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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낙영 May 09. 2020

아직은 회사가 좋습니다

네 번째 퇴사와 다섯 번째 첫 출근을 앞두고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네 번째 퇴사다. 퇴사의 이유는 언제나 복합적이고 다양했다. 발전이 없어서, 일이 없어서, 차별이 심해서, 인정을 못 받아서, 업무 방향성이 달라서… 업무에서 시작한 고민의 종착점은 늘 그렇듯 회사를 나가는 방향으로 굳혀졌다.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해결하거나 정리해버려야 하는 성질머리라 퇴사 결심이 선 순간이면 언제나처럼 퇴사와 관련한 검색어를 이 잡듯 뒤적거렸다.


  ‘진짜 이런 회사도 있다고?’


  생생한 퇴사 후기를 읽으며 든 생각은 회사에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나가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활력이 넘치는 활자 사이에 잠시 멈춰서 나의 회사생활을 돌이켜본다. 비교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만 남아야 할 이유가 단 한 가지라도 있다면 조금 더 고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렇지만 화면을 넘길 무렵에는 항상 언제 얘기할지 ‘결전의 날’을 계산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전의 날을 정하면 팀장님께 두 차례 정도 면담을 요청했다. 첫 번째 면담에서는 업무 고민을 얘기하며 퇴사를 암시하는 단어를 곳곳에 뿌려두고, 두 번째 면담에서 확실한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때 팀장님들의 반응은 보통 “시작도 안 해보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 혹은 “잘하고 있는데 다시 생각해봐라.”였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아 여러 차례 면담을 진행한 곳도 있었고, 대화하다가 결심이 확고해져서 단칼에 끊어낸 곳도 있었다.


  나 역시 사람을 뽑고, 일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기에 퇴사가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역할이 미비했을지라도 함께 했던 사람이 나가면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크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업무에 다시금 집중되지만, 퇴사를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잔물결이 큰 파도로 변하는 울렁임을 느끼게 된다. 이는 내가 느꼈던 감정이자 나의 퇴사 소식을 들은 동료가 전해준 감정이기도 하다.


  ‘강한 자가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나약한 사람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맞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면서까지 강한 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사 날짜가 정해지면 떠날 사람에 대한 평가가 냉정해짐을 몸소 느낄 수 있다. 특히 면담을 진행한 팀장님들에게 내 장단점을 들을 기회가 생기는데,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 되도록 좋은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이제는 경력도 쌓았으니 다음 회사는 ‘더 좋은 회사’로 갈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많은 고민이 담긴 이 과정이 ‘고루한 퇴사 이야기’쯤으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진짜 난관은 ‘이직’에 있었다. 아주 모순적이게도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목적이 분명한 퇴사 이유와 달리, 이직하고 싶은 회사를 고르는 이유는 점점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더 좋은 회사’라는 게 있을까? 차라리 신입 때는 ‘전공을 살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패기라도 있었지만, 경력이 쌓이자 오히려 왜 일하고 싶은지 이유가 애매모호해졌다. 애초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군도 아니기에 이직했다고 한들 정착하지 못하고 근속 기간은 점점 짧아만 졌다. 벌써 퇴사만 네 번째이지 않은가.


  이쯤 되면 검색 키워드는 ‘이직 성공’, ‘이직 후기’처럼 안정적으로 이직한 사람들의 후기로 이어진다. 경력 채용 시 회사에서는 기대감이 상당하고, 경력직은 부담감이 상당하다. 앞으로 해당 업무에서 얼마나 활약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은 애교, 인수인계도 없이 실무에 투입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일까.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글도 볼 수 있었는데, 대개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엄청난 도전정신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물론 나는 아직 도달할 수 없는 단계임을 잘 알고 있다.


  회사를 네 번이나 그만두면서 일하고 싶은 이유도 사라지고, 자존감도 낮아지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그런데도 아직은 다른 길보다 회사가 좋다. 회사에서 만난 동료와 수다 떠는 것도, 내가 보거나 알지 못한 것을 경험하면서 시야를 넓혀가는 일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돈을 벌면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것도, 낯선 공간에 내 자리가 생기는 생경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좋다. 퇴사가 시작이라면, 이직은 도전이다. 나는 오늘 다섯 번째 회사에 첫 출근을 한다. 다섯 번째 도전이기도 하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새벽. 에픽하이 타블로 님의 강연 내용을 마음에 새겨본다.



 “내일을 기대하게 해주는 거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쓸데없다고 느껴져도 절대 시간 낭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내일을 기대하는 일로 채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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