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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Sep 16. 2022

‘늦잠 어른’을 위한 세상은 없다.

나는 지독한 늦잠꾸러기다. 참, 서른이 넘어서 꾸러기라는 말을 붙이기엔 너무 염치가 없으니 달리 말하자면, 일찍 일어나는 걸 아주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왜 늦게 일어나는 어른을 위한 ‘단어’는 없는 걸까? ‘잠꾸러기’라는 단어가 있는 대신 ‘잠 어른(?)’이라는 말이 없는 건 어릴 때는 용서되지만 크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야 하니까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건가? 존재를 부정당하기는 싫으니 ‘늦잠 어른’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본다.


언제부터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증상이 시작된 건 아마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침 8시에 등교해서 야간 자율학습을 오후 열 시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꼭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밤 열 시부터 타블로의 라디오를 듣고 밤 열두 시부터 성시경의 라디오를 들으며 성시경이 새벽 두 시에 ‘잘 자요’라고 하는 인사를 듣고 잤다. 그 시간까지 깨어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어두운 무드등만 켜놓고 1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을 맞추고는 했다. 그런 탓에 키가 많이 자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눈도 많이 안 좋아졌을 것이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고등학교에 졸업할 때까지 키 순서대로 운동장에 서면 늘 맨 앞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키에 대한 욕심을 진작에 포기하기도 했었다. 키나 시력이 운명의 영역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에 따른 인과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탓할 수 있으니 어쩐지 덜 억울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잠을 늦게 자는 게 여러 모로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늦게 자는 게 습관이 되었다. 기상시간은 어쩔 수 없이 정해져 있어서 다음날 아침에는 부모님의 기상 알람에 겨우 겨우 일어나 등교하긴 했지만 점심을 먹기 전까지 오전 수업 내내 반수면 상태였다. 등교하자마자 믹스커피를 두 스틱씩 타서 때려 넣어도 그 정도 카페인은 내게 무용지물이었다.


내가 늦잠 어른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된 건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사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다. 대학교에서는 아침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으니 늦잠 자는 습관이 계속되었다. 더군다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아침은 당연하게도 거르게 되곤 했다. 오전 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업 시작 10분 전에 일어나서 헐레벌떡 뛰어가는 날도 잦았고, 열두 시쯤부터 수업이 시작되면 열한 시쯤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먹으면 다행인데, 우유 한팩이나 카페모카 한잔으로 첫 끼니를 때운 적도 많았다. 그렇게 남들이 제일 체력이 좋을 때라는 10대, 20대를 보내고 나니 내 체력이 남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었다는 사실도 아주 나중에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놓고 나니 알게 되었다.


또한 20대 내내 해가 잘 들지 않는 원룸이나 고시원 같은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해가 뜨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경험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늦잠 어른의 ‘나쁜’ 습관이 허용되던 대학교, 대학원 시기를 지나고 20대 중반이 넘어서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늦잠 어른은 꽤 성실한 어른으로 거듭날 뻔도 했다. 첫 직장을 다닐 때는 서울에서 진천으로 통근해야 했는데, 오전 6시 반에 일어나지 못하면 정시에 출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늘 힘겹게 일어나곤 했지만 아주 놀랍게도 한 번도 출근을 하지 못했던 적이 없다. 두 번째 직장을 다니는 몇 년 동안에도 지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비록 아침은 늘 거르곤 했고, 한계에 한계까지 잠을 자기 위해 자기 전에 머리를 감고 말렸고, 화장을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해졌다. 늦잠 어른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는 내게 성실한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 직장생활이 힘겨웠던 탓인지, 나는 결국 직장생활 자체를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석 달 전부터 자영업자가 되고 나서 오후 열두 시에 출근을 하고 오후 여덟 시에 퇴근을 하게 되었다. 얼핏 생각하면 내 생체리듬에 꽤 맞는 생활인 것 같다. 허나 출근시간이 늦다고 긴장의 끈을 놓으면 오전 열 시, 열한 시쯤 일어나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출근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하루 종일을 보내기 일쑤다. 일인 가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자리를 비우고 식사를 하는 게 애매하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 밥을 제대로 먹고 바깥일 말고 집안 살림도 엉망진창이 되지 않으려면, 오전 9시쯤 일어나서 아침 햇빛을 좀 쐬며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 이 마저도 꽤 힘들지만 컨디션이 아주 나쁘지 않다면 대체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학교나 직장 같은 곳으로 억지로 달려가야 했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이 내게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이런 안온한 일상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부지런함 조차 버겁다고 말한다면, 세상을 살기에 나는 너무 게으른 걸까. 언제쯤 부지런하게 일상을 굴리는 일이 익숙해질까. 부지런하지 않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늦잠 어른’도 어른 구실 잘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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