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멤버가 보강되고 운동이 잘돼서
오히려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야간 운동 가기 전
다음 날 전지훈련 갈 짐을 챙기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올 수 있으면
지금 오라는 전화였다
감독님께 전화를 드리고
연달아 이슬이에게도 상황을 보고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동안 멍하게 있다
훈련 갈 짐을 마저 챙겼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청소기도 돌렸다
엄마는 늘 죽는다 죽는다 했으니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내일이라도 전지훈련지로
합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원정 갈 때처럼 집 정리를 하고 전기를 끄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차에 가방을 실었다
시동을 켜고 고속도로 진입 전 차에 기름도 채웠다
집으로 가는 5시간 동안 화가 났다 슬펐다
멍해졌다 미안했다 후회했다
관자놀이에 젓가락이 박힌 것처럼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리고 두려웠다
새벽 1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가족들이 모여있었다
내가 오는 동안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는지
가족들은 꽤 덤덤했다
장례를 치를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의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엄마의 죽음이 확실해졌다
마치 운수 좋은 날 같았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은 꽤나 잔인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슬픔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 이건 얼마짜리로 할지
저건 얼마짜리로 할지 묻는다
부고 문자를 보내고 빈소를 차리고
영정사진을 기다린다
내 휴대폰에 엄마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생전에 엄마가 ‘이게 나야?’하고
좋아했다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해드렸다
엄마가 마음에 들어 했을까
친척들과 지인들이 하나 둘 오셔서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엄마를 부르며 목놓아 엉엉 울기도 한다
엄마를 미워하던 못된 딸이었기에
염치없이 펑펑 울 수 없어 이를 깨물고 참았다
소리 내 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죽음이 와닿지 않았다
엄마의 장례는 시끌벅적했다
할머니와 이모들은 내내 울었고
감사하게도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하려
많은 분이 와주셨다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것도 엄마를 위해서
우리 엄마 정말 좋아했을 텐데
엄마만 있었으면 완벽하게 행복한 자리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내 친구들도 모였다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 한 친구들도 많이 와주고
늦게까지 자리를 지켜줬다
상주 자리에선 슬픔에 잡아먹혀 울다가
친구들과 있을 땐 밥도 잘 먹고 웃고 떠들기도 했다
죄책감과 슬픔이 두려워 자꾸만 자리를 비웠다
내가 지칠수록 엄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입관식 때 만난 엄마는 편안해 보였다
안 본 지 오래되어서 머리카락을
그렇게 짧게 잘랐는지도 몰랐다
엄마는 짧은 머리를 하고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르면 세상에서 제일 피곤한 목소리로
딸 왔어? 하고 일어날 것 만 같았다
엄마를 만져보거나 불러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기회는 없었다
할머니와 이모들이 실신하듯 주저 않아 소리치고 울어
인사를 양보했다 나는 또 슬픔을 참았다
그저 나지막이 엄마를 부르고 자는 엄마의 옆얼굴을
보는 게 전부였다
엄마와 함께 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까.
다른 가족들의 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겠지
나는 엄마를 많이 불러보지 못했다
엄마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좋은 딸이 되지 않기로 했다
집에 가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았다
운동이라는 거창한 핑계가 있었으니까
내가 은퇴하고 집으로 갔으면
억지로라도 엄마 옆에 있었으면 엄마는 살았을까
조문 오신 엄마 가게 지인들, 엄마의 친구들이
단번에 나를 알아본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
핸드볼 선수인 것부터 바디프로필을 찍은 것까지.
엄마는 인스타그램으로 나를 만나고
멀리서 나를 지켜봤다
주위에 딸 자랑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복근 나왔다 나왔다!!’하며 엄마 생각도 안 하는
나를 응원했단다
모두 내 손을 잡고
나는 엄마에게 늘 자랑스러운 딸이며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다른 사람들에겐 다정하고 친절한 얼굴을 하고
엄마한테만은 차갑게 굴었던 딸을,
마산에 온 뒤로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은 딸을
엄마는 뭐가 좋다고 그렇게 자랑하고 의지했을까
엄마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나의 바디프로필 사진이다
바디프로필 찍는다는 얘기도
사진을 보내준 적도 없는데
인스타그램을 캡처해서 저장한 모양이다
엄마의 인스타그램에 딱 하나 있는 게시물도 내 사진.
내 사진이 있는 팬계정은 몽땅 팔로우하고 있었다
내 번호를 눌러 저장된 이름을 확인했다
울보물딸랑구
이렇게 저장해 놨는데
전화를 안 했으니 볼 수도 없었을 테지
이렇게 못돼 빠진 보물이 어딨어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생각했는데
엄마는 늘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다 두드리다 문 앞에 사랑을 두고 갔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 경남에 있을 때
친구들과 술 마실 때 여행 갔을 때에도
엄마는 문 앞에 사랑을 쌓아두고 그 앞에 서있었다
사랑이 너무 쌓여 더 이상 문조차 보이지 않자
먼발치에서 인스타그램으로만 나를 봐왔나 보다
엄마는 늘 사랑을 주고 있었다
내가 받지 않았을 뿐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의 사진을 찾았다
2019년이 마지막 사진이었다
다시 한번 후회가 나를 집어삼킨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 재생한 영상엔
잠옷바람에 훌라후프를 하며
‘전화통화 안 하면 얘기할 사람이 없어
근데 아무도 전화를 안 해줘’라며 웃는 엄마가 있다
그땐 엄마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도 몰랐다
간간히 한 번씩 다시 볼걸
엄마 많이 외로웠겠다
엄마의 발인 날에도 나는 울음을 참았다
이모들이 양보해 줘 등을 떠밀어준 덕분에 엄마를
부르며 주저앉아 울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엄마를 부르며
어린애처럼 울었다
몇 번을 불러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성격이 급했다
그래서 갈 때도 급히 갔다
인사라도 하고 가지
배혀노 생일 축하해 주고 가지
임영웅 콘서트도 보고 가지
나 경기 뛰는 것도 보고 가지
뭐가 그리 급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갔을까
엄마는 바보다
누워있는 엄마 옆에 같이 누워볼걸
영화 보러 가자고 해볼걸
져주는 척 엄마 편 한번 들어줄걸
외로울 때 친구들 말고 엄마한테 전화 한번 해볼걸
블로그 보는 법 안 알려줬는데 이 글은 볼 수 있을까
엄마는 두려웠을까 외로웠을까
추웠을까 슬펐을까 편안했을까
얘기라도 해주고 가지
엄마는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나는 멍청이처럼 엄마를 보내고야 엄마 생각을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늘 동생처럼 챙김 받는 걸
엄마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내 걱정 안 하고 그렇게 가버린 걸까
친구들은 나를 걱정한다
생각이 많고 감정을 드러내는 게 서툴어 늘 참기만 하는
나를 잘 알아
자꾸자꾸 전화해 주고 끼니를 챙겨준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염려 끼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또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또 견디고 씩씩해야 한다
씩씩하게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가 떠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외로웠지만 나는 외롭지 않다
그런데도 재채기처럼 갑자기,
참을 틈도 없이 눈물이 난다
이 슬픔이 언제까지 나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까
얼마나 더 울어야 할까
우는데 지쳐 도망치고 싶다가도
슬픔에 무뎌지면 엄마를 잊어버릴까 두렵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엄마한테 물어보려 해도 이제 엄마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