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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Dec 21. 2023

연말모임 만들기

   연말이라고 대학교 친구들, 동아리 친구들, 전 직장동료들 모임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다녀오는 남편이 부러웠다. 부러운 감정은 쉽게 서운함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는데, 나를 혼자 두고 자꾸 놀러 다니다니……! 때때로 저절로 그런 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남편이 사회 생활하는 데에 잔소리하는 아내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입 밖으로 서운함을 내뱉지는 못하고, 그런 남편을 부러워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문득, 이 감정은 특히 모임이 집중되기 마련인 연말에 자꾸 반복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은 나, 지나간 인간관계를 애써 붙잡으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는 나의 결과물이 이 정도인 것이 당연한데, 나는 때로 아쉬웠던 것이다. 연말이라고 딱히 약속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 내가, 연말이라고 특별히 저녁 스케줄이 각종 만남의 약속으로 가득 차지 않는 내가. 나는 연말파티에 초대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초대받지 못하면, 초대하자.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지인들을 초대하면 편하기도 하고 재밌게 놀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건, 서점을 운영하는 동안 일단 사람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모임을 기획하던 경력이 나름대로 쌓여왔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과 결심을 하고 나자 실행은 쉬웠다. 책방에서 유료 모임을 열고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보다야 훨씬 쉬운 일이었다. 거절 따위가 전혀 두렵지 않아 졌다. 그렇게 두 번에 걸쳐 책방으로 지인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내가 속한 취향기반의 모임 두 그룹에 초대장을 적어 메시지를 남겼다.                     





 프라이빗 책방 송년회에 초대합니다! 책방에서 연말파티 하고 싶어서 해보는 지인 대상 모임입니다:) 

모두 바쁘시겠지만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일시: 12월 금~토 저녁 중 *투표를 통해 정할 예정 

 ▣ 장소: 바다숲책방(동탄광역환승로 73 지하) *주차장 무료 등록!

 ▣ 참석대상자: OOOO

 ▣ 일정

- 저녁 식사: 배달 또는 포장음식으로 책방에서 식사합니다 / 마실음료(주류)는 참석자들께 맡깁니다

- 즐거운 대화

- 연말 선물교환(원한다면!)

- 그밖에 하고 싶은 것! 



  그렇게 두 번의 모임 날짜가 정해졌다. 또한 나는 책방에 1년 동안 모임을 꾸준히 나와주셨던 감사한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손님들을 대상으로도 “VIP 초대권”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럴싸한 카드를 만들어 연말 모임을 준비했다. 초대권을 드리면서 약간은 멋쩍었지만 모두 기뻐하면서 즐겁게 받아주셨다. 


  역시나 초대받은 모임은 따로 없었기에, 초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모임, 없으면 만들면 되지! 책방 손님 VIP 모임 세 번, 프라이빗 책방 송년회 두 번, 총 다섯 번의 연말 일정을 적으며 나에게 드디어 연말의 서운함이 아니라 설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파티 주최자로서 어떤 준비를 하면 참석자들이 더욱 즐거울 수 있을까 신나는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책방 손님을 대상으로 한 VIP 모임은 두 번을 진행했고 한 번은 아쉽게도 인원 부족으로 취소되었다. 지인들을 초대한 두 번의 프라이빗 책방 모임은 한 번, 개최하였고 아직 한 번을 남겨두고 있다. (다음 주 금요일에 할 예정) 추운 날씨를 뚫고 나의 초대에 응해준 감사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왜 연말이 되면 사람을 만나고 싶어 지는지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추운 날씨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온기로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고 생각하면 한 해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지고,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비로소 그들을 만나면 '와, 한 해동안 잘 살았구나. 나 나름 사랑하고 사랑받는 한 해를 잘 보냈구나.'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뜻한 연말'이라는 말이 나에게 이제야 와닿게 되었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건, 정말 사랑이구나.(칼 세이건의 말 인용)

모두가 이토록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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