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들은 계절에 따라 변한다. 여름에는 밝게 웃으며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농담도 던지고, "뭐 도와줄거 없어?" 이러는 사람들이 겨울에는 좀 차분해 지는 듯 하다. 겨울의 터키는 여행객들도 별로 없고, 내 기억의 모습보다도 더 추웠다. 아브라함과 욥의 도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 괴베클리 테페, 이 도시는 시간이 멈춰있을 것 같은 향수를 자극하는 곳이다. 여행객도 많지 않은 이곳에 생김새가 다른 동양인은 나 혼자 이다.
호텔의 무스타파 아저씨가 알려주신 대로 돌무쉬(미니버스 60TL)를 타고 하란을 다녀왔다. 부슬비 오는날 하필 신발 밑창이 뜯어지는 바람에 신발이 흠뻑 젖은 채로 언덕을 오르내리고 하니 영 기분도 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이런 곳을 언제 또 오나 하고 열심히 이잡듯 다녔겠지만 그냥 적당히 보는 것도 괜찬다. 왜냐면 아쉬운 곳을 남겨둬야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의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란>
-아브라함이 우르(이라크)를 떠나 가나안(이스라엘)으로 가기 전에 머물던 곳
-고고학적으로 우르와 동일한 시스템의 무역 요충지로 번영했던 도시였다고 함
신발은 축축하고 밖은 쌀쌀하고, 오늘의 나의 삶의 질 점수는 다운이다. 그러나 덤이 생겼는데, 다음에 신비의 도시 하란을 또 와야겠다는 동기가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그래도 구글 지도 덕분에 예전처럼 길 한번 안 헤메고 다녀온 것 만해도 비약적 발전이다.
딱 봐도 시리아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먹먹함이 차오른다.
아이에게 돈을 쥐어주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다. 난 가방에 있던 과자를 꺼내 아이에게 주었다.
"여긴 반이 시리아인이고 반이 터키인이야. 시리아 난민들 몰려오고 모든게 변했지. 저 친구도 여기 처음 올 땐 혼자였는데 지금은 아이가 둘이야."
이런 추운날 밤 호텔밖에 웅크리고 구두닦고 있는 모습이 영 안되보인다. 옆에 아이까지 데리고 있는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다.
"걱정 안해도 되. 그래도 구두 닦아서 벌이가 괜찮아. 넉넉하진 않아도 먹고살 정도는 되니까. 10리라야(500원). 그런데 나는 20-30리라 주지."
"내가 저 사람들을 좀 아는데, 먹는 거랑 연애하는거 이것 말고는 생각안하고 살아."
하하하, 이 말을 듣자 나도 바로 공감되었다. 아랍계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걱정 없이 오늘 하루 즐겁게 살아가자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우르파 거리를 걷다보면 쓰레기통 주변에 아주 자리를 깔고 앉은 이들을 볼 수 있다. 아기를 쓰레기통 위에 앉혀놓고, 버린 음식들을 아기와 함께 먹고 있다. 분명 저 아이들은 전쟁 후 난민생활 중 태어난 아이들이다.
오래전 전쟁전에 시리아인들을 보면서 한국인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음식은 낮선 사람과도 함께 나눠먹는 풍속, 내향적이고 부끄럼이 많은 사람들, 상다리 부러지게 대접하는 문화 이런것들이 우리 문화와 많이 닮아있었다.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영 부끄러워하며 나에게 가까이 오지 않으려한다. 아버지가 아이를 잡아당겨서 데려오려고 해도 문을 잡으며 버틴다. 슬쩍 뒤돌아보며 방끗 웃는게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진다.
가난, 전쟁, 난민들 이런 것들이 당장 내 눈앞에만 안보일 뿐 남의 일만은 아니다. 그들을 도와주는건 나중 문제고 이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