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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Mar 10. 2023

완벽한 하루 (주말 ver.2023)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매일매일을 잘 살기 위해서 완벽한 하루를 한 번 상상해 본 다음 그런 이상적인 하루에 비슷해지게끔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나의 완벽한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완벽한 순간들을 한 조각씩 모아 하루를 만든다면 완벽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완벽한 아침을 상상해 본다. 싸늘하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아침 공기가 나를 감싸고, 미세하게 커튼 틈으로 밝아오는 햇빛에 자연스럽게 잠에서 깬다. 더 자고 싶다는 느낌이 없이 푹 자서 개운한 느낌이다. 시간은 하루를 온전히 보내기에 너무 늦지 않은, 8시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옆에는 남편이 아직 자고 있다. 산뜻하게 뽀뽀를 쪽 하고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부엌으로 가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식빵을 굽는다. 원두커피를 꺼내 드리퍼에 한 스푼 붓고, 전기 포트에 물을 올린다. 물이 끓고 커피를 내리려고 하니 남편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온다. 그는 묻는다.

“오늘 뭐 할까?”

이날 우리에게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해야 할 일도 없다. 어떤 평범한 주말일 수도, 여행지의 좋은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어느 날일 수도 있다.

내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남편이 접시와 포크, 나이프, 잼, 식빵을 준비한다. 뭔가를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맞는 아침식사 준비다. 스피커로 ‘잔잔한 아침 피아노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의 분위기에 심취해 본다. 유튜브에서 골라준 잔잔한 아침의 피아노 음악은 과하게 들뜨거나 너무 웅장하거나, 리듬이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적당하다.

아침을 먹는 동안 지도 앱을 뒤적이며 새롭게 산책을 할만한 주변의 멋진 장소를 찾아낸다. 그곳은 다양한 나무와 꽃이 있고 호수가 있어 산새와 물새를 다양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편과 나는 금방 외출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선다.


산책을 한두 시간 정도 하며 다채로운 새소리를 듣고 보고, 사진도 꽤 많이 찍을 것이다. 평소에 자주 보던 참새와 까치, 멧비둘기, 박새도 물론 많이 만났을 것이고 따뜻한 봄 날씨였던 만큼 아기 새들을 위해 벌레를 입에 물고 둥지로 날아가는 새들도 많이 본다. 호수에는 노랗고 자그마한 흰뺨검둥오리 유조들이 어미 새 곁에서 졸고 있다. 참새가 모래 목욕하는 모습도 보고 직박구리가 얕게 흐르는 개울에서 목욕하는 모습도 본다.


그렇게 새들을 보고 두 시간 정도 신나게 산책한 우리는 배가 고파져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나물 반찬이 풍부하고 맛있는 채식 식당이면 좋겠다. 두부와 가지로 된 담백하고 깔끔한 반찬도 있다. 식당에는 손님이 아주 많지 않아서 소란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천천히,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너무 넘치지 않는 적당한 포만감으로 딱 맞는 식사를 즐겁게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 나오며 다른 곳에서 다시 산책을 한다. 이런 모습이 나의 완벽한 점심이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엔 정말 아까운 날씨다.


완벽한 오후에는 벚꽃이 만개한 길을 걷는다. 건너편 담장에는 개나리가 끝없이 펼쳐진 길이 있다. 산책 나온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걸어도 부딪히거나 서로에게 딱히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에는 여유가 있다. 아주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너무 적막하지 않을 정도의 소란함이 그 사이를 메운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꽃 사이사이를 건너 날아다니며 꽃대를 입에 물고 있는 새들이 보인다.


해가 지기 전, 차가 너무 막히기 전에 오후 4시 즈음에 우리는 집으로 혹은 숙소로 다시 돌아온다.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여유 있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저녁을 먹기 전에 두어 시간 책을 읽을 정도의 체력이 남았다. 나는 적당히 몰입감이 있으면서도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게 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잔잔한 일상과 꽤 깊은 사유를 공유해 주는 에세이집을 읽는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몇 구절 발견하여 격하게 끄덕이기도 하고 그 문장을 표시해 두고 여러 번 곱씹는다. 그의 문장이 내가 모호하게 하던 생각을 명확히 정리해 주는 듯하다.


저녁은 집에서 오래간만에 양식으로 요리해 먹는다. 얼마 전에 만들어 둔 바질 페스토가 있어 많은 번거로움 없이 파스타를 뚝딱 만들고, 절인 올리브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식사다. 남편과 나는 식사를 하며 오늘 봤던 아름다운 풍경과 귀여운 새들의 모습을 대화 주제로 삼아 이야기한다.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다. 산뜻한 날씨에 적당한 산책을 하고, 새와 꽃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아무런 갈등과 거리낌이 없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내 취향의 책을 읽으며 정리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본 아름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


매일의 모든 순간이 이러한 완벽한 순간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흘러가지 않지만 내가 바라는 완벽한 순간들을 모아봤자 생각보다 아주 호화롭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상상하다 보니 내가 이미 그처럼 보내고, 좋았던 하루하루의 기억의 조각을 조금씩 끌어모아 생각하게 되었다. (주말이나 휴일이 전제되어 있기는 하다. 일하는 버전의 하루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한편으로는 내 일상의 모습이 지금과는 또 많이 달라진다면, 나는 또 굉장히 다른 일상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아마 내가 재작년에 서울에 살 때 클라이밍에 미쳐있을 때였다면 하루 종일 클라이밍을 하며 못 풀던 문제를 여러 개 완등하는 날을 상상해 보게 되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글은 올해의 완벽한 하루 버전으로, 나의 일상 중 여러 날이 이와 닮아갈 수 있도록 살아봐야겠다.



상상 속의 완벽한 하루에 등장한 새들의 모습

어미새 옆에서 조는 아기 흰뺨검둥오리들
모래 목욕하는 참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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