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호라 Feb 18. 2023

회귀한다면, 어떻게 살까?

드라마나 영화, 웹소설, 웹툰 등 다양한 장르에서 ‘회귀물’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인생 2회 차’라는 말이 종종 눈에 띈다. 회귀물 이전에 불교의 ‘윤회’ 사상에서 비롯된 ‘환생’이라는 말이 있기도 했으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다른 온갖 만물로도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환생보다는 지금의 내 기억을 그대로 갖고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회귀’가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회귀물의 주인공은 앞으로 일어날 큼직한 사건들을 예측할 수 있다거나, 몇십 년간 인생을 살면서 습득해 온 지식과 기술을 남들보다 앞서 체득해 온 덕분에 ‘쉽게’ 대부분의 역경을 헤쳐나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 ‘복수’ 같은 것을 하거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나아가면서 실패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의 과거로 회귀해도 충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는데, 얼마 전에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은 완전히 다른 가정환경에, 즉 ‘재벌 3세’로 회귀하기까지 한다. 남들은 절대 얻지 못할 인생경험 30년에 미래에 대한 지식 30년에다가 국내 제1기업의 회장 손자라는 배경까지. (거기다가 외모는 송중기라니) 그야말로 그 누구의 공감도 얻을 수 없는 ‘사기캐’지만 누구나가 갖고 있는 환상을 충족시켜 주었던 덕분에 많은 인기를 얻지 않았나 싶다. (그 환상을 깨부수는 결말 때문에 더 큰 원성을 샀지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특히, 주인공 도준이가 ‘회귀자만의’ 역사적 지식을 활용해 분당 땅을 산다거나, 영화 혹은 주식 투자를 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개미 투자자들이 흔히들 그런 말을 하지 않나, ‘그때 살 걸…’ 하는 말. 어쩌면 이 드라마는 그처럼 완벽한 매수 타이밍을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은 바로 미래에서 회귀한 이뿐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저런 방식으로 회귀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아마도 의미 없기는 하지만 행복한 상상을 해볼 뿐이다.

 

먼저 이러한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나 자신으로 회귀할 것인가?’

회귀물에서는 물론 작품 속 세계관 자체의 설정이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선택하여 회귀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건과 함께 무작정 어느 시점, 어느 인물 속으로 영혼이 던져지듯이 갑작스레 빨려 들어올 뿐이다. 그래도 이왕 상상이니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본다. 도준이처럼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력을 갖춘 집안에 태어날 것인지, 그것을 뿌리치고 내가 살아온 배경을 다시 선택할 것인지. 나는 굳이 내 가족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은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을 것 같다. 내 인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다른 이로 태어난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대신 나 스스로로 태어난다면 내가 예측하고 미리 통제할 수 있는 불길한 사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도준이처럼 갑자기 교통사고 당할 일도 없을 테고.


그렇게  자신으로 회귀한다면 이제 ‘어떻게  것인가?’ 대한 질문이 남았다. 나에게는 과거로 돌아가서  이루고 싶었던 어떤 일이 있다거나,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하는  결정은 없다. 회귀한다고 해도 어떻게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아무리 ‘문송’(문과라서   벌어서 죄송) 하다지만 내가 문이과를 다시 선택해야 하는 시점으로 돌아가더라도 ‘이과 갈까? 대학원에 가서 고생했다지만  시점으로 돌아가면 대학원을 가지 않을까? 대학교 생활을 전과는 다르게 하고 싶기는 하다. 교직 이수도 하고 교환 학생도 하고, 용기가 없거나 게으르기도 해서 핑계 대며 해보지 않았던 대외활동을 해볼  같다. 그렇다면 대학원을 가지 않는 대신 휴학을  번쯤 하고, 유럽여행이든 남미여행이든 그때가 아니면   없을 정도의 기간 동안  여행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클라이밍이나  관찰은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좋으니 회귀한 직후부터 곧바로 시작할 것이다. 내가 가진 경제적 지식을 나름대로  동원하여 소소하게 받는 아르바이트비나 용돈 같은 것을 모아 주식투자를 하면  정도의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얼마간 여행을   있을 정도는   같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한량처럼 사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지금의 나는 회귀하더라도 결국 지금 내 삶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다시 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시간을 더 벌어서 좋다고 생각할 뿐이다. 운이 좋다면 선구안을 가진 투자자가 되어 워런버핏처럼 살고 싶지만 그것도 잘해야 2023년 정도까지 일 테니까… 되돌아가도 클라이밍, 새 관찰, 책 읽기 정도를 더 하기 위한 삶을 살 것이라면 그냥 지금 이대로 열심히, 즐겨야겠다. 그렇게 회귀는 안 하는 걸로. 저는 마다할 테니, 누군가 다른 사람이 회귀하고 싶다면 더 좋은 삶에 써주길 바랍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가 언제부터 연인들의 날이 되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