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하기
대표 : Chilly Sky 님, 회사 생활은 좀 어떠신가요? 사수가 잘 대해주나요?
Chilly Sky : 네! 아주 잘해주시고 아직 잘 모르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ㅎㅎ
대표 : 네 다행이네요 ㅎㅎ. 그러면 Chilly Sky 님, 그러면 사전에 공지했던 대로 장기자랑은 준비해 오셨지요?
Chilly Sky : 네..?
대표 : 아 혹시 준비 안 하셨을까요? 안 하셨으면 다음번에...
Chilly Sky : 카더가든의 명동콜링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 : 오 진짜요?! 허허허 넵 알겠습니다!!ㅎㅎ
일단 장기자랑이라는 단어를 지난 삶에서 들어봤던 횟수가 매우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열심히 일하러 왔는데 장기자랑이라니..!! 그래도 패기 어렸던 지난날의 나는 우물쭈물 넘어가기보단 화끈하게 질러버렸다.
모든 것이 처음인 대학교 4학년 기계공학과 학생은 그 당시에 너무나도 순진했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로 장기자랑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당시에는 모두가 다 한곡씩 뽑은 줄 알았지.. 어쩐지 다들 너무 좋아했었다). 덕분에 입사 첫 주부터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스타트업 구성원들에게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얼렁뚱땅 첫 단추가 맺어지고 본격적으로 기구설계 직무로써 업무를 시작해서 가장 처음 했던 일은 제품 생산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무래도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기도 하고 대학생 인턴을 바로 설계에 투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제품 생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은 참 많았다.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가공물의 오차율을 직접 손으로 느낄 수 있었고, 하나의 제품에 사용되는 다양한 공정기법들을 손수 느껴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후에 제품을 설계할 때 제품의 제작공정을 신경 써서 설계할 수 있는 눈을 길러주었으며 제작공정에 대한 감각 또한 기를 수 있었다. 나에게 처음 주어진 업무로써 정말 적합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생산 업무가 일시적으로 적응 및 훈련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빠르게 조립하고 다른 업무도 받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립하고 있는 나의 옆자리에 사수가 앉아 조립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