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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Nov 23. 2023

부모님과 함께 오르던 산

  부모님은 나와 오빠가 어렸던 시절에 우리를 데리고 산에 그렇게도 자주 다녔었다. 주 6일 동안 일하시느라 일요일만 쉬는 날이었던 그때에, 우리 부모님은 산에 가는 것이 일요일을 가장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주말마다 산에 다녔던 기록은 본가의 앨범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부모님과 함께 앨범을 넘겨볼 때면 엄마와 아빠는 사진만 보고 척척 어떤 산인지 알아맞히셨다. 나에게는 다 그럭저럭 똑같아 보이는 사진이었다. 달라지는 건 나와 오빠의 키와 얼굴, 엄마 아빠의 옷 정도이고 배경은 초록 초록한 산이거나 울긋불긋한 단풍산, 혹은 가지를 다 드러내고 있는 앙상한 산, 아니면 험준한 바위산 정도로 밖에 안보였다. 그럼에도 엄마는 비슷한 듯 보이는 이런 사진, 저런 사진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는 계룡산이잖아. 꼭대기까지 올라간 애들 중에 너네가 제일 어렸어.”

 “여기는 속리산인데, 너 기억 안 나냐?”

 “조령산에서 엄청 힘들었었지! 아빠가 너 업고 밤 열 시까지 걸었어~ 오빠는 너만 업어준다면서 질투하고 “


  부모님과 달리 나는 내가 다녔던 산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가 갖고 계신 “충북의 명산”이라는 산에 나오는 대부분의 산은 가보았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남한의 여덟 개도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접한 지역이 없다는 완전한 내륙인 충청북도에 살았던 우리 가족에게는 주말마다 갈 수 있는 크고 작은 산이 수도 없이 많았다. 여지없이 산과 함께 시작하는 주말이면, 산에 가는 걸 늘 기쁘게 시작하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다. 더 자고 싶은데, 산에는 일찍부터 올라가야 하니 부모님은 일요일에도 우리를 새벽같이 깨우셨다. 지금은 그 부지런함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음을 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가족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두고 시간을 보내기에 산만큼 아름답고 교육적이면서도 쾌적한 데다가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제한 없이 시간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는 어딜 가도 찾기 힘들다. 그리하여 별 수 없이 차에서 한참 자다가 산 입구에 도착하면, 비몽사몽간에 등산을 시작했다. 걷다 보면 맑은 공기에 신기하게도 상쾌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 오곤 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좋았다. 산을 오르며 아빠는 늘 산을 오르는 걸 인생에 비유하시곤 했다.

만1세도 되지 않았던 나를 자전거 위에 태우고 올라가시던 뒷산에 오르는 아빠. 아주 즐거워 보이신다

  ”산은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게 아니야. 가는 길도 즐기면서 천천히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정상에 도착해 있는 거지. 너도 목표만 바라보고 갈 게 아니라 그 과정도 다 즐기면 돼. “


  아빠의 말이 맞다. 정상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을 올랐던 적이 없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정상에 가는 걸 포기하고 내려온 적도 없다. 오르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걸리든, 가장 높은 봉우리를 오를 때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중간중간 쉬면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챙겨 온 과일을 깎아서 먹기도 하고, 김밥을 먹거나 라면을 먹은 적도 있었다. 상쾌한 숲의 공기를 함께 들이마시며 먹는 모든 것들은 특별한 음식이 아님에도, 평소보다 유달리 맛있게 느껴졌다. 아빠는 산에 갈 때면 늘 소지하고 다니는 다용도 주머니 칼로 사과의 껍질을 깎으며 말씀하셨다.

 “아빠는 산에서 먹는 사과가(귤이, 라면이, 물이… 등등 많은 변형이 있을 수 있다) 제일 맛있는 것 같아.”

산의 공기와 풍경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야말로 ‘천연’인 조미료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토록 산에 자주 다녀서 산에서 보낸 좋은 추억이 많이 생긴 나는 산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고 하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산과의 추억은 그저 추억으로 남겨져있다. 요즘 나는 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편이다. 여전히 아침잠이 많아 산에 갈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남편도 아침잠이 많아서 우리 둘이 함께 산에 가려면 정말 굳은 결심과 계획이 필요한데, 그럴 만큼, 우리 부모님만큼 산을 사랑하지는 못했다. 대신, 우리나라의 어디에 있든 보이는 온갖 산들은 내게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하고 아련한 존재다.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산이 있으면 어린 시절 언젠가, 저 산을 올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산의 이름을 찾아본다. 그리곤 이렇게 물어본다.

 “엄마, 나 **산 가본 적 있어?”

 “너 한 4~5학년 때인가? 갔던 것 같은데?”

  이런 대답이 돌아올 때도 있지만, ’글쎄, 모르겠네. 안 갔던 것 같은데?‘ 할 때도 많다. 주말마다 십여 년간 나는 부모님과 참 많은 산을 다녔겠지만, 작디작은 대한민국에도 오르지 못한 수백 개의 산이 있다. 가능하다면 아직 가보지 못한 산을 부모님과 함께 계속 오르고 싶다. 어린 시절 언젠가 가보았을 산을 다시 오르며 내 몸 어딘가를 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때 그 산의 공기를 다시 들이켜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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