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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Mar 22. 2024

내가 보는 세상, 네가 보는 세상

잊을 수 없는 대화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대학교 때 친구였는데, 같이 노는 무리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친구였다.


하루는 그 친구가 우리 동네에 와서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각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공유하며 수다를 떨다가, 헤어스타일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앞머리가 없는 깔끔한 단발머리였고, 나는 어깨까지 오는 층을 낸 생머리에 애매하게 기른 앞머리를 옆으로 살짝 넘긴 상태였다. 친구가 내 머리를 살펴보며 말했다.


"너 앞머리 기르니까 더 나은데?"


"진짜? 지금 기장 애매한데. 딱 여기(귀 부근)까지 길러서"


"앞머리 길러서 없애도 이쁠 것 같아!"


"한번 길러봐? 오호호홍."


(이 타이밍에 TMI: 이 친구의 말에 힘입어 앞머리를 계속 길러보려 했지만, 역시 난 앞머리 있는 게 어울린다며 결국 자르고 그 이후로 기른 적이 없다.)


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빨고 친구를 보며 말했다.


"넌 단발 진짜 잘 어울린다. 미용실 어디에 있는 거 다녀? 나는 미용실 유목민이야. 딱 마음에 들게 자르는 곳이 없어."


당시에 나는 머리를 자를 때마다 여기저기 미용실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그래? 나는 그냥 집 근처에 있는 다니던 미용실 계속 다녀."


"거기서 자르면 마음에 들어?"


"응, 나는 어디서 잘라도 다 마음에 들던데?"


여기서 한 번 머리가 띵-.


'어디서 잘라도 다 마음에 든다'는 말이 내 마음에 와서 박혔다. 나는 '어디서 잘라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다니는 미용실 디자이너가 훨씬 실력이 좋았던 걸까? 그럴 리가. 나는 잘 자른다고 하는 곳들만 찾아다녔는데.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이 주제 저 주제로 널뛰기를 하며 얘기를 하던 중,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화장하는 거 너무 귀찮아."


친구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엇, 나는 화장하고 꾸미는 거 좋은데."


"진짜? 귀찮지 않아?"


"내가 예뻐지잖아. 꾸미면 기분 좋아."


여기서 다시 한 번 머리가 띵-.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얼굴에 이것저것 찍어 바르고, 컨실러로 잡티를 가리고, 눈썹과 아이라인을 그리고, 섀도우를 하고, 마스카라를 하고... 이 일련의 과정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번거롭고 귀찮게만 느껴졌는데, 그 똑같은 시간 동안 누군가는 예뻐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설레고 있었구나.


친구는 모든 것에서 좋은 면을 먼저 봤다. 머리를 자를 때도, 화장을 할 때도. 아, 그러고 보니 하나 더 있다. 나는 당시에 학교까지 통학시간이 1시간 15분 걸렸는데, 이 친구는 나보다 30분이 더 걸렸는데도 괜찮다며 잘 다녔다. 나는 힘들다고 참 많이도 징징거렸는데 말이다. 아마 삶의 다른 측면들에 대해서도 친구는 좋은 부분을 먼저 보았을 것이다.


반면 나는 어떠했는가. 당시에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생각의 힘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긍정적인 말과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날, 두 번의 '띵-'하는 울림 뒤에 남은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했던 긍정은 반쪽짜리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친구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뭔가가 귀찮아지려는 순간마다 다시금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내 상황에 대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 좋은 면을 볼 수도 있고, 안 좋은 면을 먼저 볼 수도 있다.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순전히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좋은 면에 집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안 좋은 면에 집중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기분 좋게 살고 싶다면 삶의 좋은 부분에 집중하며 살면 된다. 행복해지는 것은 이토록 단순하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너무 많은 날들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며 살았다는 점이다. 내 외모의 부족한 점,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들에 집중하며 여기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곤 했다. 그래서 자주 방황했고, 조급했다.


내가 마음의 평온을 찾은 것은 내 관점을 바꾸면서부터였다. 상황이 바뀌어서가 아니었다. 내 삶을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삶이 더 편안해지고 재밌어졌다.


여전히 내 삶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삶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나는 지금 명확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을 헤매다 이제야 하고 싶은 걸 찾은 것 같지만, 아기 걸음마 단계이다. 그저 평범하고 소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해부터는 다를 수도. 나는 비상하는 청룡이니까!)


그럼에도 내 삶은 빛난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남편이 있고,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부모님이 있으며, 전세지만 매일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따뜻한 집이 있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이 세상을 볼 수 있고,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영상과 글로 자유롭게 전할 수 있으며, 그 메시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고 이보다 편리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은 덤이다.


내 삶의 부족한 점에 집중하면 끝이 없지만, 반대로 내 삶의 좋은 점에 집중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매 순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살 수밖에 없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해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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