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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Oct 31. 2022

커피세(coffee稅)

내게 회사는 너무 써..

커피세(coffee稅)


오피스 빌딩 주변에 한 집 건너 하나씩 자리 잡은 커피전문점

그 많은 커피집 중에 하나를 내가 차려볼까 하는 쓸데없는 번민

기겁의 '아아'와 경악의 '뜨아' 사이의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가련한 영혼들

오늘도 회사는 내게 너무 쓰고

나는 더 쓴 커피를 마신다.




"뭐 마실래?"

"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난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

"라떼도 하나 추가요."


오늘도 어김없이 자연스럽게 한잔씩 식후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손에 들린 커피가 내비게이터라도 되는 듯이 다들 한 손에 테이크아웃 잔을 곱게 들고 삼삼오오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진다.

테헤란로나 광화문처럼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거리의 점심시간, 거대한 직장인 무리가 그려낸 동선들이 어지러운 가운데 일사불란하다. 이 광경을 저 멀리 상공에서 줌 아웃(zoom out)한 시선으로 본다면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이나 화단에서 보던 개미떼들의 모습과 너무 흡사할 거 같다.


직장인들의 혈관은 검은색일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렇게 들이붓는 커피에 피가 아직 빨강 일리 없다.

나도 안다. 비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무실 안팎에서 소비되는 커피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단지 헛소리라고 일축하기 어려울 정도다.


출근길 뉴욕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리듯 걷는 그들의 손에 들린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


대학생 때는 영화 속 이런 뉴요커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면 안다.

팔뚝 크기만 한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가 '멋'이 아닌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특히, 조직생활은 주니어들에게 더 가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

손에 익지 않은 업무

내가 사람인가 동네북인가 싶은 내적 혼란들..

이런 것들을 검은 커피로 지우려는 것인가?

지운다고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니 커피를 마시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커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이렇게 커피 의존도가 높아서야 어쩌나 싶다.

만약 커피 수입이 중단될 경우 닥칠 혼란은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에 버금갈 것 같다.


커피 섭취 중단에 따른 금단증세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어가고..

안 그래도 손에 잡히지 않던 업무는 점차 공백상태로 치닫는 가운데

사회 곳곳의 기능이 마비되어 크고 작은 혼란을 가져온다.

급기야 금단증세가 심각해진 일부 직장인들은 좀비 떼처럼 커피를 찾아 물류창고를 급습하고..

거리는 무정부 상태가 되어간다.

정부는 비밀리에 커피를 공수하기 위해 전직 특수부대원들을 소집하는데..

과연 그들은 무사히 미션을 수행하고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을 이 악몽에서 구할 수 있을까..

coming soon..


월급에서 원천징수되는 갑종 근로소득세의 한 항목처럼 적지 않은 몫을 자리 잡고 있는 '커피세(coffee稅)'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직장인들은 얼마나 될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늘도 우리는 성실히 커피세를 납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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