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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Nov 24. 2022

달리던 차는 속도위반에 걸릴 확률이 높지

빨간불은 괜히 있는게 아니야

잘 나가는 후배의 본부 대기 발령 공지가 떴다.


'본부대기'가 무엇이냐..

부처 내에 소속된 곳 없이 붕 뜬 상태로 있으라는 의미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현안으로 바쁜 부서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고 있던 후배였다. 전통적으로 우수한 인재들만 뽑혀간다는 조직내 핵심 부서였고, 특히 최근에는 9시 뉴스를 도배하는 민감한 이슈로 인해 부서 전체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본부 대기라니..


본부 대기의 사유는 대부분 원활한 인사관리를 위해 발생한다. 민간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사는 내 자리 하나 바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체스 경기를 하듯 '기 있던 말을 빼서 이리로 옮기고, 기 있던 말은 옮기고,  있던 말은 다시 저쪽으로 돌리는' 겹겹의 파장이 함께 한다.


또한 인사부서에서는 단지 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 조직원들의 보직 이력, 근무 연차, 승진 순위, 유학 선정 등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판을 짜야한다. 예를 들어, 조만간 승진이 기대되는 직원이 있는 부서에 근무평정 등에서 경쟁이 될만한 직원을 발령 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이런 다양한 역학관계 속에서 간혹 현재 있는 곳과 옮길 곳의 이동시기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 본부 대기 발령을 낸다. 부서를 옮기는 경우뿐만 아니라 외부 파견 자리에 있다 다시 본부로 들어오거나 휴직을 했다가 복직하는 경우, 아니면 반대로 외부 파견이나 장기교육을 나가거나 휴직을 하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연쇄적인 인사 도미노 속에서 발생하는 본부 대기는 일시적이고 일상적이다. 큰 의미를 살펴볼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후배는 새 부서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주목받는 자리에서 한창 열심히 커리어를 이어갈 시점이다. 그런데 본부 대기 발령이라니, 다소 의아했다. 그럼 혹시...


또 다른 사유로는 징계성 본부 대기가 있다. 조직 안팎에서 일련의 물의를 일으킨 경우 당장 업무에서 배제하기 위해 본부 대기 발령을 내기도 한다. 복도 통신에 밝은 안테나 후배에게 물으니 바로 답이 왔다. 맞단다. 징계성 본부 대기.


그 후배와 사적으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괄괄한 성격에 제 분에 못 이겨 확 들이받는 스타일이었다면 이리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평소 듣고 보는 직간접적인 평판에 따르면 매우 유능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어찌하여 공무원에게는 '갑 of 갑', 왕 갑이라 할 수 있는 국회와 큰 트러블을 일으켰단다. 그 정도가 조직 내에서 조용히 수습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다. 결국 본부 대기 발령을 내고 징계 절차를 밟을 정이라고 한다.


그 후배는 지금 눈물 나게 억울할 수도, 미치도록 후회될 수도 있다. 이어달리기의 계주가 되어 바턴을 받아 달리려는데 무언가에 걸려 허망하게 나뒹군 상황이 되어버렸다. 응원하던 주변 사람들, 같은 팀의 동료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기엔 상황이 너무 무겁다.


하지만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다. 이제는 아픈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이 방법이다. 지금의 시련이 덤덤해지기를, 스치는 바람결에 훨훨 날려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혹시라도 복귀 후에 지금의 일을 만회하고자 폭주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동네 초등학교 근처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난다. 넓은 사거리 횡단보도에 감시카메라도 설치되어 있다. 얼마 전, 그 횡단보도에서 과속을 했다며 속도위반 통지서가 날아왔다. 기억이 났다. 초록불 신호 안에 횡단보도를 건너겠다고 내처 달리느라 나도 모르게 속도를 냈었다. 

오늘은 그곳을 지나는데 빨간불에 걸려 멈추어 섰다. 초록불 신호 안에 길을 건너겠다고 마음 졸이며 엑셀을 밟기보다 차라리 정지신호로 잠시 멈추어 있는 게 마음 편했다. 한숨 돌렸다 출발하면 절대 제한속도를 넘을 일도 없다. 그 후배도 지금의 잠시 멈춤이 결코  끝이 아님을, 부디 마음의 속도가 조급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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