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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Jun 02. 2023

인생 첫 차, 캐슈리와 함께한 일 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차를 구매한 때는, 2022년 상반기. 반도체 대란으로 웬만한 차는 출고하는 데에 1년 가까이 걸린다던 시기였다. 차종은 상관없고 그저 차가 있기만 하면 되었던 나는 중고차 구매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신차의 출고기간이 계속해서 미뤄지는 있는 탓에 당시 중고차 가격도 많이 올라있었다. 친오빠의 조언으로는 중고차를 볼 때 연식은 3년 안쪽으로 4만 킬로 이내의 차를 고르라고 했다. 그러한 조건에 맞는 차를 보면 새 차와 가격이 2-300만 원 정도 차이 났던 것 같다. 분명 그 정도도 작은 돈이 아니지만 2천만 원 내외의 차를 산다고 생각하니 ‘이럴 바에는 새 차를 살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때 즈음 친오빠가 말했다.

 ’그냥 새 차 사라. 중고차 잘못 샀다가 괜히 속 썩이고 그럴 수도 있으니.‘

나도 남편도 차에 대해서 잘 모르니 그 말을 듣자마자 덥석,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반떼가 좋을까 K3가 좋을까 조금 고민하다가 출고 대기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고 하는 K3를 골랐다. 당시엔 아반떼의 디자인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각지고 날카로운 아반떼보다는 둥글둥글 귀여운 K3가 점점 더 예뻐 보였다.


신차 계약을 하고 출고를 받게 되기까지 3개월 하고도 보름쯤 걸렸다. 지나고 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지만 출고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자꾸만 네이버에서 K3 출고 기간을 검색해 보고, 유튜브에서 K3 출고 후기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드디어 출고된 차를 마주했을 때는 어찌나 기뻤던지, 새 차의 내부를 틈 없이 감싼 수많은 비닐과 보호 스티커를 제거하면서 비닐 하나에 꿈과 비닐 두 개에 설렘이, 비닐 세 개에 행복이 깃드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의 차, K3가 출고된 지 일 년이 되었다. (실질적으로는 내 명의로 되어있지만 나와 남편이 공동 재산으로 구매한 것이니 ‘우리’의 차라고 하였다.) 우리의 차에는 ’캐슈리‘라는 애칭이 붙었다. (케이쓰리 발음을 대충 뭉개서 붙인 애칭인데, ‘케슈리’로 쓰는 게 맞는가 싶지만 ‘캐슈리’로 쓰는 게 내 이름에 들어가는 ‘ㅐ’와 같으니 이렇게 쓰기로 한다.) 1년 단위로 갱신하는 자동차 보험을 5월 26일에 갱신했기 때문에 그날을 캐슈리의 생일로 삼았다. 그동안 무사고로 우리를 안전하게 이곳저곳 다닐 수 있게 해 준 캐슈리에게 감사하며, 자축의 의미로 캐슈리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캐슈리를 만난 후 나와 남편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게 되었고, 더 풍부한 취미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신이 나서 주말마다 더 이곳저곳 다녔던 것도 같다. 운전이라는 스킬을 습득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남편도 캐슈리를 출고한 지 얼마 안 되어 면허를 땄고, 둘이 함께 조금씩 더 멀리 이곳저곳 다니며 금방 운전을 능숙하게 하게 되었다. 운전하는 것 자체는 나보다 남편이 더 즐거워하는 듯했다. 운전 학원을 가기 전까지는 그토록 미루던 운전을 막상 하게 되니 누구보다 신나 하고 뿌듯해하는 남편이었다. 나도 그런 남편 못지않게 자주 핸들을 잡고 싶어 했으므로 우리는 거의 공평하게 운전을 분담하게 되었다. 평일에는 내가 출퇴근을 위해 운전하고, 주말에 짧게 놀러 갈 때는 주로 남편이 하되 2시간이 넘어가는 장거리이면 번갈아가며 운전한다. 운전을 배운 시기가 비슷하다 보니 우리는 서로의 운전에 어떨 땐 불안해하며 참견하고, 어떨 땐 그 참견 덕분에 운전하는 이가 미처 못 봤던 것을 보며 사고를 방지해주기도 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어디로든 출발할 수 있고, 양손에 짐을 끌거나 어깨에 배낭을 메지 않아도 짐을 싣을 수 있는 차가 있다는 건 어찌나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지! 더구나 나는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체질이라서 내가 핸들을 잡고 운전해서 어딘가에 갈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즐겁고 신선했다. 멀미 때문에 30분 이상 차를 타고 가야 할 때면 무조건 잠을 청하곤 했기에 운전석에서 볼 수 있는 도로의 풍경도 내게는 대부분 새로웠다. 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날 때마다 나와 남편은 자주 감격했는데, 특히 지방에 있는 우리 둘의 본가(친정은 청주, 시가는 창원)로 내려갈 때, 집에서 집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우리 둘 다 십 년 넘게 서울에서 살며 본가에 오갈 때마다 고속버스를 예매하고 차 시간에 맞춰 터미널까지 가야 했고, 터미널에서 또 집까지 버스나 택시를 타는 번거로움을 견뎌왔기 때문이었다. 짐이 가벼울 때는 시간만 오래 걸릴 뿐 별로 힘들지 않을지 모르나, 부모님이 우리를 생각하여 반찬이나 과일 같은 것을 가져가라고 주시거나 계절이 바뀔 때 어쩔 수없이 옷을 캐리어에 꾹꾹 눌러 담아 이고 지고 와야 했을 때 본가에서 충전했던 에너지를 터미널을 거닐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캐리어를 끌고 집까지 올라오면서 죄다 소진해버리고 마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차가 있다는 건, 이고 지고 올라갈 고생에 대한 걱정 하나 없이 반찬이고 이불이고 옷이고 온갖 것을 차 트렁크와 뒷좌석 공간이 허용하는 만큼 싣고 집 앞까지 발끝만 끄덕끄덕 하며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편리함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자꾸 차 안에서 진작 차가 있었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편하고, 풍요로웠을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동안 그러지 못한 걸 보상이라도 하듯 차가 있기에 갈 수 있는 곳을 열심히 가고, 즐겼다. 차가 없다면 절대 갈 수 없는 자동차 극장을 가기도 했다. 그때 영화 ‘한산’을 보았다. 자동차 극장에서 알려주는 특정 라디오 주파수를 잡으면 차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들렸다. 안내에 따라 화면이 잘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하니 금방 우리 둘 만의 프라이빗한 영화관이 꾸려졌고, 컵라면을 먹으며 차 앞유리 밖에 보이는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즐기는 기분이 썩 재밌었다. 컵라면을 다 먹은 뒤에는 인형을 안고 편안한 각도로 좌석 등받이를 젖혀 한껏 편안한 자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영화를 보았다.  


차가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은 또한 바로, 세차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주말에 손 세차를 하러 갈 때 종종 따라가곤 했는데, 나는 아빠를 적극적으로 돕기보다는 차 안에서 물이 뿌려지는 것과 거품이 흘러내리는 것, 닦이는 모양 같은 것을 구경했었다. 그런 것을 자라면서 신기해하지 않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아빠도 세차하러 갈 때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아빠는 차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어서 세차를 거의 하지 않기도 했다. 내 차가 생기고 나니 나는 세차를 생각보다 재미있어하는 사람이었다. 몸을 움직여 차의 이곳저곳을 직접 손으로 문질러 닦고, 티끌 한점 없이 매끈한 차의 외관을 보는 것이 이렇게 좋을 일인가. 처음 셀프 세차를 하러 갈 때는 세차 용품의 세계가 복잡해 보이기만 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금방 그 순서와 용어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나름의 필요에 따라 어떤 순서는 생략하기도, 어떤 때는 추가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나만의 세차 방식을 구축해나가게 되었다. 대충 하면 한 시간 내외쯤, 꼼꼼히 하면 2시간 내외 정도로 걸린다. 세차 후 뽀송해진 차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게, 그리고는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차 안에서 들이켜며 도로 위를 달리는 나의 모습이 이토록 뿌듯하고 멋질 일인가. 조금 과장하면 차에게 내 손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어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조금 많이 과장했다.) 물론 세차를 충분히 즐기는 것도 춥지 않고 화창한 날씨가 따라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또 운전하면서 좋아하는 순간은 직접 운전하여 누군가를 데리러 가거나 데려다주거나 할 때다. 동탄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정류장에 내려주거나, 데리러 간다거나 서점에서 집으로 함께 내 차를 타고 가거나 했다. 소소하고 당연한 일이어서 생색을 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매우 뿌듯해했었다. 그러면서 내가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곤 할 때, 그래야만 했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되게 송구해하고 미안해했는데, 막상 내가 운전자가 되어보니 그리 수고로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거리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가는 길에 내려주는 것이라면 혹은 약간의 시간을 들여 조금 돌아가기만 한다면 내 친구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배웅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미처 나누지 못했던 추가적인 수다를 떨 수도 있다. 퇴근하면서 남편의 회사 앞으로 자주 픽업하러 가기도 한다. 남편이 딱히 오라고 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그러고 싶어서 간다. 회사 셔틀버스가 있지만 사람에 치이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우리 차로 함께 퇴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서로의 일터가 멀지 않고, 퇴근 시간이 비슷하고 차가 있어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사치다.


캐슈리의 누적 주행 거리는 13,000Km를 앞두고 있다. 계기판에 기록되는 주행거리가 늘어갈수록 캐슈리와 함께 하는 추억이 쌓이는 듯하다. 그 숫자 안에는 우리가 부모님 집에 오고 갔던 거리와 작년 여름 속초에서 함께 보냈던 여름휴가의 기록과 서점으로의 출퇴근 기록, 산으로 바다로 새를 보러 다녔던 사계절의 기록들이 담겨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고 없이 캐슈리와 함께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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