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오징어 땅콩

[연작 소설] <기억의 계절> - 봄 이야기

by 오묘미

지수는 며칠째 같은 시간에 도착하는 열차를 탔지만, 그때 그 순간에 맡았던 향수 냄새의 주인은 다시 보지 못했다. 무슨 희망이 남았길래 이런 짓까지 벌이고 있는 것일까. 실패한 집착의 연속은 자신의 모든 패턴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 껍데기같이 덧없는 행동은 3년 동안 반복했던 출퇴근 길과 겹쳐 곧 이 길조차도 허무하게 만들기 직전이었다. 지수는 다른 루트를 찾던지, 아예 그와 관련된 생각과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지수는 오늘 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그 향수 냄새가 품은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내리라 다짐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회사에서 퇴근해 지하철을 탄 지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있었다. 정시 퇴근하려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업무를 처리하느라 긴장했던 몸이 풀리니 허기져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약속 장소인 대학가 근처 역에 도착했다. 지수는 한껏 꾸민 20대 초반의 남녀 사이에서 걸음 맞춰 계단을 올랐다. 출구를 나오자 주변에 서서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수를 쳐다봤다. 하나 같이 기대에 찬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가 기다렸던 사람이 아닌 것을 확인하자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핸드폰을 봤다. 지수는 출구 쪽에서 조금 떨어진 상가 안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약속 시간인 6시 30분이 다 되어갔지만, 지수 말고는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지수는 일등으로 도착한 자신의 시간관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것이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철저하게 살아가는 직장인의 힘이다. 지수는 누가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 도착할지 상상해 봤다.


첫 번째로 도착할 사람으로 은혜를 꼽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은혜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지만, 학생 때부터 직장인 지수만큼 시간 약속에 철저했으며, 모든 일에 정석으로 임했다. 조금 고리타분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은혜의 장점이었다. 정이 많고, 그만큼 표현도 잘했다. 친구의 생일을 잊지 않고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해주곤 했다. 책도 많이 읽어 지식이 풍부했다.


민지가 두 번째로 도착할 것이다. 다만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는 늦을 거 같았다. 민지는 차분한 성격치고는 순간의 선택에서 줄타기를 즐겼다. 아름이가 조금만 유혹하면 야간 자율 학습 시간 중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함께 도망쳤다. 담임 선생님한테 들켜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친구였다. 오지랖이 넓은 편이어서 길거리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말을 걸었다. 마음씨도 따뜻해 봉사 활동 시수를 다 채웠는데도 무릎이 편찮으신 동네 할머니 집에 연탄을 배달해 드렸다.


역시 꼴등은 아름이라고 확신했다. 민지가 줄타기의 명수라면 아름이는 스카이다이버였다. 아름이는 줄 없이도 번지점프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담력을 지녔다. 어딜 가나 당당했고 대담했다. 내향적인 지수와 은혜가 햄버거집에서 주문도 못 하고 주저하고 있으면 아름이가 어깨를 밀치고는 '야! 뭘 그렇게 우물쭈물하냐!' 하면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게 주문하곤 했다. 오늘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가장 궁금한 사람은 아름이었다. 바이크 동호회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오토바이라도 타고 오는 건 않을까?


때마침 단체 채팅방에 아름의 메시지가 떴다. 지수는 속으로 '양반은 못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아름은 아이 하원을 남편이 담당하려고 했는데 남편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계획이 틀어졌다고 했다. 먼저 음식점에 들어가 있으면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지수가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답장하려는 찰나 도착해 있다는 은혜의 메시지가 떴다. 깜짝 놀란 지수가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 다른 곳으로 착각해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때 인파 건너편에서 지수처럼 고개를 쭉 빼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성이 보였다. 지수는 그 여성과 눈이 마주쳤고, 여성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지수에게로 다가왔다. 은혜로 보이는 그 여성은 지수가 3년 전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곱슬로 부스스한 머리에 한눈에도 살이 많이 쪄 보였으며, 옷 입은 스타일에서 부자연스러운 선택들이 보였다.


은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변을 의식하며, 인파를 가로질렀다. 은혜는 이상하리만치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지수에게 다가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지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낯설었기 때문이었을까. 혹시 이 사람은 지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지수는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의 얼굴에서 익숙한 면을 찾아내려고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어느 정도 인식이 끝나자 지수의 입에서 인사에 대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언제 와 있었어?"

"나 아까. 좀 됐어."

"뭐야. 왔으면 전화하지. 나도 아까부터 와 있었는데."

"그랬니? 나는 몰랐지."


지수는 오늘 만남이 이렇게 당황스럽게 시작될 줄은 몰랐다.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해 온 친구들이기에 화기애애하게 시작될 줄로만 알았다. 지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주변을 의식하는 은혜와 마찬가지로 지수도 주변으로부터 공포감을 느꼈다. 어릴 때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지금 이 순간은 마치 다른 세상과 근접한 것만 같았다.


은혜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동시에 출구로 나온 민지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주변을 둘러봤다. 은혜가 출구로 나온 민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민지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민지는 계단을 올라와 가쁜 숨을 내쉬며 환하게 웃으며 지수의 손을 잡고는 힘차게 흔들었다. 은혜는 옆에서 기지개를 켜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언제 도착한 거야." 민지가 말했다.

"딱 10분 늦었네." 지수가 말했다.

"아, 정말? 아름이는? 아름이는 안 왔어?" 민지가 주위를 둘러보고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으래. 아이 하원 시켜야 한다고." 은혜가 말했다.


먼저 모인 셋은 민지가 미리 찾아놓은 닭곰탕집으로 향했다. 민지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술을 찾았다. 아름이 고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몰래 캔맥주를 홀짝일 때도 민지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는데 이제는 네 사람 중 가장 말술이 됐다. 민지는 남편이 술을 좋아해서 늘었다고는 하지만, 성인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술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건 이미 모두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어느 날 모임 때는 대학 MT에 가서 술이 너무 약해 억울했다며, 주량을 늘리기 위해 매일 술을 조금씩이라도 마셨다고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맑은 국물의 닭곰탕을 한 숟가락씩 떠먹고는 일제히 감탄했다. 민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해장하는 것 같다며 시원하게 소주를 땄다.


지수도 참을 수 없어 민지를 따라 소주를 마셨다. 은혜는 약을 먹고 있다는 이유로 맥주 한 잔을 조금씩 나눠 마셨다. 지수가 은혜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은혜는 딱히 아픈 곳은 없다며, 요즘 신경이 예민해져서 처방받았다고 말했다. 옆에 앉은 민지는 그 신경 예민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알딸딸해진 민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름에게 전화를 걸어 화제를 전환했다. 아름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택시를 타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민지는 2차에 가 있겠다며 그쪽으로 오라고 말한 뒤 단체 채팅방에 음식점 링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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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는 독립된 작은 평수의 공간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만들어진 술집으로 갔다. 민지, 지수, 은혜가 키오스크로 안주와 술을 고르고 있을 때 아름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술 취한 민지와 지수는 환호성을 질렀고, 은혜는 오늘 봤던 모습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지수의 예상대로 아름은 바이크 재킷을 입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술술술 노래를 불렀다. 아름은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끝없이 털어냈다. 셋은 아름의 한탄, 토로, 괴로움, 희망, 행복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쳤다. 지수가 아름의 잔에 술을 따라줬다. 만취한 민지는 혼자 아무도 모르는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마주 앉은 지수와 아름이 서로 어떻게 지냈냐고 묻고 답했다. 그리고 아름이 은혜를 보고는 참았던 물음을 꺼냈다.


"강은혜! 너 뭔 일 있냐?"


아름의 말투는 옛날부터 거침없었지만,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녹아 있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처를 받거나 곧이곧대로 듣고 공격당해 기분 나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아름의 말투가 현재의 은혜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은혜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냥, 힘겹게 살고 있지."

"뭐가 그렇게 힘든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하지 않았어?"

"응. 맞아. 그래서 힘든 거야. 에이! 처음부터 어디 직장이나 들어가서 죽치고 있을 걸 그랬어."


은혜는 지어낸 기지개를 켰다. 현재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아름은 직장이라는 단어를 듣곤 바로 대꾸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대신 지수가 말을 이었다.


"직장 생활이라고 다 좋은 줄 아냐! 매일 아침 지각하지 않으려고 맞춰둔 알람 듣고 깨야 하지. 지옥철 타고 좀비처럼 출근해야 하지. 나한테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일만 하루 종일 해봤자 세금 떼고 고작 쥐꼬리만큼 월급 들어오지. 대출 이자에 전기세에 관리비까지 싹 다 빠지고 나면 남는 거 하나 없어. 진짜 돈만 아니었으면 어디 시골에 가서 마음 편히 사는 건데."


지수는 그동안 쌓아놓은 말들을 시원하게 풀어내며 '그래. 이게 찐친들의 대화지.'라고 생각했다. 지수가 생각했던 이 친구들과의 만남의 분위기는 이런 것이었다. 할 말 안 할 말 다 할 수 있는 사이 말이다. 지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은혜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진짜 그 생활도 사람 할 짓이 못 되겠다. 우린 가축이야. 가축! 세상에 길들여진 가축! 우리 안에서 풀만 뜯어먹으면서 죽음만 기다리는 가축!"


2절을 부르던 민지가 노래를 취소했다.


"야! 그만해! 오랜만에 모여서 그런 심각한 얘기는 왜 하냐! 은혜 너도 자꾸 그럴래? 우리 벌써 10년이 넘었어. 가축이니 죽음이니 그런 소리 좀 그만하고 이제 좀 솔직해지자!"


민지는 지수와 아름을 바라봤다. 더 이상 비밀을 숨길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은혜 종종 봤어. 몇 달 전에도 봤나? 그랬지? 은혜 조금 아파. 우울증이래. 우울해서 우울증이 아니라. 정말 의사 쌤 약 처방받아서 치료받아야 하는 병이야. 솔직히 나도 걸려보진 않아서 잘 몰라. 하지만... 난 그거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 안 그래. 강은혜? 약 꼬박꼬박 먹고 있지? 근데 너 정말 이렇게 술 마셔도 되는 거야?"


한참을 듣던 은혜가 말했다.


"응. 조금은... 괜찮을 거야. 안 먹을 수 있겠냐? 너희들 오랜만에 보는데."


이번엔 기지개를 켜지 않았다. 심각하게 듣던 아름이 말했다.


"강은혜! 그런 일 있으면 말을 좀 해! 말을 하고 살자 우리!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말하고 살자고."

"알겠어. 말하고 살게. 그래, 말하고 살자 우리. 약 먹으면 나을 거야. 살도 차차 뺄 거고. 뭐 해 술 마시자 술!"


은혜가 맥주잔에 물을 들이붓고 건배를 권했다. 넷은 자기 잔을 들고 건배를 외쳤다. 민지가 다음 곡을 시작했다. 옛날 아름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노래방에서 어깨동무하고 불렀던 노래였다. 넷은 다 같이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5층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넷의 모습은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과거와 똑같았다. 장소는 지하 허름한 노래방에서 지상 5층에 위치한 술집으로. 과거엔 캔맥주를 몰래 마셨다면, 지금은 당당히 술을 즐길 수 있는 성인이 됐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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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은 3차 장소를 찾아 무작정 걸었다. 은혜 빼고 모두 만취 상태였다. 정신이 온전한 은혜는 자꾸만 길을 벗어나려는 셋을 잡고 끌어당기며 챙겼다. 멀리서 보면 다른 종의 세 마리의 개를 힘겹게 산책시키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였다. 알코올로 발갛게 달아올라 얼굴이 마비된 지수는 비틀비틀 걸으며 습한 공기 속에서 풍기는 풀잎의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옛날 느낌의 호프에 즉흥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잔잔한 분위기에 모두들 노곤해졌다. 지수는 이때다 싶어 고등학생 때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지 않았냐고 가볍게 운을 뗐다. 아름이 여러 명 있었다고 말하자, 민지가 세 사람 정도의 생김새를 떠올렸고 은혜가 그중 두 사람의 이름을 성까지 정확히 기억해 냈다. 하지만 지수의 기억 속에 그 두 사람의 생김새와 이름이 매치되는 인물은 딱히 없었다. 직원이 구운 오징어와 땅콩을 가져왔다. 민지가 오징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려고 하자, 아름이 오징어를 뺏어가더니 한 손에는 오징어, 한 손에는 땅콩을 들고 말했다.


"이게 뭔 줄 아니?"

"오징어지. 너 취했냐?" 민지가 오징어를 휙 뺏어가며 말했다.

"그래, 오징어야. 이건 땅콩이지." 아름은 한 손에 든 땅콩을 자신의 입에 휙 던져 넣고 씹었다. 이어서 말했다. "너희들... 오땅 기억하니?"

"오땅?" 지수가 물었다.

"그래. 오땅. 우린 그때 그렇게 불렀잖아. 기억 안 나는구나? 오땅. 아니, 봤을 텐데 지수 너도."

"모를 수가 없지." 은혜가 미소 지으며 또 의식적인 기지개를 켰다가 셋이 쳐다보자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서는 세 단계로 나눠 팔을 내렸다.


지수가 답답해서 재차 묻자, 아름은 찢어 놓은 오징어를 하나 들어 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졸졸 따라다녔던 애야. 오땅!"

"무슨 소리야! 네가 따라다녔잖아!"

"엥? 제가요? 노노! 너지 너!"


아름과 민지가 오징어를 하나씩 들고 칼싸움을 했다. 그러다가 아름이 민지의 품에 안기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뭐야. 얘는 무슨 말하다 말고 자. 야 성아름. 일어나! 말은 끝까지 해야지!"


민지가 아름을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지수와 은혜가 아름을 가만히 바라봤다. 민지는 자신의 품에 아이처럼 안긴 아름을 내려다봤다. 호프 안에서 7080풍 노래가 잔잔히 흘렀다.


아름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름이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뜨더니 전화를 받았다. "응. 자기야. 애는 자?" 걱정이 됐던지 남편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 박력 있던 아름이 술 취해 꼬부라진 혀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셋은 가만히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름의 남편은 아이는 어머니가 보고 있으니 태우러 온다고 했다.


넷은 이야기를 끝맺지 못한 채 호프를 나왔다. 넷은 서로 껴안으며 다음에 꼭 다시 보자고 인사했다. 아름은 본인 때문에 헤어지는 거 같았던지 눈물을 글썽였다. 아름과 민지는 반대편 상가 쪽으로 향했다. 지수는 시외버스를 탄다는 아름과 함께 택시를 탔다.


열린 창문으로 포근한 봄바람이 들어왔다. 지수는 옆에서 핸드폰으로 막차 시간을 확인하는 은혜를 바라봤다. 은혜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지수처럼 은혜도 이 순간이 더없이 즐겁고 행복했으리라. 그러면서도 지수는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알아내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너 정말 그 두 사람 기억나?" 지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응?" 은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까 전에 네가 말했던 두 사람. 정말 기억나? 그 오땅은 누구야?"


지수의 물음에 마주 보던 은혜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굳었다. 은혜는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수는 전기가 통한 듯 온몸이 찌릿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못 할 말을 한 건 아닌데... 지수는 자신이 한 말에 크게 후회했다. 이렇게 집요할 필요는 없었다.


은혜는 새로고침 하며 막차 시간을 확인하더니 핸드폰을 든 손을 허벅지에 내려놓고 앞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수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은혜를 바라봤다. 은혜의 눈동자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이 비췄다.


"응. 알지. 난 정확히 기억해... 너 정말로 알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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