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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Jan 13. 2023

단호해질 결심

이제 막 6개월을 넘긴 초보 책방 사장이라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바꿔볼까 저걸 해볼까 이걸 해볼까 늘 고민이 많은 나날을 보낸다. 그렇지만 내 속만 시끄럽지, 겉으로는 참 조용하고 평온하다. 나의 이 조용한 가게에 카드 영업사원, 사이비 전도사, 화장품 방문판매원 등 책을 사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다른 것을 영업하러 온 사람들이 책방에 올 때면 쉽사리 내쫓지 못한다. 분주함을 핑계로 매몰차게 말하고 싶은데, 마땅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하는 탓이다. 핑계가 없어도 당연히 이곳은 내 영업장이니 당신 맘대로 여기서 다른 걸 영업하지 말라고 당당히 말해도 되는데 말이다. 다음에 또 오면 ‘좀 더 단호하게 잘 거절해야지’ 다짐만 하고 만다.


책방에 방문했던 손님 중 어떤 분이 내게 서점을 어떻게 차리게 되었는지 물어보셨는데, 그냥 좋아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대답하니 이런 말을 들었다.

“부자이신가 봐요.”

농담처럼 툭 던진 말씀이었고, 나는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종종 그 말이 생각난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 아닌 게 아닌 거 아닌가 싶어서. 절대적으로 측량가능한 재산으로 따지자면 당연히 ‘부자’에 속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내 명의의’ 집도 없고 가게도 월세다. 내 명의의 큰 재산이라고 한다면 소형차 K3 한 대와 아이패드, 핸드폰…?  하지만 부자란 무엇인가, 나는 시간이 많아서 ‘부’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부’를 원하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추고 싶기 때문일 텐데,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이미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을 때 나에게 필요한 정도의 재력은 갖추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가진 것으로 하고 싶은 걸 충분히 하고 있을 때만큼은 부자라고 하자. 물론 대놓고 ‘네, 저 부자예요’라고 당당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상태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가 또한 부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지속했고, 앞으로 상가 첫 계약기간 동안까지는 일단 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작년 반년과 내년 반년, 그리고 올해 일 년을 합쳐서 내게 이곳에서 주어진 기간은 2년이다. 서점 운영자로 온전히 한 해를 보내는 해가 어쩌면 올해뿐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시작의 연장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내가 언젠가 서점을 그만두게 되면 누군가는 내가 결국 부자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만, 기왕 서점 사장으로 사는 동안에는 부자처럼 살아보자 싶다. 내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을 떠올리며.


“너는 누군가의 꿈을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 멋있어.”

현재 누군가의 꿈은 나 스스로의 꿈이기도 했다. 꿈을 이루고 보니 꿈을 이룬다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 상태였다. 한 번의 어떤 날, 어떤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선택이 모여 나날이 이어지는 상태.


고백하자면, 서점을 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서점의 모습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서점을 보면 모두 다 내가 하는 것보다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점에서 누군가가 책을 사지 않고 그냥 가거나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 하고 물으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내 서점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꾸준히 왔고, 그들 덕분에 조금씩 명확해졌다. 모두에게 웃어주거나 모두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줄 필요는 없다는 점이.


누군가가 서점에서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보면 어떻냐고 의견을 주면, 예전만큼 스트레스받으며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쌓아나가다 보면 굳이 이 서점은 어떤 서점이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이런 서점이구나, 알아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겠지. 나의 꿈을 이룬 상태가 누군가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결심은 이것이다. 단호해지기. 여기서 더 단호해진다고? 싶을 만큼 나에게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과거와 지금의 내 선택을 믿고, 다음 선택을 해나갈 단호한 마음. 나만큼 나를 모르고, 나만큼 내 인생에 관해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얹는 말에는 신경 쓰지 않기. 평온해 보이는 나는 내 안의 고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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