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쓴 칼럼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공식적인 사이트에 내 이름과 얼굴을 걸고 쓴 글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내 성취가 자랑스러웠고 그 성취에 대해 충분히 칭찬받고 싶었다. 그래서 칼럼 링크를 가족 카톡방과 책방 단골 카톡방,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복사 붙여 넣기 하며 자랑하고 있었다. 시댁 가족 카톡방과 친정 가족의 카톡방의 온도차가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가깝다고 여겼던 본가 식구들의 반응이 가장 뜨뜻미지근했다. 시부모님과 시누이 내외는 멋지다, 글 잘 썼다 - 머쓱할 정도로 칭찬 일색이던 와중에, 우리 부모님은 ‘멋지다, 파이팅‘ 각각 한 마디씩만 남겼고 다른 화제로 곧바로 전환되며 내 칼럼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차라리 반대였다면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았을텐데.
나의 성취와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들떠있던 와중에 우리 부모님만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내내 서운했다. 그런 마음으로 퇴근할 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내가 쓴 칼럼 읽었어?”
”그냥 대충 봤어 “
나는 그 반응에 서운해서 뾰로통하게 말하며 엄마를 채근했다.
”뭐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다 안 읽었어? “
”그러니까, 엄마도 글 안 읽는데, 누가 글을 읽는다고 돈 안 되는 일을 하냐. 엄마가 하지 말랬잖아. “
엄마는 내게 비수를 꽂듯 말했다. 흥, 원래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거든 나는. 하나도 안 아프다! 근데 서운한 건 난데, 엄마는 왜 또 말을 그렇게 해서 나를 또 더 서운하게 만드나.
”엄마가 안 읽는 거 가지고 왜 그렇게 말해? 읽는 사람은 다 읽어. 엄마는 옛날에 오빠가 소설 썼을 때는 다 읽어놓고 내가 쓴 건 한 장 반밖에 안되는데 내 껀 왜 못 읽어.”
나는 나도 모르게 ‘비교’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꼭 엄마에게 차별받았다는 듯이. 그래서 더욱 서운하다는 듯이.
“너는 왜 그렇게 엄마에게 바라는 게 많냐?”
생략된 말은, ‘엄마는 이미 너에게 충분히 많은 걸 해줬고, 너는 아무것도 엄마에게 해준 것도 없으면서…‘라는 말이다.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어떤 말이 가장 상처가 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분명 노안이 와서 글을 읽기 힘들다고 했는데, 나는 그래도 서운했다. 엄마가 아예 안 본 것도 아니었다.
”낭만적인 책방으로 오세요, 뭐 그렇게 썼더구먼. “
엄마는 꼼꼼히 안 읽었다고,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다고 말하면서도 글의 요지는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잘 썼다. 좋더라, 네가 하는 일이 이런 거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다. 바라는 게 많은 건가? 엄마가 나에게 왜 그렇게 바라는 게 많냐고 했을 때, 따지고 싶었지만 어쩐지 말문이 막혔다. 서른 몇이나 돼서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은 이 마음은 뭔지, 나도 대체 모르겠다. 엄마에게 칭찬받으려고 글을 쓴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엄마에게 칭찬을 받지 못해서 안달인지. 열 사람이 칭찬하고, 멋지다고 해도 엄마 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결국엔 슬펐다. 엄마가 ’ 돈이 안 되는 일‘이라서 다 부질없다고 이야기하면 그런 것만 같았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즐겁게 한 일이며 뿌듯하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왜 자꾸 상처를 주는가, 아니 나는 왜 자꾸 엄마에게 상처를 받는가 고민했다.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가도 엄마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구렁텅이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 싫어서. 그렇게 엄마의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엄마의 인정을 바라는 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싶어서.
엄마는 내게 잔인한 것이 아니다. 나도 엄마에게 그다지 따뜻한 딸이 아니다. 엄마와 나는 원래 서로 부드럽고 따뜻한 말을 잘 주고받지 않는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엄마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고 말하려고 해도 눈시울부터 빨개진다. 엄마도 나와 똑같을까? 그래서 내게 ’ 가벼운 ‘ 칭찬의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는 것일까. 엄마는 내게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열심히 해도 그만큼 성과를 못 보는 게 속상해서 그러지.”
엄마에게 ’ 성과‘라는 건, 경제적인 성취, 즉 ’ 돈’과 동의어였다. 엄마는 유물론자였다.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은 하지 않았다. 당신은 가난으로 인해 워낙 많은 고생을 하셨기에, 당신의 자녀들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랬기에 당신의 평가 기준은 늘 돈, 그리고 안정성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엄마에게 인터넷 칼럼은 휘발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원고료를 받고 쓰는 글이었다면 모를까, 단지 할애된 지면에 무료로 실은 글이었으니까.
나도 물론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돈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다. 나는 엄마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기준을 가진 것도 같다. 엄마가 유물론자라면, 나는 일종의 관념론자였다. 돈이 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한 일에는 늘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 가치는 엄마에게 설명하기 어렵고 엄마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해도 결국엔 엄마는 이렇게 물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게 밥 먹여주냐? 그런 거 말고 돈이 되는 일을 해야지”
내가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내 ’ 추상적인 ‘ 성취가 ’ 물질적인 보상‘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분명히 나는 그 칼럼이 내 서점에 조금의 홍보효과라도 있기를 기대하며 썼지만, 당장에 그 칼럼으로 인해 꽤나 유명세를 타서 내 이름이 알려지고 내가 유명인이 되어 나를 보러 사람들이 막 구름 떼같이 서점에 몰려와서 매출이 급상승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엄마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자본주의와 내 삶이 불화하는 만큼, 나는 엄마와도 불화했다. 하지만 결국 이 일을 끝끝내 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걸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가보다. 돈이 되는 일을 좇기보다는 내 멋대로 살 운명인가 보다. 하지만 내가 엄마의 인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만큼, 엄마도 내가 유물론적인 삶을 살길 바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엄마와 나는 화해할 수 있을까?
- 덤으로 여기에도 칼럼을 퍼 나른다…
http://www.hspublic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