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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Oct 23. 2022

Monday Cancer

이런..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군요. 당신의 병명은 월요암입니다.

금요일 밤과 일요일 밤의 차이는 무엇일까? 


밤이 주는 고요함, 하루를 마무리하며 휴식을 취하는 여유로움, 내일을 준비하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 이렇듯 똑같은 밤일 지언대 금요일 밤과 일요일 밤은 어쩌면 이리도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은 다를 게 없는데 금요일 밤과 일요일 밤의 체감온도는 극과 극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요일 밤의 다음은 토요일이고, 일요일 밤의 다음은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금요일 밤 다음은 휴식이고, 일요일 밤 다음은 다시 전쟁이다.

전장에 선 전사의 밤은 길고도 어둡다. 그리고 외롭다.




내일 다시 출근이다! 일찍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그런데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자려 따뜻한 우유도 마셔보고, 간단히 스트레칭도 해본다.

하지만 자꾸 월요일에 출근해서 나를 괴롭힐 일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머릿속을 더럽힌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일도 아니다. 당장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그러니 이리저리 뒤척이다 아까운 시간만 흘러간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일요일 밤을 드물지 않게 겪었을 것이다. 흔히 월요병이라고 부른다.

이 정도의 증상이라면 아직 상태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출근에 대한 부담과 월요일에 대한 거부가 보다 심해지면 어느덧 현실 부정의 단계로 넘어간다.

                                                    *출처: MBC 무한도전(2006~2018)

일요일 밤의 끝을 붙잡고 아예 잠을 이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취미활동을 한다거나 책을 본다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일요일 밤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영화를 보거나, 의미 없는 짤들로 가득 찬 스마트폰을 눈 빠지게 보는 정도이다.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인다. 출근하기 싫은 나를 죽일 수는 없고 대신 시간을 죽이는 셈이다. 하염없이 시간은 제물이 되어 흘러간다. 

이렇게 안 자고 버틴다고 월요일이 오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버티고 또 버틴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머리가 멍해지고 몸이 녹아들 때쯤에서야 겨우 잠이 들게 된다. 나는 이 정도 상태를 월요암(Monday Cancer)라고 부른다.


당신의 상태는 아직 월요병인가?
아니면 벌써 월요암인가?


나는 월요암을 정말 오랫동안 심하게 앓았다. 사실 과거형이 아닌 아직 간헐적 현재 진행형이다.

나의 조직생활은 나에게 월요암을 가져다주었다. 어디 가서 산재라도 신청하고 싶지만 아직 월요암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질환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져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보기도 했다. 아쉽지만 상담으로 딱히 해결책이 찾아지지 않았다. 그저 그냥 나는 출근을 병적으로 싫어하는구나 하는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정도였다.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나의 배우자는 안절부절 못 하는 나와 달리 매우 일상적인 일요일 밤을 보낸다.

나는 옆에서 보기에 그런 모습이 참 신기했다.


나: 넌 내일 월요일인데 괜찮아?
그: 뭐가?
나: 내일 월요일인데 막 싫고 그런 기분 안 들어?
그: 딱히.. 뭐 월요일이라고 새삼스러울 거 있나. 다 똑같지.
나:... (나만 쓰레기인가.. 월급 쓰레기..)


덤덤한 그의 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월요병은커녕 월요 간지럼조차 없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동종업계여서 그의 월요일이나 나의 월요일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주요 기사 스크랩을 빠르게 훑고, 국과장 회의에 참석하여 한바탕 쪼인 뒤 업무를 시작한다. 내가 그의 자리로 출근하든 그가 나의 자리로 출근하든 크게 다를 거 없는 월요일 아침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요일 밤은 너무나 다르다. 일요일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우렁차게 코를 고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딴 세계 사람처럼 느껴진다.(사실 배우자의 존재가 늘 딴 세계 사람처럼 다가올 때가 많긴 하다.)

같은 환경, 같은 조건에서도 사람마다 그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같이 겨울 등반을 가도 누구는 몸살감기에 걸리지만 또 누구는 아무렇지 않다. 같은 우유빙수를 먹어도 누구는 밤새 화장실을 드나들지만 또 누구는 평온하다.

그렇다. 체질적으로 강한 사람에게 질병은 잘 오지 않는다. 부럽게도 그는 강했고 나는 약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월요일도 새삼스러울 거 없는 평일이다.

그 월요일을 과도하게 의식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월화수목금토일 중에 '월'만 밖에서 데리고 온 자식마냥 차별을 한건 바로 나다. 

월요일은 그저 늘 그렇듯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나 혼자 미워하고 눈 흘긴 셈이다. 월요일 입장에서는 이 무슨 황당하고도 억울한 일일까 싶다.

일주일이 7일이니까 월요일은 내 인생의 1/7을 차지하고 있다. 내 인생의 적지 않은 이 시간을 언제까지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월요병을 극복해보겠다는 생각에 월요일에 남다른 의미부여를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간혹 월요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월요일을 이뻐해 보고자 특별한 이벤트를 세팅하는 경우도 있다. 월요일 점심만큼은 가보고 싶었던 식당을 간다거나, 월요일 출근길에 잔뜩 벼르고 있던 장바구니 속 무언가를 결제해버린다거나 하는 식 말이다.

물론 이런 방법도 월요병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순간적인 대증요법에 불과한 면이 있다. 그냥 월요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월요일을 평범하게 대해주자.
유난히 구박하지도, 특별히 편애하지도 말자.

현재까지 내가 찾은 월요암 치료에 가장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1. 최대한 덤덤해질 것, 2. 월요일을 의식하지 말 것' 

이 두 가지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면서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쓰면서도 쉽지는 않게 느껴진다.

그냥 월요일은 일요일의 다음날이고 화요일의 전날일 뿐인 것이다.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 듯이 월요일을 의식하지 않아야 월요병이든 월요암이든 벗어날 수 있다.

어차피 먹고살려면 해야 하는 출근이다.




어렸을 때 즐겨 듣던 라디오에서는 종종 송창식 가수님의 '참새의 하루'라는 노래가 나왔다. 나는 올드한 감성의 그 노래를 참 좋아했다. 송창식 씨는 나의 부모님 뻘은 되는 가수여서 당시에도 예전 노래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참새의 하루는 송창식 씨 특유의 삶을 해탈한 듯한 목소리와 노래 창법에 잘 어울리는 맑고 청아한 느낌의 노래인데 가사가 참 인상적이다.


아침이 밝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재 너머에 낱알갱이 주우러 나가봐야지.
아침이 밝는구나.


참새는 아침이 오면 그냥 간다. 재 너머에 낱알 갱이 주우러.

일요일이든 월요일이든 요일은 중요하지 않다.

참새는 숭고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거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밖에 되지 않는 참새가 재 너머를 향해 아침이슬 맞으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요일을 따지고 있던 나 자신이 다소 민망해지기도 한다.


참새와 내가 다를 바가 무언가? 참새가 나고, 내가 참새다.

아침이 밝으면 출근하러 나가봐야 하는 거다. 다행히 나는 참새가 아닌 인간이고,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품 안에서 주 5일 근무제로 토, 일은 쉬는 것일 뿐이다.

더 이상 새삼스레 월요일을 의식하지 말자.


월요일 아침이 밝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저 러시아워 너머 출근하러 나가봐야지.


                   *출처: Spongebob Squarepants(Nickelod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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