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청이와 식세기에게 어떻게 보은 하나

로봇청소기, 식세기 솔직 사용후기(PPL 아님)

by 오호라


요즘 나는 집에 새로 들이게 된 두 아이들 덕분에 행복하다. 그 두 아이들을 소개하자면, 하나는 내가 ‘로청이’ 라고 부르는 먼지 빨아들이기와 물걸레질을 하는 로봇청소기, 다른 하나는 5L의 물과 전용 세제만 넣어주면 뽀득뽀득하고 따끈하게 살균 설거지를 해주는 식기세척기(이하 식세기)이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인간 둘, 나와 남편은 둘 다 집안일을 꽤 미루는 성격이어서 이사하게 되면 그 두 애들을 꼭 들이자 다짐했었다.


전에 살던 집은 요가매트를 깔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히 나오지 않았던 데다가 부엌은 밥그릇 두 개, 컵 두 개, 반찬 그릇 두세 개 정도만 넣어도 싱크볼이 가득 찰 정도로 좁았다. 이사를 온 집이 그렇다고 아주 넓은 건 아니나 이제 2인분의 짐과 생활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된듯하다. 보통 아파트에 있는 빌트인 식세기까지는 아니더라도 2-3인용 무설치형 식세기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거실에 소파를 놓고 나서도 로청이를 거실 한편에 둘 수 있을만한 공간이 있었다. 다만 싱크대 옆 공간에 식세기를 두면 조리할 공간이 없어서 요리할 때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으나 요리를 하지 않아도 설거지는 훨씬 자주 해야만 하는 일이어서 큰 맘먹고 들이기로 했다.


이미 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이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기계 둘을 들인 건 과연 잘한 일일까, 너무 사치는 아닐까. 두 기계가 정말로 그렇게 큰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사실 의심이 컸다. 그래서 써보기 전엔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누군가가 그랬지,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고. 정말로 로청이와 식세기에게 걸맞은 말이었다.




나의 이 만족감은 어디서 온 걸까, 정말로 기분상의 문제인 걸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따져보기 좋아하는 ‘사고형(MBTI 유형 중 세 번째 철자가 T)’ 답게 한 번 계산해보기로 했다. 다만 두 번째와 네 번째 철자는 각각 N과 P이기 때문에 정확도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길. 내가 직접 설거지를 한다면 보통 20분,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다면 40분 정도 소요된다. 설거지는 하루에 최소 두 번 정도 하니 적으면 40분에서 많을 땐 한 시간 정도 걸릴 수 있다. 청소기와 걸레질은 사실 매일 하지는 않으니 반으로 나눠 하루치로 계산한다면 20분 정도로 치자. 그렇다면 하루 평균 설거지와 걸레질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60분이다.


물론 기계를 쓸 때도 작동시키거나 관리하는 시간도 있는데, 그 시간은 절약되는 시간에서 제외시켜야겠다. 로청이는 작동시키기 전에 로청이가 이동할 때에 걸릴만한 바닥의 자잘한 물건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주어야 한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이나 콘센트 선 같은 것들을 정리하는데에 2-3분이 걸린다. 그러고 나서는 핸드폰 어플에서 ‘청소 시작’ 버튼만 터치하면 되니 3초(예약기능을 통해 설정해둔 시간에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 반복되도록 할 경우엔 0초), 청소가 끝난 뒤 물걸레포를 교체하는 시간 1분이 걸린다. 이렇게 로청을 작동시키기 전과 후의 시간은 총 4분이라고 하자. 다만 로청이도 매일 돌리는 것이 아닌 이틀에 한 번꼴로 돌리는 걸로 가정한다면 하루 평균 2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식세기는 그릇과 컵을 물로 애벌 세척하여 기계 안에 차곡차곡 잘 담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무설치형이기 때문에 5L의 물을 직접 물통에서 기계로 채워줘야 한다. 식세기를 돌리기 전에 행하는 이 과정을 합치면 대략 5분 정도가 걸린다. 식세기는 하루에 두 번 정도 돌리니 평균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자. 그렇담 이 두 기계로 인해 하루에 내가 벌 수 있는 시간은 약 60분(하루에 두 번 설거지+이틀에 한번 청소기 및 걸레질을 했을 경우)에서 12분을 제외한 48분이다.


돈으로 따져보자면 일단 48분을 2022년 최저시급(시간당 9,160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7,328원이다. 청소와 설거지 노동의 가치가 최저시급 밖에 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해 볼 여지가 있으나 특정한 자격증이나 기술이 필요한 업무는 아니니 일단은 그렇게 계산해본다. 식세기를 구매하는 데 쓴 비용은 216,000원, 로청이는 459,000원으로 총 675,000원이다. 그렇다면 로청이와 식세기는 92일(총 구매 가격/하루치 절감되는 가사노동의 양 7,328원(48분)) 동안 노동을 했을 때 그 가격만큼의 일을 한 것이며, 그 보다 더 오랜 기간 사용할수록 하루에 7,328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할 수 있다.


칼같이 돈으로만 따지자면 그러하고, 나를 대신해 가사노동을 해준 로청이와 식세기로 인해 절약된 하루 48분 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위에서 열심히 계산해보기는 했으나 사실은 이게 진짜 로청이와 식세기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장인이라면 연봉을 시급으로 계산해서 이 또한 돈으로 환산해볼 수 있겠으나 지금은 직장인이 아니어서 의미가 없고, 또 어차피 집안일은 근무시간이 아닌 시간에 직장일과는 상관없이 집안에서 하는 거니까 여가시간에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따져보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48분이면 나는 보통 책을 100페이지가량 읽는다. 한 권의 책이 300페이지라고 가정하면 1/3 독서를 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나는 90-120분 동안 지금 쓰고 있는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쓴다. 그렇다면 글 1/2개를 생산할 수 있다. 드라마 한 화를 거의 다 볼 수도 있다. 요리를 한다면 찌개 한 냄비를 끓일만한 시간, 나물반찬 두세 가지를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4-5Km 조깅을 하는 데에 약 40분 정도가 걸린다. 집에서 공원까지 오가는 시간과 전후로 준비운동하는 시간을 합하면 조깅 1회에 대략 48분만큼 걸린다고 할 수 있다. 어제와 오늘 아침에는 정말로 식세기와 로청이를 작동시켜놓고 조깅을 다녀왔다. 설거지와 청소가 다 되어있는 뽀송하고 쾌적한 집에 돌아와서 곧바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상이라니.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글을 로봇청소기와 식기세척기 업체 관계자들이 좋아하겠지? 특정 브랜드명을 밝히지 않은 만큼, PPL은 받지 않았으며 내 돈 내산 솔직 후기임을 밝힙니다.


사실 로청이와 식세기가 없었을 때에도 나는 평생 동안 기계가 만들어 준 여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다. 요즘 사람들은 로청이와 식세기가 혁명이라고 하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세탁기와 전기밥솥이 혁명이었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그때 세탁기를 처음 집에 들인 소감이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고 했다. 세탁기는 아마 로청이와 식세기가 줄여준 시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절감해주었을 것이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지고 개울가로 가서 물에 담그고 발로 밟거나 방망이질하고 꾹 짜서 다시 바구니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시간뿐이랴, 빨래로 인해 겪는 신체적 고통까지 겪지 않아도 되었다. 더구나 겨울에는 ‘얼음장 같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얼음장’에 손을 담가 빨래를 해야 했다. 전기밥솥도 말해 뭐하랴,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가마솥에 밥을 찌던 시절까지 생각하면 나는 정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해주고, 밥은 밥솥이 다 해주는 시대에 당연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비록 빨랫감이 제 발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거나 다 되면 스스로 나와서 널어져 있다거나, 쌀과 물이 저절로 씻겨져서 밥솥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말이지. (그런 거에 비해 로청이는 제 발로 충전하러 가는 데 어찌나 기특하고 귀엽던지…….)


요즘엔 심지어 청소는 로청이가, 설거지는 식세기가 다 해주는 시대이지 않나. 그렇다면 그 수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은 왜 발생하는가? 집안일이 이토록 줄었는데. 내가 앞서 계산해봤듯 가사노동이 줄어든 자리는 여가시간이 대체해야 할 것 같지만, 기계가 당연해질수록 ‘휴식’이나 ‘여가’가 아닌 다른 ‘일’들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는 ‘당연한듯이’ 더 밀도 높은 육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직장인은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게 될 수 있다. 어쩌면 집에서 남는 시간동안 하고싶지 않은 어떤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로청이와 식세기가 만들어 준 시간에 제대로 보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어떻게 써야 지금의 이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할 때다. 소모적인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절감하게 되었으니 이제 그 시간을 ‘유익하게’ 써야한다는 깨달음인데, 그 유익은 오롯이 나를 위한 유익이어야 한다. 48분만큼 더 불행해질지 더 행복해질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 넋 놓고 있다가는 내 시간을 탐하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쥐도 새도 모르게 빼앗겨버릴지 모른다. 로청이와 식세기를 들여서 행복하다는 얘기를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지금 백수의 시간을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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