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민 - 1

체계의 부재

by Chilly Sky

'과연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1년의 정신없는 회사생활의 쉼표로 들었던 생각이다. 물론 아직 1년밖에 안된 새내기였지만 스타트업에서 느낀 것들, 특히 개선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들은 짧게는 지난 1년을, 길게는 지난 25년간의 수련과정을 돌아보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것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체계의 부재


스타트업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인 체계가 현저히 부족했다. 먼저 의사결정 체계에 관해 말하자면, 그 당시에 회사의 C라인은 CEO 1명과 CTO 2명, 그리고 COO 1명으로 총 4명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스타트업이었다. 그중 CEO와 CTO들은 카이스트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했던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그 당시의 회사를 세웠던 창립멤버였으며 공통적으로 연구실 활동을 제외한 사회경험이 거의 없던 것이 특징적이었다. 따라서 업무방식이 지극히 대학연구실의 것과 유사하게 진행되어서 그런지 부서 간의 경계선이 무의미하게 업무가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CEO가 뜬금없이 내 자리 뒤편에서 나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설계에 대한 지적을 늘어놓고 그로 인해 본래의 업무를 제쳐두고 이전에 진행되었던 설계이력들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아마도 공대 선배로써 나의 설계에 도움을 주고 싶었나 보다 ㅎㅎ..). 이는 나의 개인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많은 혼란을 야기했으며 CEO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간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매년 세우는 목표에 대해 나의 담당 CTO에게 확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워크숍에서 다른 부서의 C라인에게 직접적으로 목표에 대한 수정을 요구받아야 하는 상황이나, 각각의 C라인 인원별로 동일한 상황과 주제에 대해 전달하는 내용이 다르고 통합된 입장과 의견이 나오지 않는 문제와 같이 전체적으로 의사결정 체계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체계보다 더 큰 문제는 위와 같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환경에 있었다. 부서 간의 경계 없는 업무진행은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문화로 포장되어 허용되었으며 직원들의 고충을 듣기 위했던 다양한 시도들은 C라인의 권위주의와 객관성의 부재로 인해 자리잡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갔다. 또한 위와 같은 상황 속에서 되려 알맞지 않은 체계를 도입하여 직원의 자율성을 잘라냈으며 위와 같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사용되었어야 할 투자금은 시기에 맞지 않는 양적성장에 소모되어 버렸다 (아마 기업가치를 불려 유리한 M&A를 노렸던 것 같다).


따라서 체계를 단단히 잡아나가 건실한 기업이 되기 위해 사용되었어야 할 투자금이 소모되었고, 체계를 바꿀 수 있었던 사람들의 자율성마저 사라졌으며, 무엇보다 위기를 위기로써 인식할 수 있는 경험과 유연함이 사라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에 큰 오류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위와 같은 경험들을 통해 나는 중소기업에서 경영자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으며 내 커리어를 지속할 기업에 대한 아래와 같은 판단지표를 만들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1. 경영진의 배경

먼저 다양한 배경의 경영진이 있을 경우, 경영진이 서로 다른 다양한 경험을 했을 확률이 높고, 이는 기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종류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체계를 세워나가는 기업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써 작용할 수 있으며, 더욱 유능한 경영진일 경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대응책을 제시하여 기업의 성장을 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경영자의 성격

먼저, 경영자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혼란이 항상 도사리는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의견과 경험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표이며, 이를 통해 회사가 성장하며 자리 잡을 문화나 체계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방향을 엿볼 수 있다면 그 회사의 성장에 따른 나의 역할과 책임 또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 편안한 분위기

앞서 말했던 권위에 대한 보상장치 또한 필요하다. 너무나 권위적인 경영자는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견제받지 아니하며 이는 모든 생태계가 그렇듯 기업의 생존에 불리한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권위와 대조적으로 직원들의 발언이 보장받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 혹은 그에 상응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영자의 판단을 돕는 행위로써 활용될 수 있으며 부가적으로 직원들의 대나무숲으로써 역할하여 스타트업의 높은 업무강도로부터 오는 압력을 해소해 주는 환기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경영자의 균형감각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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