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팔이 부러진 상태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팔이 부러진 채로 맞는 8월은 처음이다.
수술을 마친 뒤에도 잘 움직이던 손가락이 퇴원을 하루 앞두고 피주머니를 뺄 무렵부터 의지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엄지를 들어보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안간힘을 써보아도 왼쪽으로만 기울어졌다.
이내 나머지 네 손가락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팔 골절 손가락 신경'이라고 검색하자 상해 후유 보험금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줄지어 나타났다.
손가락을 스스로 들 수 없는 대가로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이 있다는 사실 같은 것은 영영 모르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만세를 외치고 잠들었던 팔을 거둬들이며 사고 당일에 구른 것이 몇 바퀴나 되었는지 가늠해본다.
무게 중심을 잃고 가속을 받게 되었던 순간부터 곱씹으며 중간에 분명 멈췄던 것도 같은데 어째서 굳이 부러지기까지 했을까 원망의 날을 며칠 지내고 나니
그래도 날카로운 것에 찔리거나 둔탁한 것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아 다행이라 위안을 삼게 된다.
어떤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이미 발생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을 가능성이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불가능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오른팔이 부러졌고 새끼손가락 단독으로 ㅣ를 누르려고 하면 넷째 손가락이 먼저 ㅏ에 닿지만,
나의 불운은 예의는 차리는 편이어서 다행히 멀쩡한 왼손으로도 잔멸치며 깻잎 같은 얇고 작은 반찬을 잘도 집는다.
소주 없이 삼겹살에 생수를 털어 넣으며,
10여 년 매일같이 마시던 술을 열흘이나 참고 있다.
는 일기를 차마 맺지 못한 채로 12월이 되었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것, 이미 서른여섯 해째 마주하는 일은 역시나 별다를 바 없지만 확진자 접촉으로 인한 자가격리,
일주일을 집에서만 보내야 하는 연말은 또 생소하기만 하다.
하루 종일 글이나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자주 바랬다.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다 해가 져버리더라도,
썼다 지우기만을 반복해 결국은 허공을 헤집는 소리나 두어줄 쓰고 말지언정
맺어지지 못한 수많은 첫 문장들을 언제나 그저 얼버무리다 마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날들만을 성실하게 쌓아왔다.
나는 대체 왜 글이 쓰고 싶을까,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어째서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도 아니면서 자꾸 뭔가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날까
하루 장사가 내내 만석은 아니지만은
유난을 떠느라 따져 가며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내고 테이블을 치우고
또다시 빠진 물건을 주문하는 사이 월말에 치를 값과 이내 찾아올 월세를 셈하는 족족 먹고살 궁리까지 겸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대개 자정을 넘기는 시간이 된다.
것 봐,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내 생활에는 틈이 너무 많아서 진득하니 쏟아낼 여력이 되질 않는다니까.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던데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난 뒤에 어쩐지 안도감 같은 것이 밀려와 스스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금의 생활을 멈추게 돼버렸다는 것이 어쩐지 조금 기쁘기까지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피치 못할 사정, 종종 그 사정이란 게 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와 줬으면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일주일 치의 예약을 모두 무르고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리고
노트북과 요리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격리 해제일인 27일까지 셈을 해보니 꼬박 8일이 남았다.
그 절반을 잠과 리모컨 채널 돌리기,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흥청망청으로 실컷 탕진하는 4일을 보내며
쟁여둔 사골을 녹이고 또 녹여 마시며 식도에 기름이 너무 끼었다 싶은 지난밤에는 엽기 떡볶이 오리지널을 시켜 쓰린 속을 비비며 동거인이 유튜브의 바다에서 고른 영화 두 편을 내리 보았다.
오늘의 저녁은 엄마가 문 앞에 두고 가신 두부와 호박을 넣어 청국장을 끓여 먹기로 하고
이렇게 더듬더듬 무어라도 더 남겨보기로 하는 시간
아주 오랜만에 마음이 푹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