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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Mar 13. 2024

이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다. 인생을 통틀어서 봐도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이 말을 조금 응용해보고 싶다.


"가까이서 보면 불행이지만 지나고 보면 행운이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닥친 불행이, 지나고 보면 행운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엔 알 수 없지만.




작년 가을 어느 날, 연말에 전세 만기가 끝나면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결혼 후 첫 신혼집이었고 2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네이버 지도를 켜서 살고 싶은 동네를 정하고, 그 지역 모든 오피스텔의 전세가를 알아보았다.


그 후 몇 주 동안 부동산 중개인들과 끊임없이 연락하고 남편과 임장을 하면서, 고르고 골라 한 곳을 마음속에 찜해두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돈이 부족했다.


신혼집을 구할 때는 저금리의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를 하게 되면 이 대출을 상환하고 금리가 높은 일반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이자가 부담되니 당연히 이사 갈 집은 전세가가 낮은 집으로 구해야만 했고, 내가 가고 싶은 집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보다 대략 6000만 원이 더 비싼 곳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원하는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가 몇 천만 원을 갑자기 빌려주거나, 로또에 맞지 않는 이상.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상상하고 노트에 쓰며 원하는 집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제가 터졌다. 임대인이 만기날 보증금을 줄 수 없다고 '배 째!' 심보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새 임차인이 구해질 때까지 돈을 줄 수 없다는 거였다. 어라, 이건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전세 사기 비스무리한 것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와 남편은 임대인에게 대응하기 위한 절차를 밟으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일이 해결될 듯하다가 어그러지는 롤러코스터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우린 예민해졌다.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그 당시에 브런치에 이런 글을 썼다.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현실에는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 우주는 가끔 시련을 주기도 한다. 이번 일은 나에게 왜 일어났을까? 나는 내 마음과 감정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게 될까?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나쁜 일'이란 없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도 분명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불확실함 속에, 괴로웠던 시간 속에 날 위한 큰 선물이 있었다는 것을. 속을 썩였던 임대인 덕분에(?) 나는 원하는 집으로 이사 올 수 있었다. 지금 너무나도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정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임대인이 우리에게 만기날 제때 보증금을 주면, 우리는 기존에 받았던 저금리의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그날 바로 은행에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이 은행 대출 상환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리가 더 높은 일반 대출을 받아서 전세가가 낮은 집을 구할 생각이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내가 원하는 집에 갈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임대인이 돈을 주지 않으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고, 우리는 돈을 돌려받기 위한 법적 절차에 돌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은행 직원, 대출 직원과 매일같이 전화하고 상담하면서, 기존의 저금리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기존 대출을 유지하면 금리가 낮아서 내가 원하는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새 임차인이 구해지면서 우리는 보증금을 받고 무사히 이사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집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로또도 아니었고, 누군가가 돈을 빌려줘서도 아니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임대인이 만기날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존 대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실제로, 남편이 상담원과 통화하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힘들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씨앗이 숨어 있었다. 전혀 계획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지금 이 불행이 어떤 행운의 옷을 입고 돌아오게 될지. 그래서 상황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길이 막힌다는 것은 다른 길이 있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더 빠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예전의 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좋아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할 계획을 세우고, 내가 생각한 대로 한 해가 잘 흘러가기를 바랐다. 돌발상황은 사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살면서 있었던 일들 중에 진짜 재밌었던 일들은, 내가 계획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내 생각대로 인생이 흘러가길 바라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진짜 인생의 선물은 '불확실성' 속에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불확실성을 즐기기 시작했다. 무한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내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야 한다는 고집을 버렸다. 원하는 목표가 있고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는 있지만, '일이 어떠한 식으로 되어야 한다'라는 집착은 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거기에서 배울 점을 찾고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러면 우주는 언제나 더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불확실성에 어느 정도 삶을 내맡기면, 사는 게 더 재밌어진다. 예측한 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은 그다지 설레지도, 새롭지도 않다. 우리가 기다리는 행운은 ‘아는 것’에서 오지 않기 때문이다. 행운을 만나고 싶다면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


세상아, 나에게 주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지 주길. 뭐든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길. 내가 전혀 예상 못했던 것이라도 언제든 반길 준비가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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