손글씨보다는 자판기를 더 오래 두드리고 있지만, 손가락 끝에 굳은살 박히려면 아직 먼 거 같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