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리에 아쉬움을 남겨둔 채 버스에 올랐다. 운이 좋게도 마침 성산 일출봉을 지나 서귀포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숙소로 돌아와 찾아보았는데, 정류장에는 해당 버스밖에 없었다고 한다.) 버스에 올라타 배차간격을 확인했다. 배차간격은 대략 20분이었고, 커피를 마신다는 핑계로 성산일출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오로지 여행이어서 가능했던 자유에 너무나 즐거웠다.
커피을 마시기 위한 핑계, 성산일출봉, Oddang 2018.12
마침 또 스타벅스, Oddang 2018.12
창밖을 보면서 빨리 어딘가 내리고 싶었다. 어디에 내려야 할지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가 되었다. 내린 곳은 광치기 해변이었다. 사실 저 멀리 스타벅스를 봤기 때문에 내렸던 것 같다. 광치기 해변은 밀물과 썰물일 때 경치가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바닷물이 많이 차 있었고, 바닷물이 빠지면 녹색 이끼가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또 구름 대신 햇빛이 쨍쨍했으면 정말 더 '광치기 해변'이었을 것 같았다.
- 이중섭 거리, 다시 가고 싶은 거리
이중섭 화가의 흰 소 그림을 교과서에서 처음 봤었는데, 그땐 그림에서 아무런 'ㅈㅜㅇㅅㅓㅂ' 이란 싸인이 보이지 않았다. 이후 덕수궁미술관의 이중섭 전시회에서 흰 소의 그림에서 사인도 발견했었고, 다양한 소 그림을 그림을 보면서 작가의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무튼 늦은 밤 서귀포에 도착해서 근처의 대부분의 장소는 문을 닫았었지만, 이중섭 작가가 잠시 피란했었던 거주지는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네 가족이 살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작은 집에 네 가족이 살면서 엄청 행복했다고 한다. 그때의 그림들이 모두 따뜻하고 즐거운 느낌이 묻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은 이중섭미술관에 가려고 했지만, 월요일이었다. 다시 기회가 있을 때 찾아가 보도록 한다. 다음번에는 이중섭 미술관만큼은 계획하고 제주도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중섭 거주지, ㅅㅡㅇㅈㅜㄴ 2018.12
- 계획이 없으니 걱정도 없다.
오늘 12월 31일,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런 계획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걱정은 없었다. 호텔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 시간에 근접해서야 밖으로 나갔다. 무심히 지나가던 중 비슷한 돌로 쌓은 성? 과 만났다. 총 9개의 진 중에 하나인 서귀진이었다. 서귀진은 별방진보다 짧고 웅장함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뻔했다.
9개의 진 중에 두번째로 만난 서귀진, Oddang 2018.12
서귀진을 가볍게 둘러보고, 다시 근처에 보이는 바닷가로 향했다. 해안가로 향하는 길은 작가의 산책길이라는 푯말이 가득했다. 가는 길 내내 벽에는 돌로 장식한 작품들이 많았고, 섬을 표현한 그림이 가장 맘에 들었는데 돌로 표현한 벽화와 비슷한 섬이 골목의 끝에 있었다. 섬의 이름은 섶섬이었다. 사진을 잘 찍으려고 바닷가로 가다가 배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카페에서 섶섬을 커피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오히려 그 사진이 가장 맘에 들었다.
섶섬을 담다.,Oddang 2018.12
천지연 폭포 가는 길, Oddang 2018.12
섶섬을 지나, 이전에 한번 가본 기억이 있는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폭포는 시원했고 날씨는 추웠다. 오늘이 지나면 2019년이 되고, 짧았던 제주여행은 끝이 날 것 같아 천지연 폭포가 멈췄으면 좋겠다.
천천히, Oddang 2018.12
오른쪽 아래 돌에서의 사진 콘테스트, 나도 찍고 싶었다., Oddang 2018.12
제주도는 폭포 일정으로 끝이 났고, 계획이 없었던 제주 여행은 어쩌다 여행 일기장이 되었고, 즐거운 마음들이 일기장에 잘 담겨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