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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Oct 21. 2022

소처럼 일하다가 개처럼 죽을까 봐

구슬픈 열린 결말..

지난 여름, 낮 기온이 32도로 예정되어 있는 무더운 일요일.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아침부터 사무실에 출근했다.


정부에서 행사라 함을 장관, 차관 등 말 그대로 높은 분이 주재하는 회의, 간담회, 현장방문, 각종 기념행사, 외국 또는 유관기관들과의 MOU 체결이나 워크숍 등..  한마디로 사무실 안에서 하는 일상 업무 외의 이벤트들을 총망라한다. 행사는 디데이가 정해져 있는 일이고, 행사 일정 조율, 참석자 섭외 및 확정, 행사 보고서, 발표자료, 보도자료 등 사전에 준비할 일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야근과 주말근무를 동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출처: 그림왕 양치기


그날도 아주아주 높은 분의 현장방문+간담회 패키지를 준비하느라 주말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쌓여있는 일들에 몰두하면 할수록 사무실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낮 기온이 상승하면서 내부 조명등과 자리마다 2대씩 놓여있는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합쳐져 사무실 온도는 바깥 기온을 넘어 33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커다란 솥에서 삶아지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왜 더운 나라들의 GDP가 상대적으로 낮은지, 왜 공식적인 낮잠시간이 필요한 건지 절로 이해가 된다. 업무 효율과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요소 중 사무실 내부 온도만큼 중요한 변수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정부 청사와 공공건물은 전체적인 업무 효율성이나 생산성보다는 단편적인 에너지 절약에 집착한다. 한마디로 정부와 관련된 건물은 평일 18시 이후와 주말에는 전혀 냉난방을 하지 않는다.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야근도, 주말근무도 진정한 극기체험을 동반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 어른들이 '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땐 더운 데서, 추울 땐 추운 데서 일한다.'는 엄포를 놓곤 하셨는데, 청사의 이런 열악한 냉난방 환경을 접할 때마다 "우리의 공부가 부족했던 거냐! 공부를 얼마나 더 했어야 했냐!!"라며 동료들과 자조적인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무더운 사무실에서 열풍기 인기 선풍기인지 구분이 안 가는 기계 한 대에 의지한 채 일을 하다 보니 문득 이런 풍경이 떠올랐다.

쨍한 햇볕 아래 아지랑이 일어나는 한낮의 무더위를 오롯이 견뎌내며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누런 소.

천형과 같은 더위를 어쩌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발을 떼며 일을 하고 있는 소의 모습에 내 얼굴이 오버랩된다. 나는 오늘도 한 마리의 소가 되어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다.


'꾸역꾸역'은 원만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무언가 정상범위 이상의 무리한 억지스러움을 표현한다.

더위는 나의 신성한 노동을 방해하는 수많은 역경과 제약을 대표하는 한 요인일 뿐이다.

나를 꾸역꾸역 일하는 소로 비유하게 하는 요인들은 더위 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날의 온도, 습도, 바람과 같이 일상적인 모든 환경을 포함해서 조직 안에서의 상하좌우 인간관계, 업무 자체의 어려움, 해결되지 않고 여만 가는 복잡한 개인 사정 등등 '꾸역꾸역'을 유발하는 요소들은 넘쳐난다.

순풍에 돛 단 듯한 날들이 1년 365일 중 얼마나 되겠는가.

비바람 치는 폭풍우를 뚫고 출항하는 선장의 심정으로 출근하는 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날은 몸이 아플 때이다.




지난번에 회의하다가 쓰러졌던 정 과장.. 결국 갔다며..
들었어? 최국장이 이번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받았다잖아.. 말기라 상태가 영 안 좋다던데..


어떻게 하면 일하다 죽기까지 하는 건가? 그것도 사무직이.. 

산업혁명으로 직업 노동의 대세가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바뀌기도 하였고, 의학기술의 발달, 탄탄한 의료시스템 덕으로 과거에 비해 노동으로 인한 사망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정신노동이 유발한 스트레스, 건강관리의 실패와 피할 수 없는 각종 질병, 과음과 과식으로 이어지는 바람직하지 않은 자기 위안 등. 업무와 사망 간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다소 불분명한 케이스들도 있지만, 정신노동을 하는 사무직들이 일하다 죽는 사례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누가 아파서 휴직을 한다는 소식이라도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일하다 죽는다'라는 표현이 주는 섬뜩함은 우리에게 '일'은 필수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뭐 죽을 정도로까지 일을 하냐'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도 자신이 그렇게 일하다 죽을 걸 예상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렇다. 예기치 못한 허망한 죽음을 우리는 보통 '개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출처: 확인미상
나도 소처럼 일하다 개처럼 죽으면 어쩌지?


과거 급격한 경제성장의 시기에는 성공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가 미덕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지금보다는 훨씬 풍요롭고 안락한 내일을 꿈꾸는 삶이 당연했고 그러한 꿈의 실현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제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꿈꾸고, 사회적인 성공과 타인에 의한 인정보다는 스스로의 행복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소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춘 후 젊은 나이에 이른 은퇴를 하는 파이어족들도 늘고 있다.


그런 파이어족들을 비난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젊은 사람이 야망이 있어야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 사람대접을 받지'라는 말들은 소의 등을 내리치는 채찍질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게으른 베짱이 취급을 받더라도 소처럼 일하다 죽지는 않겠다는 선택을 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 한파를 겪어내는 건 베짱이의 몫이다. 쟁기질에 정신없는 소가 할 걱정은 아니다.




우리는 소처럼 일하지 않을 자유도 인정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소신 있는 파이어족이 될 자신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소처럼 일하다 개처럼 죽지 않기 위해 건강을 살뜰히 챙기고 결국 건강한 소로 거듭나 더 부려 먹히는 일만 남은 듯하다.

그 누구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알고 당하는 거와 모르고 있다가 당하는 건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소처럼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지금은 그 정도 자각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문득 답이 찾아지기도 하니깐 말이다. 쟁기를 벗어던질 용기가 생기거나, 쟁기질을 더 잘하는 요령이 생기거나, 아니면 쟁기질이 아니라 소싸움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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