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과 보살핌

이사 후 일주일

by 오호라

이사하자마자 남편이 아팠다. 이사하기 전날 저녁부터 열이 조금 나는 것 같다더니 다음날 이사하는 동안에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이삿짐을 전부 옮긴 뒤에는 결국 앓아누웠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코로나 자가진단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일단 음성 결과가 나왔다. 다음날 출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출근은 빼놓지 않고 했다. 아픈 몸으로 회사에서 아프지 않은 사람 몫의 일을 하느라 기력을 죄다 끌어 쓴 남편은 집에 오면 대체로 누워있었다.


남편이 아파서 누워있거나 출근해서 집을 비운 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안일을 했다. 이사는 일요일 오후에 끝났고, 나는 이날 오후 6시쯤부터 집안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음날 남편이 출근 준비할 때 이리저리 헤매지 않을 정도의 동선만 만들어두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정리였는데, 책장과 책상까지 죄다 정리하느라 서너 시간쯤 걸렸다. 월요일엔 싱크대 찬장의 식기와 식료품을 정리하고 묵은 먼지와 때가 가득한 세탁기 내부를 청소하고, 밀려있던 빨래를 두 번에 걸쳐 돌렸다. 아직 집안에 먼지가 많은 게 느껴져서 수시로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도 했다. 화요일엔 옷을 뒤집어엎었다. 수납함에 마구잡이로 넣어뒀던 옷을 그나마 종류별로 넣어두고 보기 싫게 대충 쌓여있던 것들을 정리했다. 수요일엔 대선 투표일이어서 남편이 집에 있었는데, 낮 동안에는 추가로 사야 할 가전제품을 함께 고르고 주문했다. 그리고 나는 싱크대의 나머지 수납공간을 추가로 정리했다. 목요일엔 아침 일찍 소파가 배송되었다. 소파를 한번 소독 티슈로 싹 닦고 집안 전체를 한번 더 청소기와 물걸레로 청소했다. 오후에는 세탁실에 깔 데크 타일이 도착해서 한 시간 동안 타일을 설치했다.


집안 정리와 청소를 하다 보면 자꾸만 쉬지 않고 몰두해서 서너 시간씩 하다 보니 저녁이 되면 온몸이 뻐근했다. 집안일을 하는 사이사이 밥을 차리고, 식사하고, 설거지하는 것도 하루 두 번 또는 세 번씩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닷새가 흘렀다. 남편은 닷새가 지나서야 기력을 회복해서 이사 온 뒤 처음으로 저녁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쉬지 않고 열심히인가, 그렇게까지 많은 걸 하지 않아도 되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건 일단 미뤄둬도 된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집안일을 물 흐르듯 끊임없이 계속하게 되는 건, 나도 모를 일이다. 아니, 사실 안다.


열 평도 되지 않는 집에서 17평짜리 집으로 이사오니 설레기도 했다. 전에 있던 집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에 신이 났다.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었고, 샤워부스와 세면대가 구분되었고, 작업실과 침실을 따로 둘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세탁실이 생겼다. 또한 싱크볼이 2배 정도 넓어졌고, 부엌 찬장의 수납공간이 2배 정도 많아졌고, 양문형 냉장고가 생겼고, 빌트인 신발장이 1.5배 커졌다. 이곳도 살다 보면 좁게 느껴질 날이 오겠지만 고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으로 방이 아닌 집 다운 집에 정착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러한 집 다운 집을 얼른 내 집 다운 내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집이 커진 만큼, 솔직히 조금 버거울 만큼 집안을 구석구석 다듬고 새 물건을 들이고 정리하고, 청소하기를 반복했다.


아픈 남편은 몸 상태 때문에 우울해했고, 혹여나 확진자가 되면 며칠 남지 않은 여동생의 결혼식에 가지 못하거나 민폐가 될까 봐 걱정했다. 아픈 사람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에서 잘 쉴 수 있도록 집을 빨리 정돈하는 거라고 혼자 생각했는데, 내가 쉼 없이 뭔가를 하고 있으면 남편은 약간 눈치를 보는 듯도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왜 내가 혼자 다하고 있나, 집에 오면 누워있기만 한다고 꼴 보기 싫다’고 생각할까 봐. 남편과 나는 그동안 집안일을 분업해서 해왔기 때문에 남편이 아픈 동안에 내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걸로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이사 직후인 만큼 조금 많이 하는 게 아니라 허리가 휜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아주 많이 하고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나는 집에 계속 있으니까 얼른 정리해야 내가 속이 개운할 것 같아서 하는 거라고 답했다. 다만 많은 변화가 보이지는 않더라도 티 나게 보이는 것보다 매우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알아달라고 했다. 예를 들어 수시로 먼지를 닦는 일이라든가, 세탁기 내부를 청소하는 일이나 이불 빨래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 같은 것. 그리고 내가 아프면 오빠가 집안일을 할 때 나도 눈치 보지 않고 쉴 거라고 했다.


누군가는 집안일이 힘들기만 하고 티가 나지 않아서 성취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할 때보다 훨씬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간섭 없이 온전히 내 통제 하에 내가 하는 만큼 오롯이 결과가 나오는 일로 이만한 일이 없다. 매일매일 반복되기에 시지프스의 형벌 같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예상 가능한 하루치의 일이 주어질 뿐이다. 그게 단조롭고 지겨워서 못 견디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예상치 못한 도전과제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내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일들로 인해 스트레스받았던 회사 생활을 돌이켜보면 집안일만 할 수 있는 일상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렇다고 평생 집안일’만’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저 지금 충분히 집안일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내가 집안일을 본래부터 좋아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닷새 동안 아픈 사람 옆에서 집중적인 집안일을 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 집안일은 그 자체로 보살핌이다. 집의 청결을 유지하고 음식을 차리고 정리하는 그 모든 일은 그 집안에 사는 이의 안녕과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이 보살핌은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보살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집안일을 할 때 스스로를 보살필 힘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동시에 동거인인 남편도 함께 보살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더불어 나를 보살펴 줄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하며, 이 글을 남편에게 꼭 읽혀야겠다. (사실 안 그래도 남편은 내가 발행하는 모든 글을 읽는다.) 집안일의 본질에 대한 이 신성한 깨달음을 나만 알기는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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